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욕설의 정치

지호일 2023. 12. 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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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국회 안에서의 갑을 관계는 확실했다.

국회에 불려 나온 장관들은 의원들이 억지 논리로 야단을 쳐도 "지적하신 내용을 확인해 보겠다"며 몸을 낮추기 마련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감정 분출을 자제하지 못한 채 싸우자고 드는 정치인들은 이미 한 장관에게 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욕설은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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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누가 뭐래도 국회 안에서의 갑을 관계는 확실했다. 국회에 불려 나온 장관들은 의원들이 억지 논리로 야단을 쳐도 “지적하신 내용을 확인해 보겠다”며 몸을 낮추기 마련이었다. 진짜 존경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질책을 받으면서도 꼬박꼬박 “존경하는 의원님”을 붙여 답변을 하는 게 관행이었다. 각료들을 잔뜩 몰아세운 뒤 “똑바로 하세요”라는 호통으로 마무리하는 게 익숙한 국회 풍경이었다.

그런 면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별종’이라 할 수 있다. 도무지 의원들과의 기싸움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고, 거친 설전도 마다할 생각이 없다. 펀치가 날아오면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식이다.

야당 인사들은 약이 바짝 오른 모습이다. 급기야 적의를 가득 담은 욕설과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9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놈이 선배를 능멸했다”며 한 장관을 향해 선 넘은 말을 뿜어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이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유정주 의원도 가세해 “그래, 그닥 어린넘(놈)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후에도 가히 ‘욕설 챌린지’라 할 정도로 한 장관을 타깃으로 한 조롱 섞인 말들이 이어지는 중이다.

법조기자 시절 종종 접한 한 장관은 자존심도 세지만, 능변인 데다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똑똑하다. 논쟁이 벌어지면 지는 경우가 없다. 후배 기자들에게 “한 검사에게 논리 싸움으로 이길 생각은 마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감정 분출을 자제하지 못한 채 싸우자고 드는 정치인들은 이미 한 장관에게 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 장관도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이 저를 띄운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욕 배틀을 하듯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정치인들의 거친 입이 ‘좋은 정치’ ‘합리적인 정치’가 설 곳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정치의 품격이 아무리 떨어진 시대라 해도 국민을 대표해 금배지를 단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무 저급하고 원색적이다. 그것도 공개된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내뱉어진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정치를 희화화하면서 국민과 정치를 갈라치기 하고 있을 뿐.

사과도 없다. 사과 대신 공격을 한다. 그 행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윤리 기준 자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여러 정치 평론가들은 이런 야당 인사들의 특성을 운동권 출신의 독선과 오만, 선민의식 등에서 찾는다.

눈치 빠른 정치인들이 모를 리 없다. 그것도 튀어나오는 말뿐 아니라 SNS에 올리는 글을 통해서도 폭언을 하는 걸 보면 다분히 의도된 행위로 봐야 할 듯하다. 당장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 섰을 거란 얘기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 할 수 있겠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인지도를 높이고, 당 지도부에는 충성도를 과장하는.

이는 우리 정치 토양이 오염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강욱 전 의원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언급하며 “설치는 암컷”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일으켰지만, 정작 지금의 국회야말로 연일 ‘금수회의록’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우리 정치의 낙후한 수준이 일부 정치인의 입을 통해 조금씩 폭로되고 있을 뿐이다.

말이 정치를 타락시키고, 정치가 말을 타락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욕설은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다. 국민에게 존중은 못 받더라도 욕먹어도 싼 정치는 그만 보고 싶다.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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