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대통령께선 주말마다 라면을 직접 끓이셨다"

서믿음 입력 2023. 12.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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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20년간 다섯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져온 청와대 요리사가 전하는 이야기다. 대식가로 소문난 김대중 대통령, 일요일 아침마다 직접 라면을 끓인 노무현 대통령, 간장 비빔밥을 무척 좋아했던 이명박 대통령, 끼니마다 20g 정량 식사를 고집한 박근혜 대통령, 바쁜 점심은 한 그릇 요리로 해결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한다. 현대판 기미 상궁인 청와대 검식관 그리고 해외 순방길에 식사를 마련한 후일담 등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내용을 재미나게 소개한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만찬 등 현장에서 바라본 역사적 순간들도 흥미롭게 읽힌다.

김대중 대통령은 중식이 나가면 항상 남김없이 다 드셨다. 중식 사랑이 남다르셨기에 한식 메뉴가 나갈 때도 두반장은 별도로 반찬과 함께 내드렸고, 양파를 춘장에 찍어 드시는 것도 좋아해서 늘 빠짐없이 준비해드렸다.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할 때도 대부분 중식을 선택하실 정도로 내외분이 중식요리를 좋아하셨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중식요리는 단연 ‘불도장’이었다. 입맛이 없거나 기력이 떨어지는 때면 어김없이 불도장을 청하셨다. 불도장은 ‘그 냄새에 끌린 스님이 식욕을 참지 못하고 담장을 넘어 먹은 요리’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부처 불佛, 뛸 도跳, 담장 장墻 자를 써서 불도장이라고 불린다. - 「대식가 대통령의 특별한 중식 사랑」 중에서

청와대 관저 주방에서 늘 슈트 차림으로 있는 바로 그 사람, 검식관이다. 검식관의 주요 임무는 조선시대 기미상궁의 역할과 비슷하다. 대통령이 먹을 식재료를 사전 검사하는 것에서부터 완성된 음식을 시식하는 일까지 담당한다. 검식관은 식재료를 구매할 때 동행해서 재료의 신선도와 유통기한 등을 확인하고 독극물과 식중독균 등 각종 위해요소를 사전에 검사하는 역할도 한다. 이들은 식재료의 샘플을 채취해 식약처에 보내고, 케이터링 같은 외부행사를 관리감독해 미연에 불상사를 차단한다. - 「청와대의 기미상궁」 중에서

노 대통령은 아무리 맛있게 드신 음식이라도 그 자리에서 두 번 청하지는 않으셨다. 반찬 그릇이 비어 있어도 못 채우게 하셨다. 주방에서 음식을 다시 만들어야 할 수도 있고, 결국 남기면 버리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혹시 더 드시겠냐고 물어보면 매번 “배부르게 잘 먹었으니 이만하면 됐습니다.”라고 답하셨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말끔히 비워진 그릇들을 받아들 때다. 그때만큼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없는데 거기에 더해 “오늘도 맛있게 잘 드셨답니다.”라는 피드백까지 들으면 준비하는 동안의 긴장과 피곤함이 싹 다 날아간다. 그리고 내일은 더 정성껏 모셔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18번 상록수와 막걸리 한 잔」 중에서

무엇보다 음식은 ‘심미경호心味警護’의 대상이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장세동 경호실장이 만든 말이다. 풀이하자면 ‘대통령의 마음과 음식까지 경호하라’는 소리다. 만약 음식을 드시고 컴플레인을 하신다면 그 역시 경호에 실패했다는 뜻. 대통령의 마음속까지 헤아려 가장 맛있는 음식을 편히 드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늘 정성과 책임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음식의 위해요소를 최소화하는 일도 포함된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대통령이 탈이 난다면 국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다음이 ‘맛’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수시로 하루 한두 번씩 식기 살균소독을 하고, 보관시간도 짧게 조절해 한번 만든 음식을 두 번 쓰지 않는다. - 「심미경호」 중에서

이처럼 음식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매일 삼시세끼를 만드는 주부들뿐 아니라 음식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요리사들조차 정성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청와대 요리사들은 대통령이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지는 못한다. 물론 그 자리에서 피드백을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주방 너머로 충분히 상대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렇게 한 끼라도 좀 더 새롭게 모시고 싶은 마음을 알아채고 기뻐해주시면 요리사로서 걷는 호젓한 인생의 숲길이야말로 더없이 행복한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은 유난히 쓸쓸했다. 2017년 2월 2일은 예년과는 달리 별도의 행사가 잡혀 있지 않았다. 다만 축하 인사차 관저를 찾은 참모진들과 간단히 오찬만 함께했다. 탄핵 정국 이후 맞는 첫 생일인 데다 헌법재판소의 결과를 앞두고 특검팀이 압수수색을 예고해 그 어느 때보다도 청와대는 긴장감이 돌았다. 관련 부서직원들도 전부 대기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생일날 아침에도 별다른 요청이 없었다. 그저 평소와 똑같이 준비된 아침 메뉴를 드시고, 미역국이 포함된 생일 정찬이 점심식사로 나갔다. - 「구멍 난 스타킹 속 엄지발가락」 중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도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함께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북측이 개최한 환영만찬에는 거위구이인 게사니구이, 배와 밤을 채 썬 배밤채, 오곡찰떡 등의 메뉴가 올랐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있었던 우리 측의 답례 만찬은 ‘팔도 대장금 요리’를 주제로 한 남쪽 지방의 토속요리였다. 제주흑돼지를 이용한 맥적貊炙과 누름적, 고창 풍천장어구이, 횡성한우 너비아니구이와 오대산의 자연송이구이, 전주비빔밥과 토란국, 영광의 굴비구이 등의 팔도 대표 음식들을 준비해갔다. 전주비빔밥은 남북화합을 상징하는 메뉴로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혀 왔다. - 「남북정상회담과 세 번의 만찬」 중에서

대통령의 요리사 | 천상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48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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