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K팝 팝업, 제대로 살아남기

2023. 12. 8. 04: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인기 그룹 팝업 입장이 ‘훈장’
허술한 구성, 품절로 실망도
새 마케팅 수단도 고민해야

얼마 전 우연히 성수동을 지나다 새삼 놀랐다. 성수가 팝업의 성지, 팝업의 메카가 된 지 오래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소매점)투성이 일 줄은 몰랐다. 과장을 조금 더 해 한 집 건너 한 집씩 팝업이 열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성수는 2021년과 2022년 한국에서 팝업스토어 연관어 2위에 오른 지역으로, 주간 평균 50개 안팎의 팝업이 열리고 있다. 팝업스토어 연관어 1위 더현대 서울은 얼마 전 오픈 2년9개월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알렸다. 빠른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 팝업스토어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개점 후 이곳에서 열린 팝업 개수는 이미 올해 초 300개를 훌쩍 넘어섰다. 팝업스토어 천국, 팝업스토어 전성시대.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패션, 식품, 자동차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팝업 붐은 K팝에도 자연스레 불었다. 강력한 지식재산권(IP), 탄탄한 팬덤, 한정 판매 및 머천다이즈에 익숙한 소비자 등 ‘흥하는’ 팝업스토어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K팝과 팝업의 만남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유행에 불을 지핀 건 최근 K팝이 낳은 모든 유행의 선두에 선 5인조 여성 그룹 뉴진스의 데뷔 팝업이었다. 지난해 여름 이들의 데뷔를 기념해 약 20일간 열린 팝업스토어에는 총 1만7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대단한 숫자만큼 대기시간도 어마어마했다. 뉴진스 팝업은 시작하는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4~5시간 대기가 기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팝업스토어에 입장했다는 것 자체가 기념이자 훈장이었다.

이후 팝업스토어는 K팝 팬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됐다. 더현대 서울에서 올해 열린 굵직한 K팝 팝업스토어만 해도 3월 BTS에서 시작해 아이브, ITZY, 블랙핑크 등이다. 웬만한 연말 시상식도 쉽게 모을 수 없는 라인업이다. 팝업 방문이 일상이 된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변화도 부지런히 일어났다. 건물 안에 갇힌 네모난 공간을 벗어나 놀이동산이나 한강과 손잡은 협업에서 국경을 넘어 K팝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각국으로 직접 찾아가는 해외 팝업스토어까지. 이제는 웬만큼 이름값을 가진 K팝 그룹이 컴백과 함께 팝업스토어를 열지 않는 게 오히려 낯설게 여겨질 정도다.

그렇게 무언가가 당연해진 시대가 되면 자연스레 그에 따른 질적 고민과 명분 찾기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K팝 팝업스토어를 찾는 팬들 가운데 불만의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수시간을 기다려 입장해도 품절이 많아 막상 현장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이 거의 없어 팝업스토어의 본분을 잊었다거나 팝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대형 사진 몇 장, 무대 의상 몇 개를 전시하는 게 전부인 허술한 구성에 실망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고작 몇 주간의 짧은 운영을 위해 수십t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팝업스토어가 초래하는 환경문제에 대한 지적도 불거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팬덤 구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기간 한정을 빌미로 한 과소비 조장에 대한 우려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K팝은 팝업스토어 이전에도 이미 너무 많은 소비와 너무 많은 한정으로 몸살을 앓아 왔기에 더욱 그렇다.

K팝 팝업스토어 유행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K팝만큼 강력한 IP와 오랜 시간 다져진 머천다이즈 판매 원천기술을 가진 산업군이 없고, K팝도 이만큼 화제성 있는 새 마케팅 수단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K팝 팝업스토어는 왜 열려야 하는가. 그저 ‘열었다’ ‘남들이 하니까 한다’ 이상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과 고민이 그 언제보다 필요할 때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