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st] 김기동 ① 포항 50주년에 우승한 나, "성적지상주의"다

김희준 기자 2023. 12. 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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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스틸러스는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1973년 포항제철축구단으로 창설돼 반 세기 넘게 이어져 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클럽이다.

K리그1 우승 5회, FA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3회 등 역사도 화려하다.

그럼에도 올 시즌 포항이 우승컵을 들어올릴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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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포항스틸러스 감독. 김희준 기자

[풋볼리스트=포항] 김희준 기자= 포항스틸러스는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1973년 포항제철축구단으로 창설돼 반 세기 넘게 이어져 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클럽이다. K리그1 우승 5회, FA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3회 등 역사도 화려하다.


그럼에도 올 시즌 포항이 우승컵을 들어올릴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K리그1 하위권 수준의 예산 규모와 두텁지 않은 선수층으로 3개 대회를 치러야 하는 부담 등 현실적으로 우승을 다투는 다른 팀들에 비하면 구단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포항에는 김기동 감독이 있었다. 포항에서만 10년 이상 뛴 구단 전설인 김 감독은 2019년부터 지휘봉을 잡아 모기업의 지원이 줄어들어 열악해진 상황 속에서도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선수단 관리로 매 시즌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올 시즌에는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지난달 4일 홈에서 치른 전북현대와 FA컵 결승에서 4-2로 승리해 10년 만에 FA컵을 거머쥐었다. 스틸야드에서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건 구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헹가레를 받는 김기동 포항스틸러스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 감독은 우승을 확신했고, 선수들은 감독을 믿었다


지난 24일 '풋볼리스트'를 만난 김 감독은 FA컵 우승 소감에 대해 묻자 대뜸 지난 시즌이 끝나고 포항과 재계약을 맺은 이유부터 설명했다. 김 감독은 작년 12월 K리그1 최고 수준의 대우로 3년 재계약에 서명했다.


"사실 작년에 다른 팀들에 오퍼가 많이 왔다. 그런데 포항을 떠나기가 참 애매했다. 곧 50주년인데 포항을 두고 다른 팀을 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 감독도 처음에는 올 시즌 우승하리라는 걸 확신할 수 없었다. 매년 그랬듯 주축 선수들이 타 팀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동계 훈련 기간에 선수단을 새로 조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우승을 차지하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 감독은 동계 훈련을 거치면서 서서히 우승에 자신감이 생겼다. 선수들의 열성적인 훈련 태도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에게 올 시즌 목표를 얘기하면서 확신을 가졌다.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훈련에 임하는 게 보였다. 훈련이 많아 힘든데도 불평 하나 안 하고 훈련장에서 좋은 태도를 보여줬다. 그걸 보고 '조금만 하면 우리는 뭔가 할 수 있겠다. 남들은 걱정하지만 나는 우승컵 하나 들어올려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도 김 감독이 우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때 반신반의했다. 선수들 역시 포항의 사정이 좋지 않고, 외부에서 포항을 바라보는 기대감이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주장 김승대가 FA컵 우승 이후 "올 시즌 시작 전에 감독님께 우승할 자신은 없다고 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정도였다.


김 감독은 "나는 몰랐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우리는 우승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라고 감독에게 얘기할 수도 없지 않았겠나. 감독이 우승하자고 하니까 한 번 믿어보자고 한 걸 (김)승대가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것 같다"며 오히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줘서 우승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했다.


"내게는 리그 상위권에 분명히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FA컵은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니까 조금만 집중하면 분명히 가져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50주년에 우승하겠다고 말했던 건 그런 분석에서 나왔고, 선수들이 나를 믿고 따라와줘서 우승이 가능했다."


김기동 포항스틸러스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남들보다 탁월한" 용병술의 비결, 치밀한 사전 준비와 'K리그 501경기 출장 경험'


포항은 올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포항 선수들 모두가 딱 맞는 옷을 입었다는 듯 적재적소에서 활약했다. 그 결과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고, ACL에서 16강 조기 진출을 확정지었으며, FA컵 우승으로 화려한 결실도 맺었다.


그 중심에는 김 감독의 용병술이 있었다. 김 감독은 상대 전술에 맞춰 적절한 교체 선수를 가져가 경기 흐름을 바꾸고 승기를 잡는 걸로 유명하다. 올 시즌 K리그에서 전술적 선풍을 일으킨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8월 포항전을 앞두고 "경기 중에 서너 번 변화를 주면 상대가 대응이 쉽지 않은데, 포항은 그걸 해낸다. 김 감독님은 보통 인간이 아니다"라며 칭찬할 정도다.


김 감독이 훌륭한 용병술을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치밀한 준비였다. "상대하는 팀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두 가지 정도 준비한다. 운은 없다고 본다. 준비를 하지 않고 운만 바란다면 결코 지속할 수 없다. 경기를 보고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위해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이다. 그래서 용병술이 더 맞아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공격할 때 그에 맞춰서 수비를 하면 상대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또 상대 수비에 허점이 있는데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 허점이 달라진다. 그래서 상대 선수가 바뀌면 또 변화를 줘야 한다. 상대팀과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준비한다."


