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히어로' 김영권, 그가 쌓아온 업적들

이준목 2023. 12. 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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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한국축구 수비수 레전드로 등극... 그 끝은 어디일까

[이준목 기자]

▲ 2023 K리그1 베스트 11, 수비수 김영권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1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울산 현대 김영권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산 현대의 수비수 김영권이 K리그 최우수선수(MVP)라는 또 하나의 업적을 추가했다. 지난 12월 4일 열린 '2023 하나원큐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김영권은 올시즌 소속팀 울산의 2연패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감독 6표, 주장 4표, 미디어 55표를 받으며 환산점수 44.13으로 안영규(광주), 제카(포항), 티아고(대전)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

울산은 챔피언팀답게 이날 김영권이 MVP, 홍명보 감독이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데 이어, K리그1 베스트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5명(조현우, 김영권, 설영우, 엄원상, 주민규)의 선수를 배출하는 경사를 누렸다.

김영권은 MVP가 확정된 후 눈시울을 붉히며 "올 시즌 경기력이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홍명보 감독님이 어떻게 매번 잘할 수 있겠냐고 격려해주셔서 올 시즌에도 우승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은사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어 "축구선수로서 집안에 소홀했는데 아이들 예쁘게 키워주고 남편을 멋진 축구 선수로 만들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이 MVP 트로피에 여보의 땀과 노력이 하나하나 서려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내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했다.

김영권은 2010년 일본 J리그 FC도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래 줄곧 중국-일본 등 해외무대에서만 활약하다가 30대를 넘겨서 지난 2022시즌을 앞두고 울산에 입단하며 처음으로 K리그에 입성했다. 울산은 김영권이 입단하지마자 17년 만의 리그 정상에 오르며 오랜 한을 풀어냈고 올시즌에는 2연패를 이뤄내며 새로운 왕조를 개척했다. 김영권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베스트 11 선정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증명했다.

수비수 버전 '손차박'은 누구일까

한국 축구계에는 이른바 '손차박'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세 명의 레전드 차범근-박지성-손흥민 중 누가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GOAT)인가 하는 논쟁이다. 2020년대 들어 손흥민이 아시아 최초의 EPL 득점왕-유럽무대 역대 한국인 최다골- 카타르월드컵 원정 16강 등 눈부신 커리어를 쌓아올리며 사실상 최후의 승자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손차박'이 모두 공격수(윙포워드)들이라면, 수비수 버전의 역대 최고 선수는 누구일까.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로 꼽히는 홍명보, 현역 최고의 수비수로 불리는 '괴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될 만하다.

홍명보는 한국 선수로는 황선홍과 함께 유이하게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출장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및 최초의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김민재는 한국축구 사상 센터백으로는 최초로 유럽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는 수비수로 세리에A 우승과 베스트11를 수상했며 2023년 발롱도르 30인 중 2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런데 '조용한 히어로' 김영권의 업적도 알고보면 이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김영권은 축구인생 내내 아시아무대에서만 뛰기는 했지만 리그 우승 7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클럽무대에서만 한중일 합산 총 14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당대 최고의 '우승청부사'였다. 여기서 김영권은 몸담았던 소속팀에서 모두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이 중에서 본인이 부진하거나 동료들 덕분에 어부지리로 얻었다고 할 만한 이른바 '버스 우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대표팀에서의 업적도 화려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사상 최초이자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남아있는 동메달을 획득한 것을 비롯하여, A대표팀에서는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전 경기에서 부동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김영권은 U-20 월드컵-아시안게임-올림픽-아시안컵-월드컵 등 연령대별 대회에서 성인대표팀까지 한국축구 국가대표로서 출전할 수 있는 모든 대회를 두루 경험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현재 A매치에는 103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하면서 '센츄리클럽'에 가입했다.

사실 커리어 초중반까지만 해도 김영권은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거나 인터뷰에서의 경솔한 실언 등으로 한창 비난을 받아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장현수-홍정호-곽태휘-김민재 등 역대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주전 센터백 파트너들에 비하여 항상 2인자 정도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팀이 잘할 때나 못할 때나 10여 년 넘게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한국축구를 지탱한 선수는, 공격에 손흥민이 있었다면 수비에서는 단연 김영권이었다.

무엇보다 대표팀은 김영권이 골을 터뜨린 7경기에서 모두 전승을 거두는 기분좋은 징크스를 기록했다. 2011년 세르비아전(2-0 승)에서의 A매치 데뷔골을 시작으로 2015년 1월 아시안컵 4강 이라크전(2-0 승), 2018년 월드컵 독일전(2-0) 결승골, 2022년 카타르월드컵 포르투갈전(2-1) 동점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영권의 득점이 대부분 강팀과의 대결이나 중요한 경기에서 터진 영양가 높은 득점이었다는 점도 '승리요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그리고 이 공식은 소속팀 울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팀에서의 경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클럽무대 성과가 아쉬웠던 홍명보, 유럽파로서의 업적에 비하여 대표팀에서의 업적은 아직 김영권에 미치지 못하는 김민재에 비해, 김영권은 유럽클럽무대 경력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축구 선수로서 가장 이상적인 커리어를 구축했다.

기성용, 이청용, 홍정호, 구자철 등 동시기에 활약한 선수들이 하나둘씩 대표팀에서 은퇴하거나 멀어진 가운데 아직까지 유일하게 건재한 런던올림픽 세대의 마지막 남은 스타이기도 하다. 현재 클린스만호에서도 주장 손흥민에 이어 대표팀의 부주장으로 변함없는 신뢰를 얻고 있다.

김영권은 올시즌을 앞두고 해외 리그로부터 거액의 제안을 받았으나 고민 끝에 울산 잔류를 선택했다. 선수생활 막바지에 유혹을 느낄 만도 했지만, 은사인 홍명보 감독과의 면담 끝에 마음을 돌렸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감수한 부분도 있었지만 끝내 의리를 지킨 보답은, 리그 우승과 MVP라는 돈 이상의 값진 명예로 돌아왔다.

이제 김영권은 어느덧 선수생활의 황혼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도 더 큰 꿈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축구가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2024 AFC 아시안컵, 개인 통산 3번째이자 울산에서의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이다.

김영권은 "아시안컵 우승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다. 또한 울산에 입단할 때부터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앞으로도 김영권이 대표팀에서 진심이었던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명실상부하게 한국축구의 레전드로 등극한 김영권은, 한 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는 타이틀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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