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송곳' 순천 "지역회생 중요, 당보다 인물"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김성탁 입력 2023. 12. 6. 00:30 수정 2023. 12. 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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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총선 격전지 민심

김성탁 논설위원

지난 1일 오후 전남 순천시 종합버스터미널. 웬만한 광역시만 해도 버스터미널을 쇼핑시설과 복합 개발한 곳이 많지만, 이곳 터미널은 2층짜리 오래된 건물 형태였다. KTX 순천역이 인근에 있어서인지 장거리 버스를 내리고 타는 이들 외에 터미널 주변 식당가 등을 찾는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일 순천 아랫장이 열리자 인도에까지 상인들이 들어찼고 물건을 사려는 발길도 이어졌다. 김성탁 기자

“여그가 터미널이어도 오후 5시만 넘으면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없어요.” 터미널 앞 골목에서 한식당을 하는 박모(67)씨는 낙후된 지방 도시의 실상을 전했다. “원래 순천 번화가는 시청 앞과 중앙시장 근처인데 요즘 가보면 텅텅 비어 있고 문 닫은 상가도 너무 많아요.”


상가 문 닫고 쇠락해 가는 지방


앞으로 4개월가량 남은 내년 총선에서 순천은 이목을 끄는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아성으로 불리는 호남, 그중에서도 전남에서 국민의힘 소속인 이정현 전 의원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보궐선거를 포함해 재선을 한 곳이다. 이 전 의원에 앞서 김선동 전 의원 역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다. 영·호남의 경우 국민의힘 계열과 민주당 계열에 몰표를 줘 왔지만 이미 균열이 나타났었다.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총선에서 다수 당선되는 등 영남에서 균열의 폭은 상당했었다. 반면 호남에선 그 정도가 약했던 것을 고려하면 순천은 매우 독특한 곳이다.

“우리는 당 보고 안 찍어. 사람 보고 찍지.” 박씨는 순천 민심이 다른 호남 지역과 다르다며 이 말부터 꺼냈다. “우리보다 나이 더 먹은 70 넘은 사람들도 목욕탕에서 만나서 얘기하다 보믄 정당 보고 무조건 찍어주는 것은 옛날 말이라고 그래요.”

이 지역 현역 의원은 민주당 소병철 의원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모르것소, 그 양반 표도 좀 있거지만은 소 의원이 지역에 해놓은 것이 없어요.” 박씨는 그러면서 과거 ‘예산 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됐던 이 전 의원의 사례를 들었다. “아 예전에는 이정현씨가 순천에 돈을 많이 갖고 오겠다고 하더니 실제로 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정원박람회가 국가정원이 됐잖아요. 처음에는 여그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해서 쳐다도 안 봤었제. 근디 진짜 돈을 타 갔고 내려왔었다니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곳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은 여럿이다. 민주당에선 소 의원 외에 서갑원 전 의원 등이 활동을 시작했고, 국민의힘에선 천하람 당협위원장이 ‘이준석 신당’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순천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전 의원도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광주 서을과 전남 순천갑 중 어디에 출마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천 위원장과 지역구가 겹치게 되는데, 선거구 획정에서 자신의 고향인 곡성이 어떻게 분류되는지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순천 출마 여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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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각축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순천은 호남에서 노릴만한 지역구로 꼽는 분위기다. 한 여권 인사는 “순천은 광양·여수와 함께 내년 총선에서 ‘호남의 송곳’을 만들 수 있는 지역에 해당한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우고 어떤 공약을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에서 만난 택시기사 전모(68)씨도 그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순천은 국민의힘에서 딱 노리는 곳이에요. 왜 그러냐면 경상도와 가깝기 때문에, 바로 옆이잖아요. 전남에서 딴 데는 아무리 뚜들겨 봐야 안 되는데, 순천은 과거에 뚜들기니까 됐었잖아요.”


오일장에 줄줄이 걸린 출마 현수막


각 정당이 당선을 노려볼 지역으로 꼽기 때문인지 지난 2일 오전 순천 아랫장 주변에는 출마 예상자들의 현수막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아랫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5일장이다. 5일마다 열리는 장이 서자 도로변 인도까지 팔려는 물건을 가져온 상인들이 장사진을 쳤다. 평소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까지 각종 제품을 팔려는 좌판이 차지했고, 물건을 사려는 이들의 발길이 골목골목까지 온종일 이어졌다.

