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민기 암 투병…설경구·황정민·크라잉넛 뭉친 사연
“20대 초반 극단 학전에서 처음 연기를 했어요. 첫 사회생활이었죠.” (배우 장현성)
“대학 졸업 후 용돈 벌이 겸 학전 포스터를 붙이다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합류하게 됐어요.” (배우 설경구)
“김광석·동물원·노영심과 같이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시작했으니 학전에서 첫 데뷔를 했다고 할 수 있죠.” (작곡가 김형석)
대학로 대표 소극장 학전엔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의 ‘처음’이 있었다. 개관 33주년인 내년 3월 학전의 폐관 소식에 이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가진 배우와 가수들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일명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다. 내년 2월 28일부터 폐관 하루 전날인 3월 14일까지 약 2주 동안 학전 출신 배우와 가수들이 모여 학전 극장에서 릴레이 공연을 열 예정이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작곡가 김형석, 가수 박학기·박승화(유리상자)·루카(여행스케치)·한경록(크라잉넛), 배우 설경구·장현성·방은진·배해선, 작사가 김이나 등이 참석했다.
박학기는 “스스로의 만족과 위안을 얻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김민기 선배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공연을 열게 된 계기를 밝혔다. 민중가요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만든 가수 김민기(72)는 1991년 음반 계약금으로 학전의 문을 열고,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일궈냈다.
살던 집이 담보로 잡힐 정도로 재정난을 겪었지만, 극장 운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들국화·유재하·강산에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이곳에서 관객을 만났고, 고(故) 김광석은 학전에서 1000번째 공연을 열었다. 4200회 이상 공연한 '지하철 1호선'은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재정난과 김민기의 암 투병이 겹치면서 폐관을 결정하게 됐다. 박학기는 “K팝이 활약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뿌리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과거 (가요계에도) 진흙투성이 길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김민기의 등을 밟고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그 등의 흙을 털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가수 두세 팀과 배우가 함께 하는 콘서트,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헌정) 콘서트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기획될 예정이다. 이날까지 동물원·윤도현·알리·이은미·크라잉넛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한경록은 “록 공연은 홍대에서 많이 하지만, 90년대 중후반엔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많이 했었다”면서 “저의 참여로 더 많은 사람에게 학전이 소개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설경구·황정민·장현성·방은진 등 배우들도 함께한다.
장현성은 “배우가 아닌 관객 장현성의 입장에서도 학전은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학전에 많은 추억을 가진 저 같은 관객들이 본인의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은진은 “기업 후원이나 정부 측에 무언가를 새삼스럽게 바라고 있진 않다. 단순히 공간을 산다고 해서 극장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다만, 폐관도 학전답게 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폐관 전까지 학전에선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비롯해 '지하철 1호선'(31일까지),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내년 1월 6일),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내년 1~2월) 등을 예정대로 이어간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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