마른 사람이 오히려 많이 먹는 이유… 비밀은 '위'에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3. 12. 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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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의 몸을 읽다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우리가 삼킨 음식은 식도를 통해 위로 내려간다. 위는 음식물을 본격적으로 저장하고 소화하는 기관이다. 흔히 위를 '밥주머니'라고도 부르며, 음식물이 위에 들어가는 행위는 '먹다'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미지 때문에 위는 항상 부풀어 있을 것 같지만, 평소에는 압력으로 오므려져 있다가 음식물을 섭취할 때만 펴진다. 생각해보면 위가 항상 부풀어서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위는 평소에 200cc 정도의 부피지만 음식물을 섭취하면 1500~2000cc까지 늘어난다. 내장 지방이 많으면 위가 늘어날 공간이 적지만 마른 사람일수록 오히려 위는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많이 먹기 대회 우승자는 대체로 마른 사람들이다. 인터넷 방송에서도 마른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

우리 몸의 장기는 최대한 여유 공간을 줄여서 배치되어 있다. 폐는 가슴 안을 틈 없이 가득 채운다. 간은 오른쪽 복벽에 딱 붙어서 거의 왼쪽 벽에 닿을 정도로 길고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몸에 굳이 여유 공간을 둘 필요가 없다. 위는 오른쪽에서 중앙까지 자리를 차지한 딱딱한 간의 영향으로 왼쪽 벽으로 밀려나서 붙어 있다. 효율적 공간 활용을 위한 비대칭이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 우리 몸의 왼쪽으로 음식이 내려간다. 같은 원리로 위는 왼쪽 폐 바로 아래 붙어 있어서 생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위에 음식물이 쌓일수록 점차 아래로 처진다. 음식물이 비대칭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왼쪽이 아래로 가게 누우면 오른쪽이 아래로 가게 눕는 것보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서 배가 편안하다. 만약 식후에 오른쪽이 아래로 가게 눕는다면 역류성 식도염이 더욱 쉽게 발생한다. 하지만 평생 음식이 비대칭으로 내려간다고 느낀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 생존에 필요한 감각이 아니기에 몸에서 소거해버렸을 것이다.

위는 소화관의 대명사지만 막상 영양분 섭취 기능이 거의 없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음식물을 잘게 부숴서 장에서 소화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위는 강력한 근육덩어리다. 위의 윗부분은 일단 음식물을 저장하고 아랫부분에서는 강력한 근육으로 뭉개고 치대서 음식을 잘게 부순다. 치아가 하는 일을 위가 마무리 짓는 것이다. 위의 하단부(유문)는 음식물의 크기가 1mm 정도로 부서져야 장으로 넘겨보내고 아직 크기가 크면 위의 윗부분으로 다시 올려보낸다. 이렇게 상하단의 일이 정해져있으니 밥을 먹고 눕거나 물구나무를 서면 소화가 어렵다. 하지만 중력이 아니라 근육의 힘으로 진행되므로 눕거나 물구나무를 서도 소화는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음식물은 곤죽 형태가 되어서 소화 효소와 알맞게 섞인다. 어떤 구성의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 일단 물은 위를 그냥 통과한다. 그래서 아침 공복에 물을 마시면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내려간다. 죽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미 곤죽 형태로 된 음식이라 기계적으로 부수기가 편하다. 환자에게 죽을 권하는 이유는 위의 부담을 덜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두 시간, 지방은 세 시간,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이 지방에 튀겨진 형태는 다섯 시간까지 걸린다. 그래서 라면이나 치킨을 먹고 자면 소화가 덜 되어 속이 더부룩하다. 또 환자에게 라면이나 치킨을 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는 pH 1.5의 위산을 분비한다. 위산은 음식물과 섞여야 하므로 아주 강력해야만 한다. 식초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염산과 빙초산과 견줄 정도다. 음식물은 위에서 강력한 산으로 소독된다. 우리가 상한 음식을 삼켜도 위산은 병원균을 박멸한다. 아마 위산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발열과 설사에 시달리다가 패혈증으로 전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량의 병원균을 한 번에 먹을 경우 위에서 살아남아 소장이나 대장에서 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 위산은 소독뿐만 아니라 위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활성화시켜서 단백질을 조금 더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만든다. 하지만 위벽 또한 소화될 수 있는 단백질 성분으로 되어 있다. 위는 강산을 견디기 위해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으로 되어 있고, 점막하층에서는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하기 위해 염기성 분비물을 내서 위산이 직접 스며드는 것을 방지한다. 강산을 분비하면서 방어해야 하는 위점막은 아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점막 세포는 삼 일 정도를 버티다가 탈락한 뒤 소화관을 통해 배출된다.

우리가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어서 위의 점막과 점막하층이 손상을 입으면 위궤양이다. 위궤양은 벗겨진 피부에 산이 닿으니까 속이 쓰리다. 위궤양이 심해지면 피가 나거나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을 궤양성 출혈이나 위 천공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위암이 자주 발생하는 것 또한 강산의 영향을 받으며 세포가 자주 교체되기 때문이다. 위는 산에 대해 보호장치가 있지만 식도나 입에는 보호장치가 없다. 구토하면 식도와 구강이 산을 뒤집어쓰게 되므로 잦은 구토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 식도에서 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식도 괄약근은 필사적으로 위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지 않게 조여야 한다.(구토할때는 자연스럽게 열린다) 하지만 밥을 먹고 바로 잠들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거나 오른쪽 배가 아래로 가게 잠들면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역류성 식도염이다.

위는 기계적인 분쇄, 소독, 단백질 분해를 맡은 기관이다. 모든 음식물은 일단 위에 저장되어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변화한 뒤 소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위가 좌측에 있는 것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물을 저장하고 반죽하는 것도, 염산과 비견되는 강산을 내뿜는 것도, 치아처럼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것도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위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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