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서해 공무원 피살 알고도…살아있는 것처럼 수색했다"
38시간 동안 표류한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는데, 북한이 구조해 줄테니 이후에 보고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일찍 퇴근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구해달라는 통지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한 뒤에는 마치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수색작전을 계속해 국민을 속이고, 관련 문서를 파기했다. 그리고 월북을 시도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없는 첩보도 조작했다.
감사원이 7일 발표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피살 사건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정부 당국자들의 행태다. 감사원은 2020년 9월 서해 상에서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씨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와 정부의 대처가 “위법하고 부당한 업무 처리”였다고 결론 내렸다.
피살 15시간 지났는데 "실종 상태" 문자 공지
감사 결과 국가안보실과 국방부는 2020년 9월 22일 오후 9시 40분쯤 북한군에 의해 이씨가 피살된 사실을 인지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실종(생존) 상태인 것처럼 조작·은폐했다. 9월 23일 오전 1시에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안보실이 ‘서해 공무원 피살·소각 사실에 대한 보안 유지’ 지침을 하달하자 국방부와 합참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당시 회의는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 녹화본이 방송되기 직전 열렸다.
합참은 안보실 지침에 따라 관련 첩보 보고서 60건을 삭제했고, 국방부는 9월 23일 오후 1시 30분쯤 이씨가 피살된 지 15시간이 지났음에도 출입기자단에 이씨가 여전히 실종 상태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경은 한 발 더 나아가 이씨에 대한 실종자 수색 활동을 이어갔다. 수색 활동을 종료할 경우 이씨 피살 사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로 최초 실종지점에서 ‘가짜 수색’ 눈속임을 벌인 셈이다.
이는 사실상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실제 보안 유지 지침이 나온 23일 관계장관회의 뒤 일부 비서관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이 뒤늦게 알면 감당하기 어렵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의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국민 피살됐는데 김정은 '통지문'만 강조
“(이씨 사살은)김정은 위원장 지시가 아니다”(박지원 당시 국정원장), “(북한 최고지도자가)이번처럼 빠르고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며 사과한 사례는 없었다”(이인영 당시 통일부 장관) 등 북한의 만행에 면죄부라도 주려는 듯한 '엄호사격'이 이어졌다.
북한군의 우리 국민 살해 및 시신 소각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진 월북’ 프레임을 조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특히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국정원·국방부·통일부·국정원 등은 명확한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결론을 정한 채 보고 내용과 중간수사 결과를 끼워 맞춘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결과 문재인 정부 주장과 달리 실제 이씨는 북측 해역에 표류하던 도중 북한군과 최초로 접촉했을 당시 월북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이씨는 북한 측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이유를 묻자 즉답을 회피했고, 질문이 계속되자 그제야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본의에 반해 월북 의사를 표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월북 불분명" 분석하고도 침묵만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자진 월북은 불분명하다’고 판단했지만, 이씨 피살 이틀 뒤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합참이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고하는데도 이와 배치되는 자체 분석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되레 합참의 분석 내용을 언론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합참이 보고한 월북 근거는 군 첩보에 없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 혹은 자진 월북의 근거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며 당시 정부의 월북 의도 발표는 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실장·1차장·센터장 '조기 퇴근'
심지어 당시 서훈 안보실장과 서주석 안보실 1차장은 이씨가 북측 해역에서 표류하며 상황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퇴근했다. 당시 강건작 국가위기관리센터장 역시 북한이 이씨를 구조하면 ‘상황 종결 보고’로 모든 대응이 끝날 것이라 판단해 사건 발생 당일인 9월 22일 오후 7시 30분쯤 퇴근했다. 정작 국방부는 이씨의 신변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 발송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감사 결과를 확정하는 감사위원회 회의 과정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 감사위원은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감사를 진행했던 특별조사국 감사관들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해경(5명)ㆍ국방부(1명)ㆍ통일부(1명) 소속 7명에 대한 징계를 통보했다. 중징계 2명, 경징계 5명이다. 1명(국방부)은 단순 주의를 받았다. 이미 퇴직한 5명(해경 2명ㆍ국방부 3명)의 경우 재취업 제한이 가해지는 인사자료가 통보됐다.
이씨 유가족 "文 개입여부 밝혀야"
이씨의 친형인 이래진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진상 규명을 위해선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보고받았거나 직접 은폐를 지시했는지가 확인돼야 한다”며 “대통령의 직접적 지시나 암묵적 승인 없이 국가안보실 주도로 각 정부 부처와 기관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래진씨는 오는 11일 오후 예정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면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 대통령의 개입 여부 등을 추가로 확인할 예정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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