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을' 간다는 박민식 장관, 이 꼬리표는 가져가십시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지난 11월 30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박민식 장관은 이승만과 백선엽을 언급할 때마다 "총선에 출마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난 8월 14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도 "박민식 장관 나와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이 말씀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저의 의지보다는 고객들의 니즈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박 장관이 소속된 국가보훈처는 지난 6월 5일 국가보훈부로 승격됐다. 그 뒤 국가보훈부는 누군가의 '니즈'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고 이승만 및 백선엽 재평가를 추진하는 데 역량이 중점적으로 동원됐다.
윤석열 정부를 대표해 보훈부가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6월 28일에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해 민관 합동사업을 예고했고, 7월 5일에는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달 24일에는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삭제됐고, 사흘 뒤에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 동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8월 14일에는 박민식 장관이 YTN 라디오에 출연해 "기념관 하나 없는 그거는 우리나라 참 이거는 아닌 거죠"라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이종찬 광복회장 같은 사람도 실제로는 찬성하고 있다며 기념관 추진에 힘을 실었다. 9월 10일부터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주도하에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모금이 시작됐다.
▲ 3월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박민식 장관이 즐겨 사용한 것이 '공과 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지난 3월 26일 서울 대학로 인근의 이화장(이승만 자택)에서 거행된 '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공칠과삼이 아니라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며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역사의 패륜아로 낙인찍혀 오랜 시간 음지에서 신음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승만을 몰아낸 4.19의 정당성은 박정희 정권 때 나온 1963년 헌법의 전문에도 반영됐다. 그해 12월 17일부터 시행된 이 헌법은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4·19를 초래한 이승만의 '과'를 지적했다.
그런데도 박민식 장관은 이승만의 행위 중에서 최소 80%는 '공'이라면서 이승만을 미화한다. 부로 승격된 관청을 이런 일에 동원하고 있으니, 그가 주도한 보훈부 승격은 우리 역사에 '공'보다는 '과'를 더 많이 끼치게 됐다.
그가 이승만·백선엽을 띄우는 방식도 '공'보다는 '과'에 훨씬 가깝다. 4·19로 쫓겨난 이승만과 항일군을 추격한 백선엽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래서 이런 사안을 다룰 때는 국민적 논의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박 장관은 그런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설득 방식 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내 머리를 믿어보라'는 취지의 것이었다.
지난 5월 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는 "보훈처장이 되고 나서 많은 자료를 보고 학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내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발언했다. 그가 보훈처장에 임명된 것은 대통령 취임식 사흘 뒤인 작년 5월 13일이다. 그때까지도 이승만을 잘못 알고 있었지만 그 뒤 학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백선엽에 관해서도 동일한 발언을 했다. 7월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에요"라며 이때도 '득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승만·백선엽 평가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대 문제인데도 '깨달았습니다'나 '직을 걸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국민에게 말해왔다. 이 사안에 대한 박민식 장관의 자세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태도까지 여실히 드러내는 일이다.
▲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악수하고 있다. |
ⓒ 대통령실 |
그런데 박민식 장관은 보훈을 성역이 아닌 논쟁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그는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기준으로 유공자를 평가하지 않고 이념과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확산시켰다.
그는 지난 3월 7일에는 보훈처 산하의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 첫 회의를 통해 독립유공자 재평가에 시동을 걸었다. 국민공감위원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기구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는 처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CBS 인터뷰에서 박 장관은 "친일이든 사회주의 활동이든 간에 정말 우리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양립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힘들지 않겠습니까"라며 '무슨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친일이든 사회주의이든'이라며 사회주의와 친일을 동등한 자리에 두는 그의 발언 태도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그의 내면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도의 독립유공자를 따지면 1만 7000분 되십니다"라며 "여기에 대해서 예산 사업으로 전수조사를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전체에 대한 사상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국가보훈부장관 직을 국가정보원장 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발언이다.
이처럼 보훈부 장관이 앞장서서 독립유공자 사상 검증을 추진하는 가운데 지난 8월부터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흉상 문제가 불거졌고 뒤이어 정율성 폄하 움직임이 부각됐다. 김원봉·여운형뿐 아니라 이회영·김좌진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이로 인한 파편을 맞았다.
보훈을 이념 논쟁의 영역으로 떨어트린 박민식 장관의 행위는 보훈의 국민통합 기능을 훼손시킬 뿐 아니라 유공자 및 유족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박 장관으로 인해 국민들과 야당은 보훈부 활동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댈 수밖에 없게 됐다. 보훈부가 이승만과 백선엽 미화 같은 불순한 목적에 국민 세금을 사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보훈부 예산안을 삭감한 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민들이 일치된 마음으로 보훈 업무를 응원해야 유공자 및 유족들이 소액의 지원금이나마 편하게 수령할 수 있다. 지금처럼 보훈부가 극우 기관처럼 되어 정치 논쟁을 유발하게 되면, 보훈 업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져 유공자와 유족들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뒷수습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고객의 니즈'를 명분으로 성남 분당을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책임한 공직자의 모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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