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계급 낮춘 ‘국부’ 워싱턴

입력 2023. 12. 7. 00:41 수정 2023. 12. 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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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사진)은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형 로런스에게 틈틈이 글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17세 때 토지측량사로 일하다가 아버지와 형이 세상을 떠나자 막대한 농장을 상속받아 경영했다. 워싱턴은 22세에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농장주보다 군인으로 더욱 유명해졌고, 육군 대령으로 버지니아군 사령관이 됐다. 27세에 한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 마사 커티스 여사와 결혼했다.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이 터지자 워싱턴은 독립군사령관이 됐다. 1783년 전쟁이 끝나자 헌법에 따라 1789년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며 1793년에 재선됐다. 그때 여건이나 명성으로 보면 왕정을 채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세 번째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 농부가 됐다.

신영웅전

워싱턴이 물러나고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애덤스는 워싱턴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1798년에 프랑스와 전쟁이 시작됐다. 애덤스 대통령은 전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가를 찾았으나 전직 대통령인 워싱턴만 한 적임자가 없자 그를 찾아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워싱턴은 지난날 자기가 거느리던 애덤스 밑에 들어가 전쟁을 지휘하기로 승낙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육군참모총장은 현역 군인이어야 했다. 이를 놓고 애덤스가 고민하자 워싱턴은 서슴없이 육군 중장으로 복귀해 프랑스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당시로써는 중장이 최고위 계급이었다.

당시 66세에 이른 워싱턴은 건국 초기의 온갖 전화(戰禍) 속에서 이미 병이 깊은 상태였다. 결국 1799년 군복을 입은 채 세상을 떠나 고향집 마운트 버넌에 묻혔다. 물러난 대통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면 워싱턴을 보면 된다. 왜 우리는 대통령 복이 그리 없는지. 퇴임하기 전부터 집터만 보러 다니니….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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