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망캐'의 선택

김동표 2023. 12.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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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외신이 제기한 의문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제대로 환기시켰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현지시간) 한 칼럼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줄어든 점을 지적하면서, 그 영향이 중세 흑사병 시대보다 더 심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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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외신이 제기한 의문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제대로 환기시켰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현지시간) 한 칼럼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줄어든 점을 지적하면서, 그 영향이 중세 흑사병 시대보다 더 심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인구 우위를 바탕으로 남침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저출산 원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학생들을 학원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입시경쟁 문화(경쟁압력),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갈등(남녀대립), 그리고 인터넷 게임 문화 등이 한국 남성으로 하여금 이성보다 가상의 존재에 빠져들게 한 것(현실도피)이 혼인율 하락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경쟁압력과 남녀대립에 비해 현실도피는 원인으로 지적되는 빈도가 그간 덜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축제 2023 LoL 월드 챔피언십의 뜨거운 열기는 냉혹한 저출산의 현실과 묘하게 대비된다.

인터넷 게임판에서 두루 쓰이는 ‘망캐’라는 용어가 있다. 캐릭터를 육성하는 유형의 게임에서 주로 쓰인다. 캐릭터의 능력치를 잘못 개발하거나 능력치 극대화를 위한 정석을 따르지 않은 캐릭터다. 완벽한 쓸모를 갖추지 못하면 망한 캐릭터, 그렇게 ‘망캐’가 된다. 망캐가 되지 않으려면 레벨1에서부터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하는 것은 물론,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완벽한 육성코스를 알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망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망캐를 만든다. 예전의 쓸모가 유행에 따라 불필요한 것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패치와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현시점에서 한국사회를 캐릭터로 본다면 어쩌면 회생이 불가능한 망캐에 가깝다. 때마침 지난 3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초저출산 및 초고령화사회’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냈다. 현재의 저출산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없다면 한국의 성장률이 2050년쯤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68%에 달한다는 충격적 경고였다. 대응책으로 내놓은 것은 수도권 집중 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주택가격·가계부채 하향 안정화 등이었다. 또한 청년고용률, 혼외출산 비중, 육아휴직 실사용기간, 가족 관련 정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잘못 끼운 단추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망캐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현물을 주고 고가의 아이템으로 무장해 결점을 보완하는 것. 그리고 ‘리셋’하는 것. 즉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동시에 무서운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라는 캐릭터는 삭제라는 옵션을 갖고 있지 않고, 가져서도 안 된다. 결국 아이템을 동원하는 것밖엔 남지 않는다. 어떤 아이템을 장착할지는 한은의 지적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 남은 건 하나다. 수도권 집중 완화는커녕 서울편입론을 떠들고, 거품 낀 주택시장을 떠받치느라 엉뚱한 데 온 힘을 쏟는 걸 일단 멈추는 것이다. ‘남성 역차별’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한은이 지적한 저출산의 원인들은 모두 논란과 정쟁이 불가피한, 극히 까다로운 이슈들이다. 지지율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까먹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밀고 나가겠다는 결단과 추진력만이 망캐를 되살릴 수 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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