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단기 대출 ‘브리지론’ 부실 속출···폭탄 돌변 ‘책준신탁’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12. 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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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 리스크 시나리오 분석해보니

부동산 프로젝트금융 리스크가 금융권 시한폭탄으로 대두된 가운데 대체투자업계에서는 내년 총선 이후 진짜 위기가 닥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부동산 PF는 크게 금융과 시공이 핵심인데 두 가지 모두 차질을 빚고 있어 여느 때보다 위기감이 크다는 게 작금의 시장 분위기다.

금융에서는 단기 자금(브리지론· Bridge Loan)을 장기 자금(본 PF)으로 전환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건설사가 시공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원자잿값 급등과 고금리 장기화로 공기가 지연되면서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올 하반기에는 ‘황금알’ 사업장으로 불리던 서울 노른자위 땅에서도 디폴트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부동산 PF 리스크 시나리오를 들여다본다.

강남·용산서도 브리지론 부실

내년 잠재 부실 속속 현실화

부동산 PF는 크게 브리지론과 본 PF로 이어진다.

당장 리스크가 현실화한 연결 고리는 브리지론이다. 특히 브리지론의 대부분 만기가 2024년 상반기 도래한다. 향후 1년간 PF 손실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23개 증권사가 보유한 PF 익스포저(대출채권+채무보증) 24조원 가운데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익스포저는 50% 수준인 11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브리지론이 7조3000억원에 달한다. 상호금융 등 또 다른 2금융권을 포함하면 리스크에 노출된 익스포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PF의 골자는 시행사가 땅을 사고(브리지론) 시공사가 건물을 지어(본 PF) 판매(분양)하는 것이다. 이때 땅을 사기 위해 조달하는 대출이 브리지론이다. 예를 들어, 땅을 매입하는 데 100만원이 필요하다면 시행사 자금을 10%(10만원) 정도 넣고, 나머지 90%(90만원)를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서 최소 10% 이상 고금리를 주고 빌린다. 땅을 확보한 뒤 관할 관청에 ‘여기에 주상복합 또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겠다’며 건축 인허가를 신청한다. 이때 주요 건설사의 책임준공 확약과 함께 인허가를 받으면 본 PF로 전환되며 공사비용을 조달(파이낸싱)할 수 있다. 즉, 공사비용이 100만원 든다면 본 PF에서 200만원을 빌린 뒤 땅 사려고 빌린 90만원(브리지론)을 갚고 나머지 돈 110만원 정도를 공사비로 쓰는 구조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PF의 첫 단계로 땅을 매입하기 위한 고금리 단기 대출 성격이 짙다. 지난해 말 이후 상당수 브리지론이 살얼음판을 걷다 3개월, 6개월씩 가까스로 만기 연장을 해왔던 터라 내년부터 잠재 부실이 줄줄이 현실화할 것을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불패 신화’로 꼽혔던 서울 강남구와 용산 등 노른자위 땅에서도 브리지론 EOD(기한이익상실), 디폴트 사례가 나오자 건설업계 도미노 부도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프리마호텔 부지에 지어질 신축 아파트 ‘르피에드청담’의 브리지론은 기한이익상실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이 사업 시행사는 대지면적 5462㎡(1652평) 규모 프리마호텔 자리에 최고 49층 높이 한강 전망 주상복합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 26곳에서 총 4640억원 규모 브리지론을 받았다. 이 가운데 약 39%(1800억원)를 지원한 새마을금고는 사업성 리스크 등을 이유로 브리지론 만기 연장을 반대했으나 금융당국이 나서 만기가 1년 연장됐다. 만기가 연장되더라도 사업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으로 본다.

앞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업무·상업시설 건축 사업을 위해 키움증권을 금융주관사로 끼고 개발 PM을 맡은 스타로드자산운용 등이 참여한 브리지론은 디폴트 처리됐다. 해당 개발 건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2개 필지로 지하 4층~지상 4층에 걸쳐 업무시설 4개층, 근린생활시설 3개층을 건축할 예정이었다. 브리지론은 선순위 427억원, 중순위 70억원, 후순위 15억원 등으로 총 512억원 규모다. 1차 만기였던 올 5월 말까지 본 PF가 집행되지 않자 2개월 만기 연장 과정에서 투자자 사이 잡음이 불거졌고 결국 7월 말로 디폴트 처리됐다. 고금리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다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로 개발이익 불확실성이 커지자 1군 건설사 대부분이 책임준공을 외면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앞으로다. 금융권에서는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 전국 부동산 PF 사업장에서 한두 차례 연장이 이뤄졌던 브리지론 만기가 돌아오면서 잠재 부실이 줄줄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땅만 매입한 상황에서 브리지론 디폴트가 나면 여기에 참여한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프리미엄을 주고 산 땅을 개발을 위한 삽도 못 뜬 채 매각하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정효섭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브리지론의 경우 이미 만기 연장된 익스포저 비중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재차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차환 또는 PF 전환에 실패하면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부메랑 된 ‘책준신탁’

전국 곳곳서 폭탄 돌변

브리지론 다음 단계인 본 PF도 살얼음판을 걷는다. 금융권에서는 브리지론보다 더 큰 부실 진원지로 신탁사 토지신탁을 지목한다. 부동산 신탁사는 시행사와 계약을 맺고 부동산 대출금이나 사업비 등 자금을 관리하거나 부동산 개발·인허가를 비롯한 개발 사업을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신탁사 개발 사업은 크게 차입형 토지신탁과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나뉜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주도적으로 사업비를 조달한다. 관리형 토지신탁은 책임준공형이 대부분으로 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면 금융사로 구성된 대주단이 신탁사 신용을 담보로 PF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이 입길에 오른다.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은 규모가 작고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시공사(건설사)를 대상으로 신탁사가 신용공여를 제공한다.

