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수능의 배신

이도경 2023. 12. 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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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불수능에 수험생 진땀
킬러문항 없지만 준킬러 지뢰밭
중상위권 체감 난도 UP
2024학년도 수능 대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해 대학 입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으로 수험생들이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입시 현장의 관심은 킬러문항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변별력을 확보하는 방식에 모였다. 일각에선 ‘쉬운 수능’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까다로웠다. 킬러문항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변별력도 확보했다는 평가가 많다. 입시 전문가들은 ‘킬러 요소의 다양화’를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킬러문항 한두 개로 손쉽게 최상위권을 변별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험생들이 어려워할 만한 요소들을 고루 추가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출제 전략은 적어도 대입 정책이 바뀌는 2028학년도 이전 입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문학, 어려워졌다

과거 국어 킬러문항은 주로 독서에서 출제됐다. 한 페이지에 달하는 긴 지문을 주고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는지 측정했다. 지문도 긴데 과학이나 철학, 경제학 등 전문적인 주제가 나오면 킬러문항으로 분류했다. 만유인력 관련 지문이 나온 2019학년도 국어 31번이 대표적이다. ‘독서=킬러’란 등식에 수험생들도 적응해야 했다. ‘쉬운 것 먼저’란 전략에 따라 먼저 선택과목 혹은 문학을 해결하고 독서는 맨 마지막에 도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문학 등을 빨리 풀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독서 킬러문항에 쏟을 수 있는지가 고득점의 열쇠로 꼽혔다.

하지만 올해는 문학도 어려웠다. 문학이 출제된 18~34번 문항의 지난해와 올해 정답률을 분석해보면 수험생들이 상당히 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종로학원과 EBS가 추정한 문항별 정답률을 보면, 지난해는 25번 정답률이 62.8%와 66.9%로 문학 문항 중 가장 어려웠다. 대개 70~90% 정답률을 오갔다. 하지만 올해는 킬러문항보다 조금 쉬운 ‘준킬러문항’으로 분류될 수 있는 까다로운 문항들이 다수 나왔다. 24번은 49.3~51.7%(EBS와 종로학원의 정답률 추정 범위), 27번 37.5~44.1%, 30번 30.1~40.7%, 31번 38.1~42.9%, 34번 36.4~37.5%였다. 지난해 국어가 평이하게 출제됐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격차다.

매력적인 오답

문학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뒤 독서로 넘어가자 ‘매력적인 오답’(내용을 확실히 파악해야 피할 수 있는 헷갈리는 선지)에 수험생들이 현혹될 가능성이 커졌다. 메가스터디교육은 독서 10번과 15번을 예로 들었다. 10번 문항의 정답은 5번인데 정답을 고른 수험생은 30%, 4번은 35%였다. 입시 전문가들은 4번 선지를 피하려면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했다고 봤다. 15번 문항의 정답 4번을 고른 수험생이 30%, 오답인 2번은 24%였다. 문학이 어려워 독서 풀이 시간이 평소보다 부족했던 점, 지문보다 선지를 어렵게 하는 출제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준킬러문항도 크게 늘었다. 메가스터디교육에 따르면 정답률 10% 이하 초고난도 문항은 지난해 13개에서 올해 8개로 줄었다. 30% 이하는 지난해 66개였는데 올해는 46개로 감소했다. 대신 정답률 30~40% 문항은 지난해 58개에서 올해 93개로 크게 늘었다. 40~50%는 99개에서 96개로 비슷했다. 통상 입시 업계에서는 정답률 30% 이하를 고난도, 30~40%를 중상난도로 분류한다. 킬러문항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문항을 줄이는 대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준킬러문항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영어, 절대평가 맞아?

출제 당국은 킬러문항 논란을 완벽하게 피해 가지는 못했다. 의대나 서울대 상위권을 지망하는 최상위권 수험생에게는 매력적인 오답이나 준킬러문항을 늘리는 방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킬러문항 수준의 어려운 문항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수능 리허설’로 불리는 9월 모의평가에서 수학 만점자가 2520명 나오자 이런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난해 수학 만점자는 934명, 지난 6월 모의평가 때는 648명이었다. 킬러문항을 빼자 최상위권 변별력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수학 22번이 나온 배경이다. 이 문항은 고교에서 가르치는 여러 수학 개념들을 뒤섞어 놓지 않으면서 계산을 복잡하게 꼬아 놓지 않았으나 정답률은 낮은 ‘신(新)킬러문항’으로 불리고 있다. 정답률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영어는 절대평가여서 등급만 산출되며 9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1등급 비율은 4~5% 수준으로 예상된다. 상대평가에서 1등급이 4% 수준임을 고려하면, 절대평가로 전환됐지만 상대평가 수준의 변별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EBS 기준으로 정답률 14.3%로 가장 낮았던 빈칸 추론형 33번은 영어를 해석해도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매력적인 오답에 속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이유로 과거 킬러문항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입시 전문가는 “킬러 요소 다양화로 킬러문항에 연연하지 않았던 중상위권의 체감 난도가 뛰었다. 전체적으로 실력을 높이려는 노력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곳곳에 함정이 만들어졌는데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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