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냉온탕식’ 주택정책 이제는 바꾸자

주정완 입력 2023. 12. 8. 00:30 수정 2023. 12. 8. 05: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정완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바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후임자로 지명된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정치인도, 대학교수도 아니란 점이다. 박 후보자는 국토부에서 장·차관만 빼고 주택정책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공무원 출신이다.

어느 조직이든 내부 출신이 수장을 맡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역대 국토부 장관의 면면은 그렇지 못했다. 전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단 한 번도 내부 출신을 국토부 장관으로 쓰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국토해양부 장관(정종환·권도엽)이 모두 내부 출신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박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취임한다면 약 11년 만에 국토부 공무원 출신이 장관을 맡게 된다.

「 11년 만에 국토부 출신 장관 지명
“과도한 시장개입 경계” 발언 주목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물론 출신이 어디냐가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장관 취임 이후 추진할 정책 방향이다. 일단 출발은 좋다. 박 후보자는 과도한 시장 개입을 경계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주택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5일 출근길 문답에서 기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다. 그는 “기본적으로 규제 완화의 입장을 갖고 시장을 대하겠다”면서도 “정부가 시장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택정책에 대한 박 후보자의 소신을 좀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2015년에 펴낸 『국토교통정책의 역사적 변동과 전망』이란 책이다. 권도엽 전 장관 시절에 함께 일했던 국토부 OB(예전 멤버)들이 모여 역대 정부의 정책 변화를 정리했다. 박 후보자는 ‘주택정책의 역사적 변동’이란 부분의 집필을 맡았다.

이 책에서 박 후보자는 정부의 과도한 주택시장 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나치게 자주, 지나치게 단기적 관점에서 이뤄진 정부의 시장 개입은 오히려 정부의 실패를 불러일으켜 시장의 변동성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적었다. 단적인 예로는 분양가 규제를 들었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자 건설사들은 규제 시행 직전에 무더기로 분양 물량을 쏟아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역대 최대 규모의 미분양 물량이 쌓여 심각한 문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박 후보자는 주택시장 상황에 따라 정부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부의 잦은 주택시장 개입은 대중의 관심이 큰 주택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해 경제 부처 관료들이 주도해 이뤄졌는데 이런 행태는 단기적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해 주거복지 강화, 자가 소유 촉진 등과 같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돼야 할 정책 목표를 소홀하게 다루는 우를 범해 왔다”고 지적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자신을 포함한 정책 당국자들이 여론의 압박에 떠밀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결과적으로 실책을 저질렀다는 반성이 느껴진다.

박 후보자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앞으로 장관에 취임한다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장관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현 정부는 주택정책과 관련해 두 가지의 중요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폐지 약속이다. 지난 1월 3일 신년 업무보고에서 원희룡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사안이다. 당시 윤 대통령도 “수요 측의 규제를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둘째는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다. 지난해 12월 21일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했다. 윤 대통령도 직접 강한 어조로 다주택자 취득세 완화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면 세입자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다주택자 세금 완화는 궁극적으로 세입자를 위한 것이란 논리였다. 취득세의 주무 부처는 행정안전부지만 주택정책의 일부라는 점에서 국토부도 무관하지 않다.

사실 둘 다 쉽게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아니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을 고치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애초부터 야당의 강한 반대가 예상됐던 사안이다. 반대하는 쪽의 논리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1주택 실거주자가 아닌 분양권 전매자나 다주택자에게 혜택을 주는 데 거부감을 갖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그렇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다. 정부 발표를 믿고 의사결정을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바보가 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중대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신임 장관 후보자로선 전임자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주정완 논설위원

Copyright©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