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엑스포 실패에서 생각해볼 것

고현곤 입력 2023. 12. 1. 00:48 수정 2023. 12. 1.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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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편집인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이 참패로 끝났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몇 가지 짚어볼 게 있다. 무엇보다 엑스포 유치에 국가의 에너지를 너무 썼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집착한 건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승산이 적은 싸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2년 건국 100주년이다. 왕실 권력 다툼 끝에 집권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왕위 계승을 전후해 국민에게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그 일환으로 1조 달러 이상 들여 세계 최대 스마트시티(네옴시티)를 계획했다. 100주년 즈음해 2027 동계아시안게임, 2030 엑스포, 2034 월드컵·하계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를 쓸어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돈이 남아돌아 오일머니를 뿌리는 게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다.

「 승산 적은 싸움에 정부·기업 총동원
디지털시대, 엑스포 경제 효과 의문
2025년 오사카도 흥행 부진 먹구름
유치 못한 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손자병법에 나와 있듯 상대가 강하면 피해 가는 게 현명하다(强而避之, 강이피지).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성과를 내려고 조급했거나 잘못된 정보로 오판했던 것 같다. 대통령에게 보고가 제대로 됐는지도 의문이다. 도중이라도 버겁다고 판단했으면 세련되게 발을 뺐어야 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정부가 끝까지 이길 것처럼 밀어붙여 의아했다. 실패했을 때의 출구전략도 딱히 없어 보였다. 우리가 모르는 비장의 카드가 있는 줄 알았다. 뚜껑을 열어 보니 별게 없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과도하게 동원됐다. 과거에도 몇몇 기업이 국제대회 유치에 앞장섰지만 이번처럼 4대 그룹, 10대 그룹 하는 식으로 죄다 나선 건 이례적이다. 분초를 아껴 써야 하는 대기업 회장들이 사업을 뒤로한 채 대통령을 따라다녔다. “회장이 올해 회사 일보다 엑스포 때문에 해외 출장 다닌 게 더 많다”(모 대기업 관계자). 단순히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애국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회장들은 대부분 고민과 약점이 있다. 사업 부진, 인수합병, 승계 같은 현안이 있다. 이런저런 재판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와 가깝게 지낸 죄(?)로 잔뜩 얼어 있는 기업도 있다. 정부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대통령이 ‘나를 따르라’고 하면 만사를 제쳐둘 수밖에 없다. 재계에선 “회장들끼리 함께 해외를 다니면서 친해진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라는 말이 나온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엑스포가 온 나라가 매달릴 정도로 경제 효과가 크냐는 점이다. 과거 엑스포는 각국이 한데 모여 산업·과학기술 성과를 알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금은 디지털의 발달로 굳이 모이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필요한 것을 얻는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국경의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판을 깔아주지 않아도 기업·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많다. 엑스포 같은 국가 대항전 성격의 오프라인 행사는 매력이 줄었다.

2025 일본 오사카 엑스포도 위기다. 2018년 러시아를 제치고 유치했을 때만 해도 경제 효과가 2조 엔(약 18조원)이 넘는다며 축제 분위기였다. 개막 1년여를 앞둔 지금은 사뭇 다르다. 50여 개국이 자국 부담으로 전시관을 짓겠다고 했으나 실제 건설에 착수한 곳은 한국과 프랑스·룩셈부르크 등 손에 꼽힌다. 멕시코·러시아·에스토니아처럼 자국 정치 상황, 비용 문제로 불참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행사장 건설비는 2018년 1250억 엔에서 최근 2350억 엔으로 두 배로 뛰었다. 그사이 자재비와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건설비를 3분의 1씩 내야 하는 중앙정부와 오사카 지방정부, 재계 모두 근심이 깊다. 재계는 “기부금을 더 모으기 어렵다”며 난색이다. 기업들은 엑스포 입장권을 수만~수십만 장씩 떠안는다.

일본 여론은 싸늘해졌다. 경제 효과가 불투명한 데다 늘어난 비용을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결국 국민 부담이다. 고령층 의료 등 돈 쓸 곳이 많은데 일회성 행사에 재정을 쏟아붓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오사카 엑스포가 ‘필요 없다’는 응답이 68%에 달했다. 사회학자인 요시미 신야 도쿄대 교수는 “이제 일본에서 올림픽도, 엑스포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국내 연구기관들은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면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고, 61조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전망했다. 근거가 약하다. 5050만 명이 엑스포를 찾을 것이란 예측도 수긍하기 어렵다. 밀라노(2015년)·두바이(2021년) 엑스포는 방문객이 2000만 명대 초반이었다. 오사카 엑스포는 2820만 명(외국인 350만 명 포함)을 기대하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일본 인구의 절반이 안 되는 한국에서 오사카의 두 배 가까운 방문객은 무리다. 게다가 2030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층이 130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 엑스포 구경 다닐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얘기다. 행사 후 관련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의 고민도 고스란히 남는다.

정부가 엑스포 유치에 공들일 시간에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이나 저출산 문제에 매진했으면 지금쯤 뭐라도 진전이 있지 않았을까. 엑스포를 유치하지 않고, 여기서 멈춘 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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