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손학규의 분노 "민주당 이렇게 망하는데 걱정 안 하나"
[박소희, 남소연 기자]
▲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선거제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남소연 |
"요새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나라 걱정이 자꾸 심해져서 '좀 걱정하지 말고 살게 해주십쇼' 정치판에 호소하려고 나왔다."
손 고문은 2018년 12월 당시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10일간 단식에 돌입,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동의를 끌어냈다. 그는 "그 뒤 준연동형(정당득표율 절반만 반영)으로, 캡(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도입)을 씌우고, 또 위성비례정당이 만들어지고 아주 누더기가 됐어도 '연동형'이라는 이름은 건졌다. 앞으로 발전시키면 되겠지 기대를 가졌다"며 "그런데 지금 와서 양당이 다시 병립형으로 회귀한다더라"고 짚었다.
손 고문은 "지난달 30일에는 민주당에서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채택을 무산시키고, 거기에다가 이재명 대표는 '멋진 패배해서 무슨 소용 있나'(라고 발언했다)"라며 "이래선 안 된다는 심정을 호소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위기, 저출산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헤아리며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합의의 정치, 통합의 정치로 복원하자. 그 기초를 쌓는 것이 다당제, 그 초석을 다지는 것이 연동형"이라고 강조했다.
손 고문은 '전직 민주당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당을 향해 연동형 비례제와 위성정당 방지법이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선거)공약, 대표공약이었던 만큼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양당 국회의원들이, 특히 민주당 의원과 대표가 선거제도에 대해서 나라를 위해서 결단을 해야 된다"라며 "민주당은 탄핵은 과반으로 하면서 왜 이건(위성정당 방지법) 과반으로 못하나"라고 일갈했다.
▲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선거제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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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고문은 또 민주당의 전반적인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제가 민주당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조금 과격한 얘기를 썼다가 지워버리기도 했다"며 "경기도지사, 성남시장을 지낸 사람이 그 당시 분당에 선거구가 났는데도 인천(계양을) 공천받아서 국회의원이 됐다. 이재명 대표의 책임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의 자존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기서부터 민주당이 꼼짝 못했다"며 "탄핵, 특검 여러 가지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묶는 것"이라고 했다.
손 고문은 "'민주당이 어떤 정당이냐' 이런 걸 생각하면 풀릴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문제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 의원들의 패기가 없어졌다. 초선은 공천에 막히고, 다선은 그냥 뒤로 물러서 있고 중진들도 아무 얘기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에 대한 자존심, 긍지를 갖고 정말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고 논의해야 한다. 그게 안 보인다"라며 "왜 민주당이 이렇게 망해가는데 걱정을 안 하나! 그래서 지금 화가 난다"라고 소리쳤다.
손 고문은 "저도 당대변인, 당대표 할 때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판했지만 그래도 정치에는 격조가 있어야 된다"며 "(현재는) 품격이 완전히 사라졌다. 왜 연동형 비례제를 반윤연대로 생각하냐"고도 말했다. 다만 이처럼 '정치 실종시대'가 도래한 데에는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이념 논쟁을 앞세운 보수세력 결집에 급급"한 모습 또한 책임이 크다고 봤다. 그는 "국가 통합을 위해서 품어 안고 배려함은 지도자의 핵심적 함량"이라며 국정기조 전환을 촉구했다.
다음은 손학규 고문의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소속 의원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홍익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
ⓒ 유성호 |
"얼마 전부터 거대 양당 사이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회귀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11월 30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대선과 당대표 선거 공약인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이 무산됐다. 이재명 대표는 며칠 전 선거와 관련해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 있냐'고 발언하면서 연동형 유지 등 정치개혁 약속의 파기를 시사했다.
여야가 합의하여 연동형을 병립형으로 회귀시키고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하면, 이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대결구도를 심화시키는 커다란 후퇴다.
