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려대장경' 유네스코 등재 추진? 도리 아니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입력 2023. 12.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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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출처를 모호하게 해서, 한국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일본

[김종성 기자]

 일본 조조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대장경 목판 인쇄물 '무량수경'의 일부
ⓒ 일본 문부과학성 보도자료 캡처
 

일본 정부가 고려대장경을 자국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절차를 재차 진행하고 있다. 2021년에 신청했다가 지난 4월 무산된 이 건을 재추진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28일자 보도자료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더불어, 한자명이 증상사(增上寺)인 도쿄 사찰 조조지에 소장된 고려대장경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년 내에 신청서 제출을 마무리한 뒤 "기록 보존 등의 전문가에 의한 심사 등을 거쳐 2025년 봄의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에서 등록의 가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도자료에 첨부된 별지에서 문부과학성은 이번에 신청하는 기록유산이 "정토종의 본산인 조조지가 소장하는 3종의 대장경"으로서 "중국의 송대 및 원대 그리고 조선왕조시대에 당시 최고의 인쇄기술로 제작"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별지는 송나라 및 원나라의 대장경과 함께 등재 신청될 한국 대장경과 관련해 "고려시대(13세기)에 초판된 고려대장경 1357책"이라고 말한다.

문부과학성은 한국과 중국에서 제작된 대장경들이라고 말했다. 중국식 국호가 원나라였던 몽골제국을 중국 왕조로 인정하는 설명법은 중국식 역사관에 따른 것이다. 거란족 요나라의 역사가 중국 역사가 아닌 거란족 역사이듯이, 몽골족 원나라의 역사 역시 중국이 아닌 몽골의 역사다. 일본 정부가 등재 신청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중국과 더불어 몽골의 대장경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대장경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명칭으로 등재 신청을 추진하고 있다. 위 별지의 '기록물 타이틀' 항목에는 "조조지가 소장한 3종의 불교성전 총서"로 기록돼 있다. 대장경이라는 게 얼른 식별되지 않는 명칭으로 등재 신청을 추진하는 것이다.

별지는 조조지가 고려대장경을 소장하게 된 경위를 언급한다. "17세기 초엽에 에도막부를 창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집해서 조조지에 기증한 것"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 종전 5년 뒤인 1603년에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 무신정권을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사찰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고려대장경을 갖게 되었을까?

이런 설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려대장경을 어디서 수집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낳는다. 조조지 홈페이지의 '보물·문화재' 코너는 그가 지금의 나라현인 야마토(大和) 지방의 엔조지(円成寺)에 보관된 고려대장경을 확보해 이를 조조지에 기증했다고 말한다.

사찰명 엔조에 들어간 엔(円)은 둥글 원(圓)과 같은 글자다. 원(圓)자가 들어간 이 사찰명이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도 나온다. "일본국왕이 영홍수좌(榮弘首座) 등을 보내 예방했다"로 시작하는 음력으로 성종 13년 4월 9일자(양력 1482년 4월 26일자) <성종실록>에 이 이름이 등장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전의 일왕(천황)은 실권이 없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국왕'으로 인정한 대상은 막부 지도자인 쇼군(將軍)이었다. 당시의 무신정권인 무로마치막부가 조선 성종에게 사신을 보내 예물을 헌납했던 것이다.

위 실록에 따르면, 막부 국서는 "우리 와슈(和州)에 교사(敎寺)가 있는데 원성(圓城)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원성사라는 사찰이 국서에 소개됐던 것이다.

엔조지에는 성(成)이 들어가고 <성종실록>의 원성사에는 성(城)이 들어갔다. 과거에는 음이 비슷한 글자들을 혼용하는 일이 많았다. 한자 인명이나 지명을 귀로 듣고 손으로 받아 적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성종실록>의 원성사가 야마토 지방의 이칭(異稱)인 와슈에 있었다고 하니, 이 절이 엔조지일 가능성이 높다. 작년에 <동아시아불교문화> 제54집에 수록된 최연주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논문인 '고려 간행 불전과 고려대장경 인출본의 일본 전래' 역시 이런 전제하에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위 국서는 원성사가 1466년에 병화(兵火) 때문에 대거 소실됐다고 말한다. 대혼란의 시대인 센고쿠시대(戰國時代, 1467~1573)로 접어드는 시점에 전투행위로 인한 화재가 원성사를 소실시켰던 것이다.

막부가 이 절의 복구 문제를 거론하면서 내놓은 말이 "대장경을 구해 절 안에 안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상국(上國)에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면 어찌 금벽으로 단장한 옛 절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이 부탁을 내놓았다.

상국은 황제국의 동의어였다. 조선과 일본은 대등한 교린관계였지만, 두 나라가 직접 교류하기보다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중간인 대마도를 매개로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마도가 일본의 대(對)조선 외교를 대리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대마도는 조선·일본 양쪽의 책봉을 받고 양쪽에 조공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무가 아닌 일본의 사무를 대리할 때도 조선을 상국으로 받들었다. 그래서 조·일 외교관계는 상국 대 신하국의 관계라는 외형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위 일본 국서에 상국 표현이 들어간 것은 양국의 중개자인 대마도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성사를 복구하기 위해 대장경을 협찬해달라는 막부의 요청을 조선 조정은 승낙했다. 일본 국서가 도착하고 9일 뒤의 상황을 기록한 성종 13년 4월 18일 자(1482년 5월 5일 자) <성종실록>에는 경상도 사찰에 보관된 대장경을 보내자는 예조의 건의가 재가되는 장면이 나온다.

<성종실록>에 나오는 원성사의 한자가 엔조지의 한자와 약간 달라 100%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사찰명도 비슷하고 사찰 소재지도 동일하므로, 조선 조정이 기증한 고려대장경이 엔조지에 갔다가 도쿠가와막부에 의해 조조지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위 논문 역시 "증상사 소장 <고려대장경> 인출본은 경상도 모 사찰에 안치되었던 것을 일본 원성사에 외교적 의례물품으로 전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기술했다.

불교성전 총서가 아니라 고려대장경... 출처 정확하게 밝혀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2022년 1월 조선인이 대규모로 강제동원됐던 일본 니키타현 사도광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2월에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지만, 유네스코가 서류상 미비점이 있다며 심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올해 1월에 다시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재신청했다.
ⓒ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541년 전인 1482년에 조선 조정으로부터 기증받은 <고려대장경>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할 때는 한국민들의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훔치거나 약탈해 간 문화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인들은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훔치거나 약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재라 해도, 이를 국제 무대에 내놓을 때는 출처를 모호하게 하지 않는 게 도리상 맞다. '불교성전 총서'라는 한자명으로 등재 신청을 하면, 이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든 간에 세계인들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것이 고려왕조 유산이라는 것을 알기가 어렵게 된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불교성전 총서'의 기원을 일본 불교로 오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금년 5월 18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19혁명 기록물과 더불어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 결정이 나오기 전에 일본은 "일본 정부기관 기록이 포함돼 있다"며 동학 기록물의 등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동학혁명 기록물에 일본 정부기관 기록이 들어간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군이 동학군을 진압하고 체포했기 때문이다. 한국까지 넘어와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역사에 대한 일말의 사죄도 없이 동학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딴지를 건 것은 일본의 국격을 떨어트리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일본이 조선 정부가 선물한 것으로 보이는 고려대장경을 불교성전 총서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내놓는 것은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명의 출처를 모호하게 하는 일 역시 일종의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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