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12월엔 나눔의 인증샷 어때요

최기영 2023. 12. 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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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보다 사랑
아이는 눈에 보이는 선물이 아니라 ‘온기를 주고받는 법’을 가르쳐줬을 때 자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픽사베이


각종 송년 모임과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소비가 집중되는 12월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세상에서 인증 경쟁이 연중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온라인엔 일찌감치 ‘올해 크리스마스 인증샷은 여기’를 외치는 게시글과 홍보 기사들이 점령군처럼 깃발을 꽂았다. 초대형 트리,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미디어 파사드(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가 설치된 장소는 물론 언제,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촬영해야 ‘인생샷’을 얻을 수 있는지까지 총망라된다.

각종 ‘맘카페’에선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아이템과 최근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캐릭터, 신상품 공동구매 정보가 댓글에 대댓글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남는 건 덕지덕지 허세를 덧칠해놓은 또 다른 인증샷이다. 그 종착역은 비교 우위에 있는 또 다른 인증샷을 바라보며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되뇌는 자신일 확률이 높다. 이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지 못한 자신, 아이에게 더 비싼 선물을 주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소년 기영이에게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외할머니 손에 내 손을 포개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1학년 여름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외할머니가 사주신 초코파이 하나를 쥐고 집으로 향했다. 골목을 지나는데 “아악”하고 짧은 비명이 들렸다. 한 또래 아이가 초코파이를 쥔 내 손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걸어가다 전봇대에 이마를 찧고 말았다.

외할머니는 전봇대 앞에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흙 묻은 바지를 털어주시고는 내 손을 바라봤다. 그러곤 말없이 초코파이를 가져다가 그 아이 손에 쥐여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초코파이인데’란 생각이 가득했다. 시위하듯 앙다문 입술로 마룻바닥에 앉은 내게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암만 쬐깐한(‘조그맣다’의 전라도 방언) 것이래두 넘(남)한테 주지 못하면은 겁나게 큰 것을 가지고 있드래두 절대로 못 준다. 너한텐 쬐깐해도 그 아이한텐 솔찬히 클 것이여.”

외할머니께선 형편이 녹록지 못한 그 아이 집 사정을 훤히 알고 계셨다. 내겐 매일 루틴처럼 주어지는 초코파이 하나가 그 아이에겐 간절한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리라는 점도 말이다.

그날 가슴에 새겨진 ‘나눔’에 관한 메시지는 삶을 관통하는 세계관이자 전승해야 할 가치관이 됐다. 생애 첫 육아가 시작된 2013년 크리스마스, 6개월 된 아들의 이름으로 나눔을 시작한 이래 매년 12월 우리 집 남매에겐 산타에게 선물 받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있다. ‘나눔’이란 이름의 선물을 주는 시간이다.

어느 해는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으로 살아가는 아이와 백혈병에 걸린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를, 또 어느 해엔 희귀난치성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는 아이와 할머니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하고 손 모은 채 기도를 했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부턴 “나중에 커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100만원을 보내주고 싶다”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이번에 기부한 OO에게 보내주고 싶다”는 고백도 나왔다. 마음이 가난하면 결코 꺼낼 수 없는 말들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함(막 10:45)이라고 기록한다. 섬기고 나누는 행복과 그 가치를 아이 가슴에 새겨주는 건 부모로서 물려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심지어 상속세도 안 든다.

12월엔 온기를 인증해보면 어떨까. 작더라도 온기를 담은 나눔이 인증의 파도를 타고 또 다른 온기를 만들어내는 기적이 퍼져나간다면, 차디찬 SNS 세상에 ‘내가 행복하다’보다는 ‘나도 행복하다’라는 해시태그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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