우리 정치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 이후로 갈등과 대립의 정치, 싸움의 정치로 점철되고 있다. 거대 야당은 압도적 다수 의석을 무기로 탄핵을 마구 자행하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명백한 법안을 의도적으로 통과시켜 국정을 혼란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이념 논쟁을 앞세워 보수세력 결집에 급급해 있다. 이런 정치 현실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진영정치와 패권정치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엄혹한 국제적 대결구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세계의 진영대결이 가속화되고, 반도체 등 신기술 산업에 대한 공급망 재편,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 전쟁의 확산, 기후변화, 그리고 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서 일어나 확산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등 세계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을 '지옥의 해'라고 암울하게 전망하고 있을 정도다.
▲ 이탄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추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한규, 김두관, 민형배, 윤준병, 이탄희 의원. |
ⓒ 남소연 |
다행히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이 연동형 유지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위성정당 방지법을 발행했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지금과 같은 당 분위기에서 용기 있는 행동이다. 다만 제출된 법안 내용을 보면 이정도로는 연동형을 빠져나갈 구멍이 크게 뚫려 있어서 걱정스럽다.
우선 이탄희 의원의 정치자금법 일부 개정안이 제시하는 정당 보조금에 대한 일부 패널티는 연동형 유지에 아무런 효력이 없어 보인다.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놓고 합당을 안 하면 그만이다. 지금도 제명당한 의원들이 당 밖에 있어도 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합당은 대결정치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김상희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75명 의원이 공동제출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 또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율이 지역구 후보자 추천율 100분의 2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거대 정당이 비례를 추천해야 하기 때문에 비례정당을 만들 수 없게 한다는 취지에는 적합하나 부실 비례정당을 양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하나도 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 당선시켜서 나중에 거대 정당과 합당한 사실상의 위성정당이 많은데, 이러한 폐해를 바로잡지 못할 거다. 비례 후보를 내는 정당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구 후보를 내야 하는 방식의 보완이 요구된다.
지금 진행되는 정치상황으로 볼 때 이번 총선에는 어차피 많은 군소정당이 출연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을 억지로 거대 양당에 가둬 놓고 극한 대립의 소도구로 쓸 생각보다는, 이들을 독립시키고 우군으로 만들어서 연합정치의 기초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여당도 과반의석을 꿈꾸기보다는 국회 내 연립정권으로 정치적 안정을 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야 모두, 특히 이재명 대표는 연동형을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입법에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 이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에서 벗어나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 집권이 정치의 목표라고 해서 '선당후사(先黨後私)'가 최고의 덕목으로 칭송되지만, 나라가 어려운 이때 우리는 '선국후당(先國後黨)' 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법리스크에 웅크려진 당을 살리느라 정부와 대통령에게 탄핵이다, 특검이다 공격을 퍼붓지만 민주당은 민주당의 자존심과 긍지, 지도자의 체면을 생각해야 한다. 당 전체가 사법리스크 올가미에 엮여 있는 것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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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여당에 한 말씀드린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께서 나라를 잘 다스려 주길 바랐고 기대했다. 정치 경험이 없다고 희롱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희망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대통령은 온 국민을 끌어안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검찰 출신으로 범법자를 상대하기가 심정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 대표를 상대하고 소통하는 것은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의무다.
국정운영의 실무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사적 인연을 떠나 전문성과 능력 중심으로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은 국정 최고운영자의 중요한 책임이다. 나의 반대자는 물론이요, 잘못을 범한 일이 있더라도 국가 통합을 위해서 품어 안고 배려함은 국가 지도자의 핵심적 함량이다.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와 부산 엑스포 유치의 실패,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난맥상을 거울 삼아 국정운영에 진정한 반성과 획기적인 전환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들과 산에나 다니고, 막걸리나 마시고, 그동안 소홀했던 집안일이나 돕고, 책이나 읽으면서 한가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일생을 부대끼며 살아온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그리고 국가 번영 문제 때문에 요즘 걱정이 날로 더 심해지고 있다. 나라 걱정 없이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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