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짓기, '팡테옹아파트=공동묘지아파트' '새누리당=새재앙당'
[신복룡-쿠키칼럼]
이름을 짓고 부르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태초에 창조주와 아담의 대화도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창세기 3 : 9)라는 부름(calling)에서 시작했다.
아마도 경기도의 그 아파트 건설업자는 파리인지 로마를 관광하다가 그저 유서 깊은 곳이라는 말만 듣고 이름도 그럴싸하여 한국에 돌아와 자기 회사가 지은 아파트를 팡테옹아파트라고 지었을 것이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공동묘지 아파트이다. 그 건설업자가 그것을 알 턱이 없다. 그는 그저 졸부였을 것이다.
나는 내 아내와 혼인하기 전에 아이는 셋을 낳고 이름은 나리, 나라, 나래로 짓기로 약속해 두었다. 나는 한글 전용론자는 아니지만 우리 아이 이름을 남의 나라 언어로 짓고 싶지 않았다. 50여 년 전에는 이런 식의 이름이 거의 없었다. 호적 서기는 한자 이름 칸을 채워오라고 출생 신고 서류를 집어 던졌다. 나는 끝까지 싸워 이 이름을 관철했다.
첫 아이가 물려줄 학용품이나 책에 한 획씩만 더하면 굳이 이름을 고쳐 쓸 이유도 없다. 나리에 한 획 더 그면 나라가 되고, 나라에 한 획을 더 그면 나래가 된다. 이름 지어준 대로 첫 아이는 딸이어서 나리(lily)가 맞고, 둘째는 아들이어서 외할아버지처럼 나라에 도움이 되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고, 나래는 내가 헤겔(Georg W. F. Hegel)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과 더불어 나래를 편다”라는 대목이 좋아 그렇게 지었다.
1978년인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회가 연례 행사로 치르는 한글 이름 경연대회에서 가족상 부분에 특상을 받았다. 아이들은 아마 그 무렵에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 점이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식들의 이름이 자랑스럽다.
이를테면, 오래전에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광야에서 겪은 메뚜기 떼의 습격을 ‘누리’라 했고, 지금은 구약성경 ‘열왕기 상’ 8장 37절 이하 여러 군데에 ‘누리’라는 벌레가 나오는데 이는 황충(蝗蟲)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를 여호와가 내린 ‘재앙’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구약성경의 용례와 관계없이 사전을 봐도 ‘누리’는 ‘재앙’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알고 있던 나는 당시 그 대통령인지 후보인지의 측근에게 그 정당의 이름이 합당치 않음을 알려주었지만, 그 측근은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말을 그분께 조언할 사람이 없어요.”
결국 그는 말할 수 없는 ‘재앙’을 겪었다. 작명이라는 것을 그리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에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자면, 우리 시절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Francesca)를 ‘호주 댁’이라고 불렀다. 다 아시다시피, 그는 오스트리아 댁인데 Australia(호주)와 Austria(오지리)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대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
simo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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