"올 시즌 용병술이 통했던 경기가 많았지만 기억나는 건 대구FC와 첫 경기였다. (이)호재가 후반에 들어가서 2골을 넣어 3-2로 역전을 했다. 올해 좋은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내 교체 지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게 이어져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한다 해도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건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부상이나 퇴장 등의 극단적인 변수뿐 아니라 자신이 준비한 전술이 통하지 않을 경우 즉각적인 판단을 통해 경기 흐름을 뒤집어야 한다.


김 감독에게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풍부한 경험이 있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20년 넘게 프로에서 선수로 뛰며 K리그에서만 501경기를 소화했다. 사실상 미드필더 전 지역을 소화하며 다양한 포지션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습득했다.


"20년 넘게 프로에서 많은 경기를 뛰면서 느꼈던 것들이 지금 경기를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경기에 대한 큰 틀이나 오늘 누가 잘하는지는 모두가 안다. 그런데 작은 부분들, 상대 허점을 보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많이 다를 거라고 본다. 나는 그런 상대 전술 대응이나 용병술에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지 않나 생각한다. 내 자랑 같지만 확실히 다르다. 자신한다."


포항스틸러스의 FA컵 우승 세리머니. 대한축구협회 제공

▲ 좋은 팀을 위해 필요한 걸 묻자 "첫 번째는 성적이에요"


김 감독은 전술과 선수 관리 양 측면에서 모두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상기했듯 치밀한 전략 수립을 통한 용병술과 상대 전술 대응은 K리그 최고 수준으로 손꼽힌다. 또한 모든 선수가 팀의 기본 전술을 훈련하고 공유하며 포지셔닝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는 포항이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김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신뢰도 두텁다. 김 감독은 훈련장에서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배합해 선수들을 발전시킨다. 또한 선수들과 수직적인 소통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유대감을 쌓으려 노력한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 사적으로 차를 같이 마시며 교감하는 시간을 통해 선수들의 생활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선수단 전체가 한마음이 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선수 관리와 전술 중 무엇이 훌륭한 팀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두 가지 모두 아니었다. 김 감독에게 훌륭한 팀의 최우선 조건은 성적이었다.


"첫째는 성적이다. 성적이 안 나면 구단도 힘들어지고, 나도 힘들어지고, 선수들도 힘들어진다. 프로는 그런 거다. 물론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건 답이 아니다.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결과가 안 좋으면 팀은 강등되고, 감독은 사임해야 한다. 과정은 사람들이 금방 잊어버린다. 아무리 좋은 전술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좋은 전술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뻥축구'라도 결과가 좋으면 좋은 전술이다. 중앙선에서 공격수한테 킥을 때리고, 공격수가 그걸 기가 막히게 받아 골을 넣어 우승까지 하면 그게 좋은 전술 아니겠나. 그러면 후방 빌드업이 필요하지 않다. 패스를 100개 하든 말든 골을 넣으면 그만이다."


김 감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토록 성적을 중시하면서도 즐거운 축구로 선수들과 팬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즐거운 축구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그에게 좋은 성적은 즐거운 축구의 결과물이자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즐거운 축구는 경기 중에, 훈련 중에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축구가 즐겁지 않다면 훈련 때 '왜 이런 걸 하는 거야', 경기 때 '되지도 않는 걸 왜 하는 거야?' 할 거다. 근데 훈련에서 선수들이 재밌게 공을 차고, 시합에서 시키는 거 하면 잘 되니까 슈팅하면서도, 태클하면서도, 수비하면서도, 인터셉트 하면서도 즐거워한다. 그런 축구가 속도감이 있으니까 팬들도 즐거워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슈팅을 많이 해야 팬들이 좋아한다, 뒤에서 패스만 100개, 200개 돌리면 소용 없다. 템포도 올리고, 찬스가 왔을 때 슈팅도 많이 해야 팬들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게 골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선수들과 신뢰 관계는 감독으로서 어떤 것들을 보여줬을 때 쌓일 수 있다. 지금 감독 5년차인데 그래도 5년간 꾸준히 성적으로서 말한 부분을 지켰기 때문에 선수들이 나를 믿고 '감독님이 하자는 대로 해보자'는 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맨날 11위, 12위를 하면 선수들이 '맨날 성적도 안 좋은데 왜 저걸 하자고 그러지' 얘기할 거 아닌가."


김 감독은 올 시즌 성적에 대해 만족하면서도, 스스로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이 아닌 9점을 줬다. "사실 울산하고 우승 경쟁도 해볼 만했다. 그런데 첫 동해안 더비 때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쉽게 끝날 수 있는 경기를 2-2로 비겼다. 내 실수였다. 그리고 홈에서는 0-1로 졌고, 다른 날은 제카 골이 무효가 되면서 0-0으로 비겼다. 우리가 울산만 넘어섰으면 리그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고, 리더로서 응집력 있게 끌어갔어야 했는데 그게 조금은 아쉽다. 다른 건 다 만족한다"며 리그에서 끝내 울산현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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