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둘째 고민하는 부부가 아이 낳게 해야
요즘 ‘피크 코리아’란 말이 자주 언급된다. 대한민국이 정점을 찍었고 이제는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까지 떨어지고 있다. 근저에는 심각한 저출산이 자리 잡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7일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세대의 변화(2000~2020)’를 보자. 지난 1990년 1385만 명이던 청년세대 인구(19~34세)가 2020년 1021만 명으로 줄었다. 2030년 898만 명, 2035년엔 797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청년 인구가 주는 것도 문제지만 비혼과 늦은 결혼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30~34세의 미혼 비율이 2000년엔 18.8%였는데 2020년엔 56.3%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증가(전년 동월 대비)했던 결혼 건수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29일 나온 '9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결혼 감소 비율이 두 자릿수(-12.3%)가 됐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결혼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다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덜 하니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0.78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올해 0.7명대 초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대책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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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만혼 늘고 출산율 위험선
사회 진출과 결혼 나이 당겨야
아빠 육아휴직제부터 확대를
」
몇 달 전 영화관에서 광고를 봤는데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처음엔 무슨 공익광고인 줄 알았다. KCC건설이 제작한 ‘문명의 충돌 시즌2 신문명의 출현’이라는 광고인데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어려움을 다소 코믹하지만 무척 현실적으로 다뤘다. 지난 7월에 나온 영상인데 살펴보니 유튜브 조회 수가 3598만회나 되는 히트작이었다. 댓글을 보니 “공감한다” “육아가 힘들지만 위로가 됐다”는 내용이 많았다. “저출산 정책에도 도움이 될 듯… 보건복지부 장관님 이 광고 보고 계시나요?”라는 댓글도 보였다.
말마따나 광고 마지막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내가 “근데 뭐 둘보다는 셋(첫째)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하니 “남편이 한 명 더(둘째) 낳고 싶기도 하고…”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가 놀라는 표정을 하며 남편을 쳐다보는 장면도 나온다. 유튜브 영상엔 안 나오지만 영화관에서 본 영상 말미엔 부부가 둘째를 가질 듯한 여운도 남긴다.
광고처럼 첫째를 키운 사람은 어느 시점에 둘째를 고민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퇴직이나 은퇴할 때까지 아이를 제대로 키워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 대책은 광고에 나오는 신혼부부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빠 육아휴직, 가사 도우미 지원 등을 확대하자
물론 해당 광고에 대해 “아이를 꼭 낳으라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혼과 자녀를 갖는 문제는 당사자의 선택이 중요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 억지로 시킨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다만 광고의 주인공 부부처럼 첫째를 낳고 둘째를 생각한다면 그런 고민을 덜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년부터 혜택을 주는 다자녀 기준이 2명으로 바뀐다. 2자녀를 낳을 경우 국민연금 납입 기간을 1년 인정했던 국민연금 출산 크레딧을 앞으로 1자녀부터 12개월을 인정한다고 한다. 이보다 더 과감하게 할 수는 없나. 국민연금 전체에 재정을 투여하긴 어렵지만, 이런 지원엔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출산 크레딧이라는 말도 어렵다. KCC 광고처럼 정책을 만들면 좋겠다. 출산연금이나 출산가산연금 같은 쉬운 말은 없을까.
한편으론 결혼 연령과 출산을 당길 수 있는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결혼과 첫째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둘째를 낳기 어려워진다. 난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남자는 병역도 마쳐야 한다. 현역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었음에도 사회 진출은 더 늦어진 것 같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나 삼수를 하고, 대학생활 중에도 스펙 쌓기를 위해 휴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까지는 험난한 길이다. 어려운 문제지만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차근차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 섣부르게 꺼냈다 바로 철회한 5세 입학도 그 취지를 살려야 한다. 어떤 형태든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를 당겨야 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도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자발적으로 시작한 육아 친화적 시책 중 성공 사례가 나와야 한다.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확산하는 게 바람직하다.
KCC건설이 만든 이런 광고도 신혼부부에게 위로가 되고 가족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그런 가치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글=김원배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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