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왔다. 갔다. 없다. 사람 얘기냐고? 사랑 얘기냐고? 그거 다 시끄럽고 이거 다 눈 얘기다. 기다림을 기다랗게 늘릴 줄 아는 기약의 천재인 눈은 특히나 12월이면 절로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개든 걔든 누구랄 것을 가리지 않는다는 공평함, 개의 꼬리든 사람의 손이든 절로 흔들게 만든다는 자유로움, 무엇보다 비울 만큼 버려 더는 잴 수 없는 무게라는 가벼움.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이 구절부터 옮겨적었더랬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법정 스님, 1998년 2월 24일 명동성당 강론에서)
내 살 짜고 깎는 다이어트에는 혈안이 된 지 오래인데 내 삶 쓸고 닦는 정리정돈에는 얼마나 무신경으로 일관했는지 대청소의 주간을 작심하고 온 집안의 서랍이란 뚜껑 없는 상자를 하나하나 열고 둘둘 뒤지기 시작했다. 앞치마의 끈을 허리춤에 묶기 전에 ‘버리기 힘들어 고민하고 정리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수납 정리에 관한 책이나 정리의 달인을 문패로 건 이들의 유튜브를 연이어 찾아보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손에 쥔 무엇 하나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리는 순간이 예의 잦았다.
나를 끌어내리는 건 물건의 무게가 아니라 필시 그에 깃든 시간의 손이구나. 이 묘한 기시감이 그 길로 날 턴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LP 하나를 꺼내 올리게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의 무거움과 무서움의 말 ‘책임’을 나는 중학교 3학년 겨울 국어나 사회 교과서도 아니고 ‘양희은 1991’ 앨범 중 노래 ‘잠들기 바로 전’의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가사에서 배웠던 듯싶다. 그리하여 자문하는 심정으로 씨불여보는 혼잣말이니, 우리 저마다 맡은 그 책임을 온전히 이행한 채 올 한 해를 보냈을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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