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㊵] 조상의 체취를 박물관에서

데스크 입력 2023. 12. 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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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작은방에는 자물쇠가 채워진 궤짝이 있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이사할 때는 트럭에 싣지 않고 승용차로 옮겨진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구할 수 없는 고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8대 종손 집안으로 대대로 전해져온 3∼400년이 지난 책이다.

고서 중 일부ⓒ

시골 고향 초가집은 지붕 두께가 오십 센티도 더 될 정도로 두툼했다. 오랜 세월 동안 해마다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창고나 헛간에는 오래된 제기나 그릇 같은 조상의 손때묻은 물품들이 수두룩했다. 벽지가 낡아서 새로 붙일 때는 고서를 찢어 초벌지로 바르기도 했다. 공무원이신 아버지가 대구로 전근하면서 필요한 살림살이만 옮겨오고 시골집은 오랫동안 방치되다 헐렸다. 물품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었다면 박물관에서 귀히 모셔갈 민속자료가 되었을 텐데 좁은 전셋집이다 보니 대부분 고가구는 함께 오지 못하고 폐기되다시피 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두 번의 이사에도 오래된 궤짝은 늘 따라 다녔다. 그 속에는 한지로 된 족보를 비롯하여 선조께서 공부하시던 고서와 귀중품이 들어있었다. 어두 컴컴한 다락에 있다 보니 고서를 쥐가 갉아먹기도 하고 습기가 차면서 찢어지거나 묶은 끈이 해지기도 했다.

기증할 고서ⓒ

결혼하고 분가한 이후 아버지께 “다락에 있는 고서를 제게 주십시오. 어떤 책인지 알아보고 관리하겠습니다”라고 하자 흔쾌히 승낙하셔서 서울로 옮겨왔다. 가끔 펼쳐 보아도 한문으로 된 책이라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전문가에게 가져가서 확인해 볼까, 유물 감정하는 ‘TV쇼 진품명품’ 에 출연해서 감정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희귀본이 있어 엄청난 가치가 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상태를 점검해 볼 뿐이다. 책의 양이 많아 이사 다닐 때 불편할 뿐 아니라,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하여도 제대로 관리가 될까 염려가 되었다. 큰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처분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조상에 대한 예의도 아닌듯하여 그냥저냥 지니고 있었다. 계속 보관한다고 하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훼손만 될 뿐이라는 생각에 걱정이 밀려온다.

기증할 고서를 박스에 담은 후 학예사와 기념 촬영하는 작가ⓒ

2016년 겨울 제주도 여행 중에 대정읍에 있는 추사유물전시관에서 세한도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8년의 제주 유배 기간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려준 그림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북경에서 가져온 값진 책을 선물하는 등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리를 지킨 대단한 제자라는 것을 알고 나라면 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2021년 3월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세한도 실물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세한도에 얽힌 사연뿐 아니라, 그림에 덧붙여 청나라 문인 16명과 정인보, 오세창,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의 글이 적힌 두루마리 표구의 길이가 14.695미터에 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을 보았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될 정도로 귀중한 보물임에도 사업가 손창근 씨는 2020년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문화유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헌납하여 많은 국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알고 존경심에 고개가 숙여졌다.

박물관 수장고 박스에 담긴 기증한 고서ⓒ

그 순간 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서가 떠올랐다. 몇 년 전에 상주 목사가 발행한 7대조 할아버지의 준 호구(현 호적등본)를 고향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어 이 유물도 그렇게 할까 생각하고 박물관 측에 절차를 문의한 적도 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책을 내 마음대로 처리한다는 것과 금전적인 가치를 생각하자 선뜻 내키지 않았는데 손창근 씨의 기부 정신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학예사가 집으로 방문하여 흰 장갑을 끼고 고서를 정성스럽게 상자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자 드디어 우리 집안에서 떠나간다는 것이 실감 났다. 수백 년 동안 보관하다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처사인지 그 순간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조상님들도 칭찬해 주실 거라 믿고 더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가기에 기쁘게 보내자고 가슴을 다독였다.

기증 유물 세부 명세서ⓒ

박물관 측은 17종 50권의 책을 분류하고 조사를 한 다음 기증식을 하겠다며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행사 후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수장고에 보관된 고서를 보자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번에 기증한 고서 중에서 경서유초(經書類抄), 불설아미타경(佛設阿彌陀經), 고문선(古文選), 상설고문진보대전(詳設古文眞寶大全)은 3∼400년이 지나 자료적 가치가 높은 고서라고 밝혀졌다. 특히 상설고문진보대전은 뒷부분에 김종직(金宗直)이 1492년, 양몽설(梁夢設)이 1612년, 안경창(安慶昌)이 1616년에 지은 발문이 수록된 희귀본이라고 평가되었다.

기증 유물명세서 책자ⓒ

기증한 50권의 고서를 검토하여 “조남대 기증 유물명세서”라는 69페이지나 되는 책자를 만들어 보내왔다. 드디어 보물함 안에 보관된 채 수백 년을 묵묵히 견디어온 책의 실체를 알게 되어 후련하다. 선조들의 유물이 집안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자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지만, 영구히 보존하면서 전시와 학술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토록 하겠다고 하니 자랑스럽기도 하다. 박물관 측에서 행사 사진과 함께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지역 언론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서 관심 있게 보도했다. 지인들도 “귀중한 고서를 흔쾌히 내놓은 결심에 가슴이 찡합니다”,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감동입니다”, “대단합니다. 같이 활동하는 회원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어 뿌듯했다.

문화재 기증식 후 가족 및 박물관 직원들과 기념 촬영ⓒ

그동안 고서를 아무런 활용도 하지 못한 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며 마음만 졸였는데, 고향박물관으로 이관하자 홀가분하다. 나는 수필가로서 제2의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고 있다. 고서도 우리 집 궤짝 안에 갇혀 지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멋지게 제2의 역할을 할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제 조상님의 체취가 그리워지면 고향박물관으로 달려가면 된다. “왜 나를 여기에 두었냐”고 꾸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대야 참 잘했다”라고 칭찬하실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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