사업 구조를 뜯어보면 이렇다. 우선 시공사가 신탁사에 사전 약속한 준공 기한에 대한 1차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한다. 신탁사는 이 책임준공을 지렛대 삼아 대주단을 구성한다. 대주단은 책임준공을 전제로 신탁사 신용을 믿고 PF 대출을 일으킨다. 중소 건설사가 단독으로 시공을 맡게 되면 금융권에서 본 PF 대출이 힘들므로, 신탁사가 건설사를 대신해 금융기관에 책임준공을 약속하고 자금 관리까지 도맡는 구조다.

관리형 책임준공신탁은 일반 신탁 대비 보수가 높아 신탁사 입장에서는 효자 상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토지신탁 수탁액은 2017년 56조원에서 지난해 101조5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이 관리형 책임준공신탁으로 파악된다. 관리형 토지신탁의 상당수가 새마을금고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새마을금고 관리형 토지신탁 사업비 대출 잔액은 2019년 말 1694억원에서 지난해 말 15조5079억원으로 90배 이상 급증했다. 관련 연체액도 2021년 말 60억원에서 지난해 말 602억원으로 10배 늘었다.

‘효자 상품’ 노릇을 했던 신탁 상품이지만 고금리에 건설 업황 침체가 겹치자 수면 아래 있던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첫째,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원자재, 인건비 상승 여파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아예 중단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관리형 토지신탁의 8할은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로 이뤄진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관리형 책임준공신탁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 가운데 시공능력평가 10위 이상 기업은 한 곳도 없다. 100위 이상 기업이 41%로 가장 많았다. 500위 미만 시공사가 27%로 뒤를 이었다.

둘째, 책임준공을 약속했던 중소 건설사가 준공 의무를 포기하거나 기한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했을 경우 이들 건설사는 채무 인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와 건설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방 중소 건설사가 참여한 대부분 사업장에서 건설사가 대주단에게 책임준공과 조건부 채무 인수, 연대보증 약정을 줄줄이 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1~2년간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건비 상승, 파업 등으로 공사 기간이 길어지자 상당수 시공사가 책임준공 기한을 넘겼다. 즉, 이들 건설사가 채무 인수 위험에 노출됐거나 채무를 떠안을 처지에 놓였단 의미다.

대한건설협회와 건산연이 국내 중소 건설사(시공능력평가액 40~600위)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동산 신탁사 참여 PF 사업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탁사가 참여한 총 70개 사업장 가운데 62곳이 채무 인수 약정을 체결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0~2022년 부동산 활황기 시절 착공한 상당수 사업장에서 조만간 책임준공 기한이 도래한다. 채무 부담을 떠안을 건설사가 급증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채무 인수 리스크에 쓰러진 건설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올 5월 말 중견 건설사 신일건설은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신일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해피트리’로 알려진 곳이다. 이 회사는 주택 시장 침체로 주요 PF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자 공사 중단 사례가 속출했고 그 여파로 관련 채무를 줄줄이 떠안았다. 범현대가 정대선 사장이 창업한 HN INC(133위), 대창건설(109위), 대우산업개발(75위)도 신탁 계약에 따른 채무 인수로 존폐 기로에 섰다.

셋째는 신탁사 유동성 리스크다.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면 신탁사가 본래 준공 기한으로부터 6개월 이내 2차 책임준공 확약을 대주단에 제공해야 한다. 이 경우 공사를 진행시키려면 신탁사 자체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재무건전성에 따라 신탁사도 유동성 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신탁사 건전성도 악화 중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올 7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등급을 보유한 6개 부동산신탁사의 지난 3월 말 기준 고정이하자산 규모는 1조7035억원, 비중은 44.3%로 집계됐다. 고정이하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22%, 관련 비중은 약 3%포인트 늘었다. 고정이하자산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 자산으로 집계된다.

대체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이 다수 발생하면 신탁사 자금으로는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계 신탁사는 모기업 지원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상당히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악은 ‘헤어컷 감염’

‘질서 있는 구조조정’ 나설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나 신탁사, 증권사 등이 자금 경색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질 때다. 이 경우, 연쇄적인 채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속칭 ‘헤어컷 감염’이 일어나면 PF 관련 자산 선순위 투자자도 담보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헤어컷은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로, 금융업계에서는 부실 금융 자산의 순자산가치를 현실화하는 것을 뜻한다.

디폴트 우려로 가치가 뚝 떨어진 주식이나 채권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인데, 이때 적용되는 하락률을 헤어컷 비율이라 한다. ‘헤어컷 감염’은 자산 가격 헤어컷이 연쇄적인 ‘마진콜’로 이어지는 경우를 뜻한다. 가령, 액면가 100원짜리 발행 채권을 40% 헤어컷해 60원에 매각한다면 이를 보유한 금융사는 담보 부족으로 마진콜 압력에 시달린다. 금융사가 마진콜에 대응하려면 보유 자산을 시가보다 낮게 급히 팔아야 하고 이는 다시 자산 가치 하락과 마진콜을 유도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대형 금융사가 지금보다 더 긴축적으로 자금을 운영하게 될 때 가장 큰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대출 만기 연장 등으로만 버티는 상황은 부실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 부실 사업장에 대한 고금리 차환은 오히려 부도 가능성과 미래 손실 금액만 키울 뿐이다.” 안영준 하나증권 애널리스트 진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7호 (2023.12.06~2023.12.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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