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우린 대통령제인가 내각제인가
칼럼 제목을 보곤 당연한 걸 묻는다고 여겼겠다. 우리의 ‘건국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건 그러나 미국식의 ‘순(純)대통령제’는 아니었다. “내각제를 검토하다가 정부의 안정성, 정치의 강력성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제가 됐다”(유진오 박사)는 말마따나 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제다. 의원들이 국무위원(장관)이 되는 게 한 예다. 미국은 의원 배지를 떼야 장관이 되고, 임기도 대개 대통령과 함께한다. 장관이 대통령의 ‘비서(secretary)’여서다. 우리도 한때(1962~69) 겸직을 금했다.
한데 지금 와서 보면 우리의 통치체제가 뭔지 헷갈릴 수준까지 변형됐다고 느낀다. 우선 행정부·입법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인사청문회 통과율이 높다는 이유로 현직 의원들의 장관 진출이 늘더니 문재인 대통령 땐 18명 중 6명에 이른 적이 있다(2021년 1월 개각). 직전까지 의원이었던 이를 포함하면 8명이었다. ‘의원님 내각’으로 불렸는데 ‘님’을 빼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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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앞 정부 안정성 놓친 대통령
입법권으로 정부 포박한 민주당
서로 비난만…무책임 정치의 극치
」
역의 흐름, 즉 ‘현직 장관의 총선 차출’이란 희한한 현상도 일상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을 앞둔 2015년 두 차례 총선용 개각을 한 일이 있다. 대개 현역 의원을 돌려보내는 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나아갔다. 최근 출마 의사가 있는 장관 6명을 교체했는데, 한 명만 현역 의원이다. 또 개각한다는데 9월 취임한 방문규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총선 출마를 위해 포함된다고 한다. 총선에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제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정부 안정성’이란 것에 대해 고민했나 궁금하다. 과연 했나.
행정부와 여당 이상으로 야당의 행태도 괴이하다. 168석 거대 야당이라고 해서 ‘야당(the opposition)’의 본질적 역할이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비판과 감시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걸 넘어 입법권으로 정부를 포박해 자기 일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정부의 반대에도 국가정책(양곡관리법·간호법·방송법·'노란봉투법')을 강제하고, 정작 정부 어젠다는 우주청은 고사하고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폐지도 외면한다. 정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은 억지로 떠안기는 꼴이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땐 곁도 안 주던 일들이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엔 ‘민주당 수정안’을 얘기하더니 이번엔 ‘이재명표 예산’을 짜고 있다. 법률안이야 대통령이 거부하면 되지만 예산안은 그것도 하지 못한다. 건국 아버지들이 상상하지 못한 경지다. “국회는, 국회에 나온 대의원은 자기가 세금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돈’으로 지출해 나가는 집행기관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상적인 계획을 제출해 그것을 가결하면 정부는 그것을 집행해 나갈 수 없다”(유진오 박사)고 했었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정부 구성을 두고도 해임안·탄핵안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게 몇 달 전인데 또 탄핵하겠다고 나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취임 석 달 만에 물러나게 했다. 그러고 또 “제2, 제3의 이동관을 모두 탄핵하겠다”(홍익표 원내대표)고 벼른다.
결국 우리는 외양적으로 대통령 권력이 제일 센 듯하지만 일부 분야일 뿐이고, 상당수 권력은 입법부로 빨려들어가는 체제하에 있다. 입법부 특히 야당은 완력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행정부로 미루고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에만 골몰한다. 대통령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애쓰기는커녕 야당을 탓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욕만 오간다. 정치학자 박상훈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치의 큰 변화는 책임정치 즉 권한을 준 만큼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하기보단 상대방에게 책임을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는데 동의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치체제를 표현할 말이 떠올랐다. 내각 무책임제가 짙게 밴 대통령 무책임제, 그거다.
고정애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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