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무릎에서 일어서는 여자... 왜 그림 제목이 '깨어나는 양심'일까 [진혜윤 교수의 미술, 도시 그리고 여성]

진혜윤 입력 2023. 12. 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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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윌리엄 홀먼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

진혜윤(한남대 회화과 교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베아테 베아트리체(축복받은 베아트리체) 1864-70.
ⓒ Dante Gabriel Rossetti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는 특유의 여성 이미지로 유명하다. 이들은 대체로 길게 늘어뜨린 탐스러운 곱슬머리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중세시대의 튜닉 드레스를 입고 몽환적인 표정으로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술가의 뮤즈, 부조리의 희생양, '타락한 여성(fallen woman)'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이들은 중세 시대 또는 문학작품을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라면 과학적 진보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다. 다시 말해 탈주술화 시대를 살았던 라파엘전파는 왜 중세적 세계관과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신비주의적인 화면을 연출했던 것일까? 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대신 마술적 사고로 역행했던 것일까?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화가들

라파엘전파는 1848년 영국왕립미술원에 재학중이던 세 명의 미술학도,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릿 밀레이를 중심으로 발전한 유파다. 단체명이 암시하듯 이들은 왕립예술원이 모범으로 삼았던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Raphael Sanzio)의 고전적 이상미를 거부하고, 그보다 이전 시대(pre)의 미술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왕립예술원의 가르침이 구태의연한 형식주의를 기계적으로 반복 재생할 뿐이라고 봤다. 한마디로 라파엘전파는 미술의 규범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한 개혁가들이었다.
 
 오필리아(John Everett Millais, 1851~2)
ⓒ John Everett Millais
 
라파엘전파는 특히 자연 관찰에 따른 충실한 세부 묘사와 밝은 색채가 특징인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세상 어느 곳에도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여기고 화면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채색한 이 시기의 그림이야말로 아카데미즘이 밀어낸 예술의 순수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자,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도덕성을 되살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라파엘전파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은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커다란 혼란을 초래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해 위생과 치안 문제 등 주거환경이 극도로 열악해졌다.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고 연쇄 살인과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당시 범죄의 주요 희생자는 절대적 빈곤으로 매춘에 내몰린 하층 여성이었다.

하층계급 여성의 타락과 같은 근대적 삶 이면에 자리한 문제들은 당대 문학의 중심 주제이자 라파엘전파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루스(Ruth)>(1853)와 윌리엄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1848) 등이 도시의 타락한 여성을 그리던 때, 라파엘전파의 창립 멤버로 유일하게 그룹의 정신을 일관되게 유지했던 윌리엄 홀먼 헌트는 <깨어나는 양심>(1853)을 발표한다.
 
 윌리엄 홀먼 헌트 <깨어나는 양심>(1853)
ⓒ William Holman Hunt
 
이 그림은 생각보다 매우 어둡게 그려졌다. 화면의 오른쪽 하단부에 아주 작게나마 빛이 드리워져 있다. 이 여성은 그 빛을 향해 일어서는 모습이다. 그녀 등 뒤에 배치된 거울은 광원이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나뭇잎으로 가득한 자연에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풀어진 머리는 이곳이 매우 사적인 공간과 시간임을 암시한다. 당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는 머리를 단정히 묶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여성은 코르셋을 입고 있지 않는 반면 이에 비해 남성은 외투를 입고 있다. 또한 여성의 손에는 세 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지만, 모두 결혼 반지는 아니다. 둘 사이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증거다.

화면 좌측 테이블 아래에 자리한 고양이는 남성을 상징한다. 이 고양이는 새 한 마리를 쥐고 있는데, 여성의 위태로운 지위를 의미한다. 방 안을 채우는 태피스트리, 피아노, 음악, 테이블 위의 책 등은 언뜻 이 여성이 부르주아 계급에 속해 보이게 만들지만 한번도 들춰보지 않은 듯한 책의 묘사는 모든 것이 전부 부유한 남성의 후원에 기댄 것임을 암시한다. 여성은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장갑처럼 언제든 이 남성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여성은 일어서고 있다. 남성의 피아노 연주를 듣던 중 내적 동요를 일으킨 모습이다. 악보는 토마스 무어의 <적막한 밤에 가끔씩>이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곡을 듣고 그녀의 양심이 깨어나는, 변화의 순간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자각, 그 도덕적 한계  
 
 리처드 레드그레이브의 <버려진 자>(1851)
ⓒ Richard Redgrave
 
분명 헌트가 그리는 '타락한 여성'은 시대적 전형에서 벗어난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리처드 레드그레이브의 <버려진 자>(1851)는 부정한 여자를 추방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미혼모가 된 딸을 눈길로 쫓아내는 아버지와 용서를 구하는 나머지 가족들이 대조를 이루는 반면 헌트의 그림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그림 속 여인은 물질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세속적 세상을 뒤로하고 영적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다. 실제로 헌트는 구약성서의 잠언 25장 "마음이 상한 사람 앞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추운 날에 겉옷을 벗기는 것과 같고, 상처 난 살갗에 초를 붓는 것과 같다"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1854년 이 작품이 왕립예술원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의 평가는 갈렸다. 문인이자 예술비평가로 라파엘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특유의 세부 묘사에 찬사를 보냈던 반면, 다분히 대중적인 주제 선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최첨단 과학 기술 도시에서 중세적 세계관과 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헌트의 그림은 왕립예술원의 규범에 도전한 혁신적인 그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가 그린 '타락한 여성'이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그려졌을지라도,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형적 여성상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라파엘전파는 1854년에 이르러 해산하게 되지만 작가들의 개별활동은 지속되었고, 이후 이들이 그린 매혹적인 여인들은 교훈적 내용을 떠나 형식 미학을 추구하는 유미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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