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벤치마킹 하자"던 민주…'한국판 RSU' 입법 착수
전문가들 "스톡옵션보다 안정적…제도 필요"
김병욱 "기업 따라 장점 살리는 혼용도 고민"
더불어민주당이 한화그룹의 임원 성과급 제도인 ‘양도제한조건부 주식(RSU)’ 확대를 위한 입법에 나섰다. RSU는 근속연수나 매출, 이익 등 일정 조건을 달성한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즉시 지급하는 대신 자사주를 특정 미래 시점에 주는 제도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이성수 한화그룹 사장을 국회로 불러 RSU에 대해 경청한데 이어 제도화를 본격화한 것이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식보상 제도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스톡옵션 위주로 주식보상 제도를 취해왔던 우리나라와 RSU 제도가 활성화된 미국 사례 등을 비교·분석하면서 우리가 어떤 제도를 취하고 제도적 뒷받침을 해가는 게 좋을 것인지, 많은 쟁점을 토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금기시돼 왔던 '오너 경영'에 대해서도 과감한 결단과 전략적 판단, 대규모 투자 등 긍정적인 면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RSU는 2000년대 성과급이나 스톡옵션의 대안으로 처음 등장했다. 미국의 대형 IT기업들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은 스톡옵션을 남발하면서 인건비를 줄였고,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됐다. 이후 미국 재무회계기준심의회(FASB)는 스톡옵션 부여 시점에 비용 처리가 되도록 회계 방식을 변경했고, 스톡옵션의 장점이 약화됐다.
당시 대안으로 등장한 RSU 제도는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한 뒤 근속 연수나 매출, 이익 등 일정 조건에 따라 직원에게 추후 지급하는 보상 방식이다. 스톡옵션은 임직원으로부터 주식을 약정된 가격에 매입할 권리를 주는 반면, RSU는 주식 그 자체를 배분한다는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주가 변동의 영향을 덜 받고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만 RSU 제도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도입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세계적 경향을 보면 단기적 의사결정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윤을 내는 미래산업의 경우 RSU 제도로 가는 흐름"이라면서도 "벤처·스타트업 등 초기에 흑자 전환이 어려운 회사에 대해서는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장기 성장·인재 확보' 노리는 RSU, 장단점은?
RSU 제도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전제로 진행된 토론에서 박태윤 성균관대 교수는 "임직원이 옵션 행사에서 차익의 극대화를 위한 도덕적 해이나 회계 부정, 보상 격차로 인한 사기 저하 등 스톡옵션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됐다"며 "그에 비해 RSU의 경우 이를 상대적으로 방지하면서도, 장기적 성과 관리나 동기 부여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김광현 고려대 교수는 '잠재적 우려'에 대해 짚었다. 그는 "경제가 불안정할 때 주식보상의 위험성도 증가하며 임직원이 주가 추이에 지나치게 민감한 경우 업무 집중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식보상은 (대기업 관점에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시킬 수 있으며 이는 주주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 패널들은 RSU 제도를 한국 기업계에 도입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공시'와 같은 제도적 바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동관 부회장이 최근 3년간 계열사 3사로부터 받은 RSU의 현재 주식가치가 300억 상당이며 발행된 RSU 상당수를 김동관 부회장이 수령하면서 승계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김광현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RSU에 대한 규제는 물론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 규제가 필요하지만 '시장친화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규제는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 있고, 마음대로 하되 내용을 소상히 밝히도록 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며 "후자 차원의 (소극적) 규제를 도입하면, 즉 공시라는 형태의 규제를 통해 시장에서의 제도 악용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SU의 대안 격으로 '성과연동형 주식보상(Performance-based Stock Unit·PSU)'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RSU는 기존의 스톡옵션과 비교할 때 주가가 떨어져도 최소한의 보상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업무 동력이 상실되는 도덕적 해이를 부를 우려가 있다고 평가됐다. 따라서 단순히 '근속'이라는 기준이 아닌 매출, 이익 등 '성과'를 기준으로 한 PSU를 도입하면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됐다. 박태윤 성균관대 교수는 "PSU는 주가뿐만 아니라 성과지표와도 연계되기 때문에 임직원의 장기적 성과관리에도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 RSU 제도화 추진…김병욱 "장점 살리자"
현재 국내에서 RSU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기업은 네이버, 한화 등이 꼽힌다. 이날 토론회엔 황순배 네이버 인사총괄이 기업 경험을 공유했다. 황 총괄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네이버의 주식보상 프로그램은 임원들의 책임경영과 핵심인재 유지, 회사와 직원의 성장 공유를 통한 일체감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네이버는 올 들어 스톡옵션을 40만주에서 11만주로 대폭 감축하고 RSU 4만9332주, 스톡 그랜트 21만주 등을 늘리는 방식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수정한 바 있다.
김병욱 의원은 "RSU는 주가가 하락해도 기본적인 이윤이 보장되지만, 스톡옵션은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직원들에 따라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을 원할 수도 있고, 양측의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혼용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에 황 총괄은 "RSU 제도를 통한 장기적 성장 모색이 장점일 수 있지만, 오히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공감을 표했다. 이어 "내년에는 두 제도를 같이 운용하는 것에 대해 이사회를 설득해볼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RSU 제도의 법적 요건을 담은 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스톡옵션의 경우 부여 대상과 한도, 행사기한 등에 제한을 둬 대주주에 의한 남용을 방지하고 있지만, RSU는 아직 아무런 규제가 없다. 일부 기업들이 RSU를 악용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적절한 규제를 통해 재벌 3~4세의 경영권 세습에 악용되지 않도록 막겠다는 취지다.
여당에서도 관련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초 RSU를 비상장 벤처기업도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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