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됐고 지금은 안된다? [논란 연예계, 기준 없는 복귀①]
2010년, 2013년, 2016년 총 세 번의 음주운전 적발. 결국 2016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대중의 비판 불구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 배우 윤제문 이야기다. 음주운전으로 논란이 되는 후배 배우들의 복귀가 언급될 때마다, 일종의 ‘롤모델’이라는 조롱과 함께 윤제문의 복귀 사례가 매번 소환된다. 연예인에게 ‘복귀’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 셈이다.
마약, 음주운전, 성매매 등의 범죄와 학교 폭력 등 다양한 사건을 일으킨 연예인들은 대중의 질타를 받는 즉시 ‘자숙’에 들어간다.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이기에 대중의 비난을 신경 안 쓸 순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즈음 이들은 ‘복귀’를 노린다. 성공하는 이도 있고, 실패하는 이도 있지만 ‘딱지’는 남는다.
과거 미디어와 대중, 연예인과 대중의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할 시대에는 이들의 ‘복귀’가 의외로 쉬웠다. ‘무릎팍 도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예인끼리 서로 위로하며 “시청자들도 이제 용서해 주실 거다” 등의 뉘앙스의 말로 마무리하면, 이후 작품 활동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젠 논란 후의 ‘복귀’는 그 인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회적 지각의 미묘한 균형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복귀’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연예인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장 속에서도 시간이 약이 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대중의 시선과 상관 없이 활동을 강행하며 '마이 웨이'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반면 차가운 여론에 쉽게 본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연예인도 존재한다.
연예인들의 범죄 종류와 논란 강도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반성의 기미가 보이면 한층 너그럽게 이를 받아들였던 과거와 달리 범법 및 윤리의 잣대가 엄격해진 현재의 시대상이 사고 친 연예인들의 복귀를 마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정서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 은근슬쩍 ‘복귀 가능한’ 마약 범죄
국내 연예계는 현재 '마약 스캔들'로 곤혹을 겪고 있다. 배우 이선균과 빅뱅 출신 지드래곤이 지난달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으며,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이전엔 배우 유아인, 위너 출신 가수 남태현, 돈스파이크, 박유천, 하정우, 주지훈, 등 많은 연예인이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질렀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 연예계 마약 사건이 처음 등장한 건 1975년대 가수 조용필, 신중현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다. 전인권은 1987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이후 1997년과 1999년에 필로폰을 투약했다.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1987년, 199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적발됐다.
1900년대에는 가수 이승철, 박중훈, 신동엽 등이 대마초를 피워 구속됐다. 2000년대에는 연예인들이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경찰 조사 선상에 올랐다. 방송인 에이미, 배우 이승연, 박시연, 장미인애 등이 미용 시술과 통증 치료를 이유로 상습, 불법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가수 싸이는 2001년 11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고 이듬해 1심 재판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올해 8월 개봉한 '비공식작전'에 출연한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도 마약 관련 범죄로 지탄받았다. 주지훈은 2009년 엑스터시와 케타민을 투약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하정우는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한 성형외과에서 19차례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에 휩싸였다.
과거 마약 관련 범죄로 물의를 빚은 이들 대개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동엽은 1999년 체포된 후 2000년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별도의 자숙 기간 없이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다시 활동했다.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배우 주지훈은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복귀했다. 하정우는 2022년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3000만원 벌금형을 받고,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으로 2년 만에 복귀했다. 빅뱅의 탑은 2017년 대마초 흡입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후 여러 차례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으나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2' 촬영 중이다.
비아이는 지난 2019년 6월, 마약 투약 의혹으로 그룹을 탈퇴했으며 2021년 대마초와 마약 일종인 LSD를 구매해 일부를 투약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고 그 해 신곡 '깊은 밤의 위로'를 발표, 현재까지 '워터풀', '코스모스', 'BTBT', '러브 오어 러브 파트1', '두 다이 포', '러브 오어 러브드 파트2' 등의 앨범으로 팬들과 활발히 만나고 있다.
마약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은 자숙 후 유독 쉽게 복귀한 사례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현재 마약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도 ‘복귀 가능성’이 끊임없이 언급된다. 배우 유아인은 지난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프로포폴을 181회 투약하고, 2021년 5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타인 명의로 수면제를 불법 처방 매수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지난달 19일 기소되면서 큰 충격을 안겼지만 그의 복귀 가능성이 전혀 배제되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자, 일반인의 마약 범죄에 대한 안일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연예인들의 처신이 한몫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예인 마약 범죄는 형량이 가벼운 데다 자숙하면 ‘부활’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만든 셈이다. 막대한 돈을 버는 연예인들에게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손해배상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교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음주운전, 과거와 현재 달라진 사회적 인식
마약 범죄가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의 복귀가 수월하다면 '예비 살인자'라고 불리며 많은 사고와 피해가 발생시키는 음주운전 연예인들을 대하는 모습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조형기가 대표적이다. 지난 1982년 MBC 1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조형기는 1991년 음주운전으로 30대 여성을 숨지게 했다. 특히 그는 이후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3년 가석방된 조형기는 같은 해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로 복귀한 후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2010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조형기의 과거 범죄가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5월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가드레일과 가로수, 변압기를 수차례 들이받는 사고를 김새론. 질타와 비난 속에 활동을 중단한 지, 1년 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냥개들', 이아이브라더스 '비터스위트' 뮤직비디오를 통해 복귀 기지개를 켰지만 차가운 여론만 체감했을 뿐이다.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0만원 약식 명령을 받은 후 자숙 중인 곽도원은, 영화 '소방관'과 티빙 드라마 '빌런즈'가 표류 중이다.
