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거절이 열어준 또 다른 길... 웃음이 났습니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이것은 사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트로츠키가 살았던 집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이었죠. 저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메일을 열어 확인해 봤습니다.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의 신청 상태가 변경되었으니 확인해 보라는 메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ESTA를 열흘 전쯤 신청해 승인을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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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절된 ESTA |
| ⓒ Widerstand |
제 신청이 거절된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범죄 이력도 없고, 과거 미국에 입국했던 적도 없습니다. 이란이나 쿠바, 북한처럼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에 입국한 경력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ESTA가 거절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승인을 받았다가, 나중에 거절로 상태가 바뀌는 것도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ESTA는 승인된 뒤에도 주기적으로 점검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특별한 일 없이 상태가 변경되는 사례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이제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서 거절을 받았으니, 미국 대사관에서 공식적인 관광 비자를 받아야 했죠. 하지만 긴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제가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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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 폭포. 건너편이 미국이다. |
| ⓒ Widerstand |
이 모든 티켓을 전부 취소해야 했습니다. 가장 싼 가격의 항공권을 골랐기에, 돌려받은 돈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빠듯했던 여행 비용에는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여행 일정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칸쿤에서 토론토에 들렸다가, 거기서 뉴욕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죠.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막혔고, 열흘 가까이 계획했던 미국 여행 기간이 그대로 비워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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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 폭포 |
| ⓒ Widerstand |
막혀버린 국경 덕분에 함께 며칠을 보낼 수 있었던 셈입니다. 오랜만에 밤이 가는 줄 모르고 한국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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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토의 아침 |
| ⓒ Widerstand |
하지만 이번에는 한 도시에 머물며, 거주민들의 삶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새로운 여행의 경험이 되겠죠.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이, 며칠을 지나면 다시 보이기도 했습니다. 궁금한 것도 오히려 많아지더군요.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계획에 없던 나이아가라 폭포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폭포 건너편, 아주 가까이 미국 땅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미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가지 못한 미국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게는 막힌 국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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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 폭포 |
| ⓒ Widerstand |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까지도 이런 예상 밖의 일은 언제나 벌어지겠지요.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변칙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니까요. 메일 한 통에 모든 것이 변해버린 순간,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여행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이 제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많은 것이 막힌 순간, 이번에 저는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변의 도움과 운이 많이 따라준 결과물이었죠. 남은 여행에 필요한 온기와 환대를 충분히 얻고 토론토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앞으로의 여행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때도 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그렇게 다가올 새로운 기회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또 당황하고 어지러운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그 뒤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겠죠. 그것이 '기회의 땅' 미국이 제게 선물해 준, 저만의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까 농담처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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