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문제집 대신 받아드려요"…대구 고2는 알바 써서 샀다

최민지 2023. 12.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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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연합뉴스

“○○학원(문제집), 대리 수령 해드려요.”

대구 한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군은 최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문제집을 대신 받아줄 사람을 구했다. 이 문제집은 학원의 현장 강의를 신청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매주 서울에 가기 힘든 김군은 강의는 녹화 영상으로 듣고, 문제집은 대리 수령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택배로 받았다. 4㎏가 넘는 문제집을 대신 받아주는 대가로 김군은 수고비 등 7000원을 지불했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열풍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지방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치동 교재 대리수령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다. 수요가 늘면서 사업자등록을 내고 대리 수령을 하는 업자도 생겼다. 교육계에서는 학원의 마케팅 전략과 학생들의 수능 사교육 수요가 맞아 떨어지며 생겨난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수고비 줘가며 학원 문제집 받는 지방 학생들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학원 문제집 대리수령 광고 글. 인터넷 캡처
학원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할 때에는 수강생에게 문제집 등을 집으로 배송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방역 지침이 완화된 이후 일부 학원은 문제집 배부 방식을 현장 수령으로 바꿨다.

지방 학생들은 궁여지책으로 대리 수령 아르바이트생을 구해가며 문제집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대리 수령 한 건당 5000~1만5000원의 수고비를 낸다. 아르바이트생은 지정된 학원에 가서 의뢰한 수강생 이름을 대고 문제집을 받은 뒤 택배로 보내준다.

대구의 김모군은 “우리 반만 해도 3명 정도가 대치동 학원 문제집을 대리 수령으로 받고 있다”며 “대치동 수업 자료의 양과 질이 지역 학원에 비해 우수하다보니 헛돈을 쓴다는 기분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대형학원 원장은 “강사들이 낸 문제를 중심으로 현장 강의가 이뤄지다 보니 100만원 넘는 교재 값에도 어쩔 수 없이 구매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리 수령 아르바이트는 중고 거래 플랫폼이나 입시 커뮤니티 등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대리 수령 경험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용 최상급”이라고 홍보하는 글도 올라온다. 대리 수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A씨는 “생각보다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문제집 분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분류 등 신경 쓸 일이 많다”며 “고객들은 부산 해운대구 초고층 아파트, 각 지역 특목고 학생 등이다”라고 말했다.

대리 수령 업체를 표방한 곳도 등장했다. 한 업체는 ‘대치동 현강자료 전문 배송대행 업체’라며 “대리수령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와 오류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홍보했다. 해당 업체 운영자인 정모씨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현금 거래를 하는 사례도 있고, 반복적인 용역 업무를 하며 세금 납부에 문제가 생길까봐 사업자 등록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강의에서 교재 연계, 강의료도 덩달아 올려 받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6월26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에서 배재하는 '공정한 수능'을 실현하겠다며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수능에서 EBS 교재와의 연계율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이날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된 EBS 수능 연계 교재의 모습. 뉴스1
이처럼 수강생에게 제한적으로 문제집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학원가에서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보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마다 문제집 배포 방식이 다르다. 현장 수강생에게만 독점 제공하는 경우는 수업에서 해당 교재를 연계해서 쓰기 때문에 강의료까지 덩달아 오른다”고 말했다.

학원들은 시중 출판사 문제집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한 입시 업체 관계자는 “시중 문제집은 수능 출제진이 모두 사전 검토해서 출제에서 배제한다. 반면 학원의 비공개 독점 문제집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 그만큼 적중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는 지방 학생이 추가 비용을 내면서까지 대치동 문제집을 구매하려는 관행이 근본적으로는 수능 중심 입시 전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혁신교육센터장은 “상대평가로 줄 세우는 수능, 수능으로 대학 입학이 갈리는 현 입시 체제에서는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대리 수령같은 아르바이트도 계속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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