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유전자 가위’ 치료 열리나…‘선천성 빈혈’ 유전자 치료제 첫 승인

이은희 입력 2023. 12. 4. 00:26 수정 2023. 12. 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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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유전자 치료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영국의 의약품 및 건강관리제품 규제기관(MHRA)이 지난달 16일 심각한 유전질환인 낫모양적혈구빈혈증과 베타지중해성빈혈의 새로운 치료제인 ‘카스게비’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카스게비는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만든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며, 앞으로 더욱 커질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DNA 분자코드로 구성된 생명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왓슨과 크릭을 위시해, 지난 세기 분자생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밝혀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몸을 만드는 정보가 DNA라는 일종의 분자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코드가 0과 1의 두 종류라면, 생명체의 DNA 코드는 A·T·C·G 네 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드가 바뀌면 출력 결과가 달라지듯,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 코드에 결손이나 중복·대치 등의 오류가 생기면 생물학적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전질환이다.

「 지난달 영국서 처음으로 공인
고장난 유전자 편집·보완 방식
안전하면서 시장 가치도 높아
유전성 질환 치료 기대감 커져

사람의 적혈구를 확대한 모습. 영국 의약 당국이 지난 달 16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개발한 유전 성 빈혈 치료제 ‘카스게비’에 조건부 판매허가를 승인했다. [사진 픽사베이]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 따르면, 현재까지 근거가 알려진 유전질환의 수는 총 7450종이며, 연관 유전자는 4859종이다. 밝혀진 유전자에 비해 유전질환의 수가 더 많은 것은 한 유전자 안에서도 오류가 나타나는 위치에 따라 유발되는 증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증상도 다양하지만, 유전질환의 원인은 유전자 코드의 오류이므로,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유전자 자체에 손을 대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수십 조(兆)에 달하는데, 세포마다 들어 있는 30억쌍의 DNA 위에 위치한 2만개 유전자 중 정확히 해당 유전자만을 찾아내어 이를 일일이 교정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최초의 유전자 치료 부작용 사망자인 제시 겔싱어는 1999년 유전자 운반체로 쓰인 아데노바이러스에 대한 급속면역거부반응으로 치료 시작 4일 만에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유전자 치료의 개념이 형성되고도 실제 성공한 건 수십 년 뒤의 일이었다. 1990년, 선천적 면역결핍증을 앓던 아이의 혈액을 채취해 백혈구를 분리한 뒤, 여기에 정상 유전자를 삽입해 증상을 완화한 것이 최초의 성공이었다. 이후 유전자 치료는 그간 이렇다할 치료 방법이 없어 고통받던 수많은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로 떠올랐으며, 지난 30여년 간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럼에도 이번 카스게비에 붙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기존의 유전자 치료가 대부분 오류가 발생한 유전자를 대치할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카스게비는 개인이 가진 유전체를 적절히 편집해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오타가 난 단어를 수정할 때, 전자가 틀린 글씨 위에 맞는 단어를 풀칠해서 붙이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 단어가 쓰인 문장의 앞뒤를 적절히 편집해 뜻이 통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그리고 유전자 편집 치료의 첫 대상이 된 것이 바로 헤모글로빈이었다.

적혈구 속 산소운반체인 헤모글로빈은 4개의 헴(heme) 단백질에 알파 사슬 2개와 베타 사슬 2개가 결합한 구조의 복합 단백질이다. 이중 베타 사슬을 이루는 유전자에 오류가 생기면 그 위치에 따라 낫모양적혈구빈혈증이나 베타지중해성빈혈이 발생한다. 연구진들은 이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 직후에는 별 이상이 없음에 주목했다. 이는 태아와 성인의 헤모글로빈은 구성 성분 자체가 다르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성인의 헤모글로빈은 헴+알파+베타로 구성되지만, 태아 시절에는 베타 대신 감마 사슬로 헤모글로빈을 만든다. 감마 헤모글로빈은 베타 헤모글로빈에 비해 산소와의 반응성이 더 좋아서, 태아가 모체의 혈액에서 산소를 쉽게 넘겨받게 만든다. 하지만 출생 이후에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 베타만으로도 충분하므로 헤모글로빈의 구성이 바뀐다. 이때 감마를 만드는 유전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이 억제될 뿐이다.

연구진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출생 이후 감마를 억제하는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했다. 그랬더니 환자의 체내에서 다시 감마 헤모글로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들이 제 기능을 못 하는 베타 헤모글로빈을 대신하여 산소 운반을 담당하면서 증상이 개선되었다. 임상실험 결과, 해당 제품으로 유전자 치료를 받은 환자의 90% 이상에서 1년 이상 해당 질환의 주요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건강을 유지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치료를 통해서.

미국도 유전자 치료제 승인 앞둬

이번 카스게비의 승인으로 인해 유전자 치료제의 시장은 새롭게 변모하는 기회를 맞이했다. 고장 난 유전자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치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퍼를 사용해 유전 정보를 적절히 교정하고 편집하는 방법은 더 안전하면서도 더 시장 가치가 높다. 외부 유전자를 도입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이로 인한 위험은 사라지고, 크리스퍼의 높은 정확성과 편의성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사건이 없으면 카스게비는 머지않아 미국 FDA에서도 승인되리라 예상된다.

이 외에도 유전성 망막색소 변성증 유전자 치료제 등 몇몇 임상실험 중인 크리스퍼 기반 유전자 치료제 역시 효과가 좋아 승인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둘러 새롭게 열리는 유전자 치료제의 효과가 더 절박한 이들에게 먼저,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닿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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