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가 자본주의 기원이라니, 흥미롭네요

조건준 입력 2023. 12. 1. 16: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평] 은행 뜻하는 '뱅크'는 환전업자들 앉은 벤치서 비롯... <어나더 경제사> 를 읽고

[조건준]

 <어나더 경제사> 1권.
ⓒ 시월
 
생활 속에서 늘 경제를 체험하지만, 경제학 이론으로 가면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홍기빈의 설명은 쉽고 재밌고 전복적이다. 돈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잘못 배우면 착각에 빠져 자각하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이 물건을 서로 교환하면서 시장이 생기고 돈이 생긴 것이라고 배웠고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화폐가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생각의 반전 

홍기빈은 <어나더 경제사>를 통해 잘못된 생각을 뒤집는다. 군인을 뜻하는 영어의 sodier와 프랑스어의 soldat 모두 은화 솔리두스 solidius, '지급받는 자'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돈은 왕이 전쟁을 위해 군인들에게 지급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음이나 수표를 비롯한 신용의 탄생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뒤집는다.

시장이 점점 발달하고 화폐 사용이 늘어나면서 경제적 진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자본주의는 화폐와 권력이 결합하는 무자비한 과정을 통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가 애초에 생산성을 중시하면서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오히려 산업생산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는 '집 나간 자본주의'라고 할 정도로 예외적인 것이었다.

왜 하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까.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는 의외다. 바로 영국사람의 '대박'을 향한 심리 때문이란다. 대규모로 물건을 만들어 대규모로 소비하는 마인드가 생기면서 잘하면 대박이 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기술이나 산업발전에만 초점을 맞추는 조야한 유물론 수준을 넘어서 물질적 조건의 변화와 심리적 변화까지 포괄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흔히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합리성rational이라는 것은 세다ratio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합리성이라는 것은 계산적이라는 얘기다. 더 나아간다면 합리성은 잇속을 잘 따지고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합리성을 확대한 것이 자본주의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시스템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합리적으로 돈 욕심을 키우게 만드는 '돈독 시스템'이다. '모험사업', 즉 쉬운 말로 '한탕주의'가 자본주의 기원이란다. 베블런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은 바이킹의 해상 폭력 조직이자 무역 독점체였던 '트러스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한탕주의 조직'이란 영어로 하자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다. enterprise에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떠맡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위해 뛰어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자본주의와 기업의 기원을 대박을 노린 한탕주의나 해적질에서 찾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산다  

<어나더 경제사> 1권에서는 돈이나 시장을 비롯해 자본주가 탄생하는 과정들을 다룬다. 2권에서는 산업문명에 대해 다룬다. 홍기빈은 흔히 쓰이는 '산업사회'라는 표현보다 물질적 측면만이 아닌 정신적 측면까지 포괄하기 위해 산업문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산업문명이 발전하면서 1차, 2차 세계대전까지 치른 후에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신자유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를 통해 폴라니가 말한 '이중 운동'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 만세를 부르며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기 조정시장을 만드는 운동이 한 축에 있다면, 이 때문에 망가지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이 있다. 공황과 전쟁을 비롯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들이 반복되어 일어난다. 사회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과 장치를 만들어낸다. 바로 그런 장치들로서 노조, 중앙은행, 뉴딜정책과 같은 것들이 탄생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산다. 사람들을 돈독에 오르게 만드는 시스템에서 '돈독 오른 시민'이 되는 것이 당연할까. 노동 현장과 함께하며 끊이지 않는 고민이 이것이었다. 노조가 없을 때는 찌그러져 일하다가 노조가 생기면 당당히 요구하고 행동하며 관철시킨다. '가오'가 딱 생긴다. 요구하면 바뀌는 것을 경험한 조합원은 너무나 자주 '돈독'에 빠진다. 그래서 권리보다는 실리에 집착하고, 사회를 지키고 가꾸는 집단이 아니라 자기 잇속 챙기는 그저 그런 집단이 된다.

하지만 인류는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좋은 시절에도, '돈독'에 빠진 1차원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성찰하며 빠져나오려 노력했다. 저자는 그 에너지의 하나로 젊은 사람들에게 흘러넘친 '호르몬'을 끌어들인다. 재밌는 발상이다.

돈 얘기를 하면서 군인의 어원을 얘기하고, 합리성이란 것이 계산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으며, 기업이라는 말도 한탕주의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얘기처럼 단어의 기원을 찾아 얘기해주는 대목들을 읽다보면 재밌다. 

홍기빈은 은행이 의자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뱅크라는 말은 의자를 뜻하는 벤치(bench)에서 나왔단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돈놀이가 은행의 기원인 것은 아니다. 벤치는 환전업자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의미한다. 환전업자들의 역할이 은행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스팸메일의 '스팸'은 자본주의 황금기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하나의 상품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정보통신사회에 이르렀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스팸은 쓰레기 메일을 의미한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사물이나 사건의 맥락은 바뀌게 마련이다. 

포드 자동차에서 시작된 자동차 대량생산을 위한 벨트 컨베이어 시스템은 돼지 도축 공장에서 얻은 발상이었단다. 전통적 공장들은 컨베이어가 깔린 생산공정에 노동자들이 붙어서 일했다. 

시대가 바뀐 지금은 새로운 공장들이 등장했다. 컨베이어 대신에 플랫폼이 깔려 있고 그곳에 접속된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따라 일한다. 생산 현장은 플랫폼에 접속 가능한 모든 곳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을 나는 '사회공장(Social factory)'으로 부른다. 자본주의가 등장해 산업문명이 확장되어 지구적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생태계는 위험에 처했다. 저자는 이 지구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 않은 <어나더 경제사> 3권에서 다룰 계획이란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Copyright©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