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자 대폭 줄인 삼성…무슨 까닭?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12.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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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투톱 체제’ 내년에도 그대로

삼성전자가 예년보다 한 주 앞당겨 2024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며 신사업 발굴을 전담할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이번 인사에서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반도체(DS) 부문장(사장)은 모두 유임됐다. 2021년 시작된 대표이사 ‘투톱 체제’는 내년 4년 차를 맞는다. 사장 승진자는 2명에 그쳤다. 용석우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부사업부장, 김원경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lobal Public Affairs·이하 GPA)팀장 등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올해보다는 내년 삼성전자 인사폭이 클 것으로 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관련, 이재용 회장의 1심 선고가 내년 1월로 예정된 데다 노태문 사장을 비롯한 주요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선고 결과에 따라 그의 이사회 복귀 등과 맞물려 미래사업기획단의 구체적인 성격과 기능의 방향성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4년에도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좌),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우) 등 투톱 체제를 유지한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은 신설된 미래사업기획단을 이끌며 성장동력 발굴의 중책을 맡았다.
‘투톱’ 유지·용석우 사장 승진

한종희, CE사업부장 겸직

삼성전자는 예년보다 이른 시점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면서 큰 변화를 주진 않았다. 2인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차세대 주자 후보군을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이재용 회장의 부당 합병 관련 선고가 내년 1월 26일로 예정돼 있어 아직은 전문경영인을 대폭 교체하면서 쇄신론을 띄우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대목은 몇 있다.

우선 용석우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다. 그의 승진은 예견됐던 측면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이례적으로 VD사업부에 ‘부사업부장’이라는 직책을 신설해 사업부장을 겸직하던 한종희 부회장 보좌를 맡겼다. 이런 이유로 삼성 안팎에서는 자연스레 용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했다.

1970년생인 용 사장은 미국 뉴욕폴리테크닉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상전략마케팅팀담당 부장, VD사업부 개발팀담당 상무, VD사업부 개발팀담당 전무, VD사업부 개발팀장 부사장 등을 거쳐 VD사업부장 사장에 올랐다. 주요 성과로는 초고화질(8K) 퀀텀닷 발광다이오드(QLED) TV 개발, TV 시장점유율 17년 연속 1위 견인 등이 꼽힌다. TCL·하이센스 등 중국 경쟁사를 견제하는 가운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마이크로LED TV 사업 확장 등이 용 사장 앞에 놓인 과제로 지목된다.

새 사업부장 기용 가능성이 점쳐졌던 생활가전사업부장은 당분간 한 부회장이 겸직을 이어간다. 생활가전사업부는 이재승 전 사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돌연 사의를 표명한 뒤 한 부회장이 겸직을 맡고 있다. VD사업부와 달리 차세대 주자 육성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한 부회장 겸직 체제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존재한다. 이번 인사 전까지 한 부회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DX부문을 총괄하는 동시에 2개 사업부를 이끌면서 사법 리스크가 남아 있는 이재용 회장을 대신해 각종 대외 활동도 챙겼다. 사실상 1인 4역을 맡고 있던 가운데 이번 인사를 통해 VD사업부장 겸직 역할만 내려놨다.

삼성 안팎에서는 한 부회장 1인이 DX부문 전반을 총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개별 사업부의 세세한 전략까지 도맡다 보니 의사 결정에 병목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제기된다. 특히 가전 사업에서는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최근 가전사업부문에서 LG전자가 앞서 가고 삼성이 쫓아가는 듯한 구도가 몇 차례 보인 것이 단적인 예다.

실적 부진으로 한동안 교체설에 시달렸던 경계현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경 사장이 삼성 수뇌부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기보다 경영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한 번 더 부여받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올해 DS부문 적자가 크지만 세계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결과로 경 사장의 경영 능력을 제대로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 사장은 이번에 DS부문을 이끄는 동시에 SAIT(옛 종합기술원) 원장을 겸임한다. 반도체 신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면서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반도체 업황 반등기를 대비해야 하는 책무를 안게 됐다.

경 사장은 올해 업황 부진에도 불구하고 설비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렸다는 점에서 업황 반등기 성과에 따라 재신임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경영인 입장에서는 업황 위축기 때 단기 성과를 노려 막대한 상각 비용이 수반되는 설비 투자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경 사장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시장 지배력 확대를 염두에 두고 설비 투자 규모를 늘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에서 경쟁사 SK하이닉스 대비 확고부동한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것도 그에게 주어진 숙제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던 2019년 HBM 관련 조직을 사실상 해체했다가 뒤늦게 재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탓에 경 사장 체제에서는 HBM 초기 대응 역량에서 SK하이닉스보다 뒤처졌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의 HBM이 수율과 발열 등 이슈로 엔비디아에 마뜩잖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메모리 세계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은 경 사장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체급 키운 GPA실

김원경 사장 존재감 두각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김원경 사장이 이끌게 될 GPA(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실이다. 당초 팀 단위 조직이었으나 김 사장 승진으로 실 단위로 승격됐다. 기존 조직보다 규모를 키우고 수장 체급도 달라진 만큼 삼성 안팎에서는 GPA실의 역할과 기능이 새삼 주목받는다.

