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쇠고기'가 삼시세끼 가능한 곳 [세계여행 식탁일기]

김상희 입력 2023. 12. 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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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물가 변화와 여행자의 한 끼 경제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자말>

[김상희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선선한 공기와 보라색 꽃이 맞아주었다. 도시 이름 '좋은 공기'에 어울리는 도시라 감탄한 것도 잠시, '좋은 공기' 속에 들어온 지 딱 1시간 만에 대낮 대로변에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내 손의 핸드폰을 낚아채 달아났다. 숙소 앞에 막 도착해 문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로호(Rojo 빨간색)! 로호!' 소매치기 남자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고함 소리에 길 가던 청년 둘이 소매치기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도둑을 뒤쫓던 청년 하나가 되돌아와 '못 잡았다'라고 했다. 숙소 쪽으로 돌아서려는데 다른 청년이 돌아왔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가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빼앗긴 내 폰이 들려있는 게 아닌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역시 '좋은 공기'였다.

아르헨티나식 고기 요리법

소매치기를 당한 직후에도 배는 고프더라. 동네 식당을 찾았다. 쇠고기 메뉴가 많아 한참을 읽은 끝에 등갈비와 갈빗살구이를 시켰다. 고기도 샐러드도 너무 맛있어서 오늘의 불행도 다행도 잠시 잊었다. 식사비는 1만 페소! 한국 돈 만오천 원이 '와인과 쇠고기, 두 사람 식사비'라니 이건 또 무슨 반전인가?

식당에 가려면 쇠고기 부위 이름을 좀 알아야 했다. 저렴하면서 질 좋은 쇠고기로 유명한 나라답게 식당의 주메뉴가 대부분 쇠고기 요리이고, 부위별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요리법은 없다. '고기에 아무 짓도 안 하기'가 아르헨티나식이다. 소금만 쳐서 굽는다. 고기 굽는 정도를 묻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굽기로 구워 내기도 한다.
 
 쇠고기 종류를 골랐더니 진짜 쇠고기 한 덩이만 접시 위에 투척해 놓았다. 샐러드나 감자 등과 같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 김상희
쇠고기가 질릴 때쯤 초리판(Choripán)과 푸가제타(Fugazzetta) 피자를 만났다. 굵은 입자로 갈아 만든 소시지를 숯불에 직화해 바게트에 끼운 초리판은 아르헨티나식 햄버거이다. 피자를 모차렐라 치즈 맛으로 먹는 나는 푸가제타와 사랑에 빠졌다. 반달 모양의 크로와상인 메디아루나(Media Luna)는 커피 한 잔만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초리판. 소시지 위에 치미추리 소스만 얹어 바게트에 끼워 먹는다.
ⓒ 김상희
  
 피자 도우 안에 치즈가 한 층 들어가고 양파로 토핑하는 푸가제타 피자
ⓒ 김상희
 
 
 반달 크로와상 메디아루나?
ⓒ 김상희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도시 풍경도 먹는 문화도 유럽 스타일이었다. 우리 돈 만오천 원이면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고 1500원이면 이태리식 커피를 마신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삼시세끼 '와인에 쇠고기' 여행이 가능한 곳이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요광장(Plaza de Mayo)
ⓒ 김상희
여행자의 한 끼 경제

아르헨티나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하는데 여행자 물가는 왜 반대로 느껴질까? 현지 돈이 돈값을 못하고 있는 데다가 여행자는 하루가 다르게 가치가 오르는 달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뭉칫돈이 돌아다닌다. 100달러 짜리 1장을 아르헨티나돈으로 바꾸면 1000페소짜리가 거의 100장이 생겼다. 지갑 대신 고무줄로 묶어 다녀야 한다. 두 사람이 밥 한끼 먹으면 20장, 시외버스표 사면 40장쯤 나가니 적어도 100장은 품에 넣고 다녀야 하루를 여행한다.
 
 암환전 결과, 100달러 1장에 1,000페소 한 뭉치를 받았다.
ⓒ 김상희
 
현지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다지만 단기로 방문하는 여행자가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반면에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삼 주 동안 달러 가치는 계속 올랐다. 암환율로 달러를 환전해서 현금을 썼다. 여행 초 1달러 800페소로 바꿨는데 열흘만에 1,020페소를 환전한 적도 있었다. 내 주머니 속 100달러 1장이 요술을 부려 2만 2000페소(한화 3만 원), 2인분의 최고급 외식비를 벌어온 셈이다.
 
 아르헨티나의 두 가지 환율, 암환율이 공식환율의 2.6배에 달한다(2023.11.10기준).
ⓒ 김상희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경제 불안으로 현지인들이 자국 화폐를 믿지 않고 달러를 사 모으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식 환율보다 더 많은 페소를 주고 달러를 사는 암시장이 고착되어 '공식환율과 암환율'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거래는 암환율로 이뤄지고 심지어 신용카드 결제도 암환율을 반영하니 암환율은 사실상 실질환율의 다른 이름이었다. 

11월에 치른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치솟기만 하던 암환율이 조금 잦아드는 추세이다. '인플레와 화폐 가치 폭락, 공식환율과 암환율의 괴리'라는 세계 유례없는 경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새 대통령이 달러를 자국 통화로 쓰겠다고 공약했다고 한다.

경제가 되살아나야 도시 빈민들도 노숙자도 소매치기도 줄어들 것이다. 이또한 여행자의 안전과 무관하지 않다. 하루빨리 경제가 안정되어 관광도 늘고, 내가 하는 여행이 아르헨티나 경제 선순환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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