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중계권 대박의 부메랑, DAZN은 J리그의 딜레마가 될 수 있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17년 J리그는 일대 전기를 맞았다. 영국을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디지털 스포츠 콘텐츠 미디어 그룹 퍼폼이 런칭한 OTT 서비스 DAZN과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10년 총액 2,100억엔(당시 환율 2조 1천억 원)의 초대형 계약이었다. J리그가 강력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충성도 높은 팬층을 갖고 있지만, 연간 2천억원이 넘는 금액은 충격적이었다.
J리그가 기존의 4배에 달하는 중계권 잭팟을 위해 기울인 노력의 성과라는 찬사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시장성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아닌 잠재력만 믿고 과대 평가를 했다는 지적도 간혹 있었다. DAZN은 J리그를 중요한 파트너로 삼아 일본 스포츠 중계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J리그와 DAZN의 동행은 7년째를 맞고 있다. 올해 두번째 재계약을 통해 2033년까지로 연장됐고, 중계권 규모도 총액 2,395억 엔으로 상승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J리그의 중계권 계약은 여전히 대박으로 보이겠지만, 최근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DAZN과 맺은 초대형 중계권이 J리그 진입 장벽을 높이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인은 가입자 증대 실패에 있다. J리그는 DAZN 이전에는 위성방송 사업자인 스카이퍼펙트TV!(이하 스카파!)와 디지털 중계권 계약을 맺고 있었다. 스카파! 역시 유료 중계를 통해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이때의 유료 시청자가 30만명 규모였는데, DAZN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100만명 돌파 후 답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계약 당시 DAZN이 목표로 했던 400만명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DAZN은 일본 내 잠재적 축구 팬층을 320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DAZN은 J리그 외에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비롯한 일본프로야구 다수 구단, 라리가, 리그앙, 세리에A, UEFA 네이션스리그 등의 중계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킬러 컨텐츠라 할 수 있는 MLB와 PL은 정작 한국 기업인 스포티비 나우(에이클라 미디어 그룹)이 일본 중계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 오타니 쇼헤이라는 글로벌 스타의 등장으로 일본 내 스포츠 관련 비즈니스와 컨텐츠는 야구 쪽으로 더욱 쏠린 상태다. 중계권의 경우 스포츠베팅 등 관련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이뤄질 때 비즈니스 규모를 커버하게 되는데 DAZN은 이 부분에서도 고전 중이다.
시청자가 가입하는 구독료 수익만으로 중계권 투자 회수가 어려워지자 재계약 과정에서 J리그는 DAZN이 유리한 내용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기존에 하던 J3리그 중계는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이번 재계약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지상파 송출을 통한 부가 수익도 DAZN에게 안겨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DAZN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고, 결국 그 부담은 시청자에게 전가되는 양상이다. 2017년 DAZN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월 구독료는 1780엔이었다. 당시 여러 이동통신사들과 제휴를 맺어 실제로는 980엔의 저렴한 금액으로 가입해 시청할 수 있는 상품도 만들었다. 하지만 2022년 3000엔, 그리고 재계약을 한 올해는 3700엔이 됐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야 하지만 과거 스카파!의 2980엔보다 더 비싼 월 요금을 내고 중계를 봐야 하는 게 J리그 각 팀 팬들의 현 상황이다.
대박 중계권이 몰고 온 부메랑 효과를 팬들이 고스란히 안게 되자 J리그로 유입될 수 있는 허들도 높아졌다. 실제로 최근 유입 지표가 하락세로 접어들며 J리그의 고민은 커졌다. 최종 라운드를 남겨 놓고 있는 가운데 562만 명(무료 관중 포함)으로, 예상 관중 수는 580만 명대로 전망된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635만명보다 떨어졌다. 올해 J리그는 창설 3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초청권(무료티켓)을 뿌렸는데, 실질적인 목적은 신규 팬층 유입이었다. 하지만 이 규모가 60만장을 훌쩍 넘어서며 기존 고객의 반발은 더 높아졌다.
대형 중계권은 무조건 호재로만 작용하진 않는다. 큰 계약을 맺고도 중계권사가 파산하는 상황이 발생해 아시아권은 물론 유럽에서도 혼란을 초래한 사례가 있다. 스포츠의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조차도 최근 MLB를 둘러싸고 다수 구단의 중계권을 보유한 주관 방송사가 파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익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계권료가 상승하는 건 치솟는 선수 연봉과 궤를 같이 한다.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들지 못할 때 비극이 찾아온다.
K리그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해 K리그는 쿠팡플레이라는 국내 OTT 플랫폼을 디지털 중계권 파트너로 삼았다. 쿠팡플레이와의 계약을 통해 디지털 중계권은 기존 3배 이상으로 올랐지만 규모 자체는 아직 부족하다. 프로축구연맹은 중계권 규모를 점진적으로 증대시킨다는 목표 아래 최근 사업 역량을 집중시키지만 중요한 원칙 하나를 중심에 두고 있다. 중계권료 상승의 반작용으로 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겠다는 것. 다행히(?) 쿠팡플레이는 월 499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K리그 중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방송, 영화 컨텐츠와 쿠팡 무료 배송 등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중계를 통해 K리그를 보는 팬들이 합리적인 금액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K리그는 양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가령 객단가를 올리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총 관중과 평균 관중도 더 늘려야 한다. 중계권료도 마찬가지다. 한쪽만 덩치가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 중계권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OTT 구독료 수준을 유지하도록 디지 중계권 관련 전략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은 올해 K리그1 기준으로 240만 관중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유료관중 집계 체제에서 기존 기록이었던 2019년의 182만명, 유료관중 집계 이전 시대 최다 기록이었던 2013년의 203만명을 크게 넘어섰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 시대를 맞았고, FC서울의 경우 평균 2만2633명으로 한국 프로스포츠 역대 1위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300만, 400만 관중 시대를 열어야 한다. 우상향의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중계권료 잭팟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장은 현재보다 고평가 된 금액이 나온다면 달콤한 유혹일 수 있지만, 그것이 스팀팩이 돼선 안 된다. 중계권 수입과 지속적인 관중 유입의 교차점에서 가장 적합한 허들을 제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DA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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