GPA는 삼성전자 해외 법인 관리와 현지 정부, 정치권, 재계 등과 소통·협력 기능을 포괄하는 조직이다. 세계 전역에 삼성전자 해외 법인이 진출해 있는 만큼 마케팅 등 시장 전략 외 여러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비시장 전략을 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GPA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전담하는 지속가능경영추진센터도 두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해외 네트워크 관리와 현지 정재계 관계자들과 소통도 GPA실 핵심 업무다. 김 사장이 이 회장의 주요 해외 출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가운데 GPA실 조직 승격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삼성 안팎에서는 김 사장을 주목하는 시선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GPA실이 삼성 외부로 알려지게 된 때는 2017년부터로 파악된다. 2017년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서 당시 김 부사장이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팀장(부사장)’으로 등재됐다. 김수진 GPA실 부사장(당시 상무)도 이때부터 GPA 담당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에는 GPA팀 임원이 김원경 부사장과 김수진, 피터리 등 상무 2명을 포함 총 3명이었다. 올 3분기 기준으로는 김 부사장과 상무 3명 등 임원만 총 4명을 둔 조직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한편, 김 사장은 외교통상부 출신 글로벌 대외 협력 전문가다. 삼성전자에는 2012년 3월 입사했다. 이후 글로벌마케팅실 마케팅전략팀장,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을 거쳤다. 고려대 법학과, 조지타운대 법학 석사, 존스홉킨스대 국제공공정책학 석사를 수료한 뒤 외교통상부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기획단 협상총괄팀장을 맡았다.

미래사업기획단 향방 관심사

사업지원 TF 등 관계 설정 나설 듯

이번 인사에서 주목받는 조직은 신사업 발굴을 전담할 미래사업기획단이다. 삼성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반열에 올려놨다고 평가받는 전영현 부회장이 단장을 맡는다. 1960년생인 전 부회장은 한양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 입사해 D램 개발에 참여한 뒤 1999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약 20년간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전 부회장은 삼성SDI에 부임한 지 약 8년 만에 삼성전자로 복귀하게 됐다.

미래사업기획단의 구체적인 역할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래사업기획단 신설을 계기로 삼성의 M&A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읽힌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2017년 하만(Harman)을 끝으로 사실상 멈췄다. 최근 수년간 IR과 기자간담회 등 공식석상에서 삼성 경영진은 ‘유의미한 M&A’를 수차례 언급했지만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다만, 사업지원 TF가 건재한 가운데 정현호 부회장과의 관계 설정과 TF 간 중복 기능 조율 등 과제가 적지 않다. 현재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 TF가 전자 계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번 인사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삼성그룹은 과거 미전실 이후 전자 계열은 사업지원 TF, 건설 계열은 EPC경쟁력강화 TF, 금융 계열은 금융경쟁력제고 TF가 신사업 발굴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기능 중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두 조직 간 관계 설정이 어떤 식으로 조율될지도 관심사다. 특히 정현호 부회장과 한종희, 경계현 두 대표이사 등 각 조직 수장 간 역학 관계 설정이 관전 포인트다. 미래사업기획단은 대표이사 직속 기구로 차려진다.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한종희 부회장, 경계현 사장이다. 미래사업기획단 초대 단장인 전 부회장은 한 부회장과 직급이 같지만 경 사장보다는 높다. 전 부회장과 정 부회장은 직급과 생년(1960년)이 같다. 삼성그룹 근속 연수는 정 부회장이 앞선다. 전 부회장은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 출신으로 1999년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정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1983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과에 입사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과거 김순택 부회장이 이끌던 ‘신사업추진단’의 행보에 비춰, 이재용 회장의 부당 합병 관련 선고 결과에 따라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설립 전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신사업 발굴, 계열사 간 자원 재배치와 기능 조율 등에 어려움을 겪다 2009년 말 부회장급 신사업추진단을 발족시켰다. 이때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의료기기 등 현재 그룹의 주력으로 자리 잡은 신산업을 포함 ‘5대 신수종 사업’을 발굴했다. 당시 김순택 삼성SDI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단장을 맡은 뒤 2010년 11월 그룹 컨트롤타워로 미래전략실이 만들어지고 초대 실장을 겸임했다. 이때도 2010년 3월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복귀와 맞물려 신사업추진단 신설-미래전략실 재편 등의 수순을 밟았다. 조직 신설 배경이나 목적, 수장의 성격 등 여러 면에서 겹치는 대목이 많다는 점에서 향후 권한의 적절한 분산과 전략 기능에 집중한 미니 컨트롤타워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변수는 이재용 회장 1심 선고 뒤 그의 등기이사 선임과 이사회 복귀 여부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 8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최근 검찰이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하자 삼성 수뇌부는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읽힌다. 삼성은 선고 시 집행유예로 낮춰지거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1심 선고에 대한 검찰과 삼성의 항소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이 회장 사법 리스크의 완전한 해소까지는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7호 (2023.12.06~2023.12.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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