이들 외에도 빅톤 허찬, 신혜성, 김새론, 제국의 아이들 출신 문준영, 이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후 거센 비난을 받고, 복귀 전망도 불투명하다.
물론 여러 차례 음주운전 적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연예인도 있다.
허재는 1993년과 1995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으며 1996년에는 만취 상태로 중앙선을 넘어 직진하다가 택시를 들이받은 뒤 조수석에 앉은 친구와 자리를 바꿨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2003년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불법 유턴을 해 사고를 일으켰다. 허재는 2019년 방송인으로 노선을 바꾼 후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뭉쳐야 찬다', '뭉쳐야 쏜다', '골프왕2', '모던허재-99일의 기적', '허섬세원-허삼부자의 허섬일기', '전설끼리 홀인원', '조선체육회' 등 2023년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앞서 언급한 윤제문도 여럿 차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타짜: 원 아이드 잭', '천문: 하늘에 묻는다', '후쿠오카', '한산: 용의 출현', '우수', '웅남이' 드라마 JTBC '재벌집 막내아들', KBS2 '연모' 등에 출연했다. 지난 2017년에는 영화 '아빠는 딸' 홍보 인터뷰 자리에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나타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논란이 됐다.
◆ 논란 자체로 타격 큰 '성 스캔들'
성과 관련된 이슈는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에 과거와 현재 가장 큰 온도차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성매매 이슈 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는 사실상 이경영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01년 미성년자 여성에게 '제작 중인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세 차례의 성관계를 가져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를 받은 이경영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의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후 그는 KBS, MBC, SBS 방송 출연 금지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드라마 출연은 금지됐지만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그를 볼 수 있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의 주, 조연을 맡으며 '또경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8년 방송 출연 금지가 해제되자 SBS '배가본드', '하이에나’, MBC '검은태양', '닥터 로이어', ENA '낮에 뜨는 달' 등 지상파 드라마에도 캐스팅 됐다.
그러나 성 이슈를 일으켰던 다수의 연예인들은 대중매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주병진은 7년 간 법정 공방을 벌여 무죄를 입증받았지만, 활동 재개가 쉽지 않았다.
2013년 2월 한 연예인 지망생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박시후 역시 무혐의 판정을 받았음에도 이미지 실추로 타격이 컸다. 3년 동안 자숙하다 OCN '동네의 영웅'으로 복귀한 후, 드라마 '황금빛 내인생', '러블리 호러블리', '바벨', '바람과 구름과 비'에 출연했지만, 이전처럼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의 경우 2016년 유흥업소 출입 및 성폭행·성매매 논란부터 2019년 전 약혼자인 황하나와 함께 마약을 투약하는 등 여러 사건에 휘말렸다. 한류스타 출신의 건실한 청년으로 셀링포인트를 잡았던 박유천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고, 국내에서는 활동하지 못한 채 해외에서 신곡과 팬미팅을 이어가고 있다.
정준영과 최종훈은 2015년 말부터 수개월간 단체 대화방에서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등 11차례 걸쳐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혐의로 각각 실형을 선고받아, 연예계 생명력이 거의 끝났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 청춘 스타의 치명타 '학교 폭력'
최근 연예계에서 가장 경계하는 건 '학폭 논란'(이하 학폭)이다. 과거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장난 정도로 받아들여지던 학폭은 심각성이 강조되며 개선되어야 할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21년 2월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폭이 세상에 알려진 후 연예계로 논란이 옮겨붙었고, 학폭 미투가 쏟아져 나왔다. 박혜수, 조병규, 김동희, 지수, 심은우, (여자)아이들 수진, 황영웅, 김소혜, 르세라핌 출신 김가람, 김히어라 등 많은 연예인들이 학폭 혐의로 활동을 중단했다.
2021년부터 연예계를 강타한 학폭 문제로 잡음을 일으킨 배우들도 하나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박혜수는 영화 '너와 나'를 통해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 "사실무근"을 주장하고 있고, 이에 앞서 조병규는 7월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로, 김소혜는 8월 KBS2 '순정복서'로 안방극장에 돌아왔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여자)아이들에서 탈퇴한 수진 역시, BRD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고, 11월 미니앨범 '아가씨'로 솔로로 나섰지만, 대중의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학폭 사건들은 명확한 증거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사실을 확인하기 쉽지 않아, 무분별한 폭로도 많았다. 다만 주로 10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젊은 청춘 스타들은 논란 자체로도 이미지에 손상을 입어 아직까지 성공적인 복귀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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