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집게 손 히스테리

양성희 입력 2023. 12. 4. 00:30 수정 2023. 12. 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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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년 전에도 이 지면에 ‘집게 손이 뭐길래’라는 글을 썼었다. 집게 손가락 포즈가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반발로 기업·기관이 멀쩡한 홍보물 속 관련 이미지를 교체한 일에 대한 글이었다. 요 며칠 새 또다시 집게손가락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발단은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리마스터링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이었다. 0.1초 프레임 단위로 스쳐 가는 이미지를 누군가가 잡아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손은 주먹을 쥐거나 펴지 않으면 무언가를 집어 들거나 엄지·검지를 오므리는 집게 손 포즈를 취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곧바로 ‘페미들이 은밀하게 숨겨 놓은 남혐’이란 지적이 나왔다. 원화를 그린 하청업체의 여성 애니메이터가 지목됐다. 과거 SNS에 “은근슬쩍 페미 해줄게” 등 ‘페미’ 발언을 했다는 게 근거였다.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그가 작업한 다른 게임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넥슨과 하청업체는 즉각 사과했다. 넥슨은 전수조사를 시작했고, 애니메이터는 직장을 떠나야 했다. 불과 4일 만의 일이다.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이 남성혐오 논란에 휘말렸다. [회면 캡처]

불붙은 ‘남혐 집게 손 색출’ 열기는 꺼질 줄 몰랐다. 다른 게임들은 물론이고 일반 기업의 기업 홍보 영상, 사내 게시판과 메신저, 신입사원 채용 홍보 영상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게 진짜 ‘페미들이 숨겨 놓은 남혐의 표식’인지, 아니면 별 뜻 없는 자연스러운 손동작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였다. 상황은, 문제가 됐던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캐릭터를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 그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대 반전을 맞았다. 그러나 이 기사에도 조작 보도란 댓글이 달리며, ‘집게손가락 히스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 또다시 불붙은 ‘페미 집게손' 논란
게임, 기업 홍보물까지 색출 나서
사실 확인 없는 남혐 딱지가 문제

도대체 집게손가락이 뭐길래 이 난리인가. 집게손가락은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비하적 표현으로, 한때 여성 혐오를 남성에게 반사하는 ‘미러링’ 전략을 내세웠던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해당 사이트는 폐쇄됐고, 미러링 전략 또한 시효를 다했다는 평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도 성기 사이즈를 조롱하는 표현을 곳곳에 심어 놓는 것을 운동 전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페미니즘과 사이즈가 무슨 관계인가. 사이즈를 물고 늘어지는 페미니즘도 페미니즘인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말대로 “남성에 대한 성희롱·조롱 표현을 남성 소비자가 많은 서비스에 넣으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추측만으로 자연스러운 손동작까지 남혐 딱지를 남발하며 페미니즘 사상 검증의 수단으로 삼거나 노동권 침해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다.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하청업체에 법적 대응 운운하고 여성 근로자의 생존권을 박탈한 넥슨의 책임이 크다. 소비자 불만에 약한 기업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2년 전 최초의 집게 손 논란이 나왔을 때 즉각 꼬리를 내린 GS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청, 무신사 등이 잇따라 이미지를 내리면서 ‘일체의 집게 손=남혐’이라는 공증을 해 준 꼴이 됐다. 결국 앞으로 이런 소모적 논란을 피하려면 아예 집게 손 포즈를 금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니 황당하고 씁쓸하다.
일부 유저들은 ‘국내 페미의 만행을 알리겠다’며 해외 커뮤니티에 소식을 퍼날랐다. 가뜩이나 ‘숏컷 페미’라는 이유로 20대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사건이 외신을 타면서 망신살이 뻗친 상황이다. 외신들은 페미니즘 코드의 메가 히트 영화 ‘바비’가 한국에서 부진한 것에 대해서도 ‘안티 페미’라는 사회적 압박 탓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 자신이 남성이지만 일련의 사태를 사이즈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발작 버튼’이라는 차원의 글을 SNS에 올렸던 미국 퍼듀대 박치욱 교수는 악플 세례를 받고 고소를 준비 중이다. 최근 퍼듀대 ‘다양성’ 담당자에게 박 교수를 “페미나치”라고 고발하는 메일이 왔다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암담하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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