소병철 의원은 현수막에서 ‘민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타이틀을 앞세우며 지역 발전을 챙기겠다고 광고했다. 천하람 위원장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놓고 ‘순천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알려달라’는 내용을 내걸었다. 진보당 이성수 전남도당위원장은 ‘이자 땜에 못 살겠다. 금리 인하!’ 문구를 담았다. 민주당 경선에 나서는 서갑원 전 의원은 이날 아랫장을 직접 돌며 상인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나눠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아랫장 상인들은 순천 윗장은 물론이고 구례장·광양장 등을 돌며 장사를 한다. 저장고에 들어가지 않은 신선한 채소 등을 바로 장에 가져오기 때문에 경상도 지역에서까지 이 장을 찾아온다고 한다. 상인들에게서도 지역 민심의 흐름을 들을 수 있었다.

“제철소가 있는 광양과 여수 쪽은 돈이 많아요. 근디 순천은 돈도 없고 빽도 없어. 국회의원도 힘 있는 사람은 다 목포나 광주 쪽이고, 민주당이 집권해도 뭐를 한다고 하믄 다 그쪽으로 가니 순천이 설움을 많이 받았지요. 호남 다른 지역에선 ‘아무리 그런다고 저쪽을 찍느냐’고들 하지만, 우리는 ‘에이 다른 쪽 찍어 불란다’ 그렇게 된 거죠.” 상대적으로 발전에서 소외됐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예산을 많이 따와 잘 살게 해주는 쪽이라면 어디든 못 찍을 게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50 대 다른 정당 50 구도"


장터 국밥집에서 만난 이모(73)씨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민주당 50, 나머지 정당 50 정도의 구도”라고 말했다. 그는 “소 의원은 앞선 순천시장 선거 때 민주당 후보를 잘못 밀었다가 민심을 많이 잃었다”며 “민주당 간판만 달면 시장 선거에서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노관규 현 시장이 무소속으로 당선되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흔들린 것처럼 출마 예상자들에 대한 평가도 다양했다. 아랫장에서 만난 박모(62)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대부분 안 좋게 평가하기 때문에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으면 아무래도 유리하기는 할 것”이라며 “천하람 위원장이 말은 참 잘하던데, 고향이 대구이고 국회의원을 할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정현씨는 순천 사람이고 과거 밀짚모자 쓰고 골목을 누빈 기억이 있어서 '여당 출신이 되면 또 예산을 따올라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발전을 중시하는 여론 속에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글로컬대학 사업에 광주·전남 지역에선 순천대가 전남대를 누르고 선정됐다. 지방 대학을 지역 전략산업 및 지자체 특화 연계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혁신 대학으로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5년간 국비 1000억원씩을 지원한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 지원되는 사업에서 거점 국립대를 제친 것이다.

순천대에 1000억원 규모 정부 사업에 선정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성탁 기자

"지역 사업도 혜택 돌아와야 의미"


2일 오후 찾은 순천대에는 이 사업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전남 지역은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 의대 신설도 요구 중이다. 대형 종합병원을 가려면 광주나 부산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려면 의대가 필요하다는 여론인데, 목포대와 경합 중이다. 민주당도 전남 의대 설립을 정부에 요청 중이다.

순천대에서 만난 교직원 박모(47)씨는 “어느 정당 소속이건 간에 먹고 사는 데 도움을 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물 보고 찍는 경향이 순천은 강하다”며 “글로컬 사업보다 의대가 어디에 신설되느냐가 더 정치적으로 민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0월 말 종료된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관광객을 끌어모은 효과를 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큰 시민들은 박람회와 관련해서도 외부 평가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식당가가 모여 있는 연향동 거리에서 만난 김모(38)씨는 “국가정원 사업에만 예산을 몽땅 써버려 인근 광양시 등이 수십만원씩 준 코로나 지원금도 순천 시민들은 받지 못했다고 어르신들이 매우 불만스러워 한다”며 “요즘 출마 희망자들만 분주한 것 같던데, 이 당이나 당이나 다 자기들 밥그릇 싸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박람회 입장료 수입으로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와야 결국 지역 사업도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막연히 출마하면 순천에서 당선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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