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선] 청와대보다 셌던 ‘청장 스폰서’
브로커 통해 승진 경찰 간부 파문
과거엔 청와대 인사 청탁 증언도
대학 의혹 드러나도 수사 무관심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은 신종 사기 범죄 피해자들이 경찰의 수사 결과 통지서를 보다가 J 경감이라는 인물을 추려내는 과정을 접하면서다. 이 신종 사기는 검사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직접 시연했을 정도로 악질 범죄다. 서민에게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던져 거액을 뜯는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는데도 경찰은 범죄단의 정체조차 파악 못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채팅방에 모인 피해자만 370명이 넘었는데 경찰 통지서는 “추적에 실패했다”는 내용뿐이다. 채팅방엔 경찰의 무성의와 무능함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요즘 경찰은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수사 무능보다 심각한 수사 비리가 튀어나왔다. 고위 간부가 사기범이 매수한 브로커에게 수사 내용을 알려 준 혐의가 드러났다. 서민 피해자에겐 ‘복붙’ 내용을 보내지만, 거액을 주무르는 브로커에겐 은밀한 수사 사항을 알려준다. 이 브로커가 경찰 간부들에게 돈을 받고 승진 인사까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진다. 수사 권력이 막강해진 경찰이 돈으로 진급하는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승진 비리는 경찰의 고질적 병폐다. 범인을 검거하는 게 경찰관의 임무지만, 이들의 관심은 승진에 쏠려있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경찰관이 승진해야 하나, 이번 사건은 능력보다 브로커의 입김이 관건인 현실을 보여준다.
평생 경찰 인사를 봐온 전직 간부들은 승진 청탁 효과가 가장 확실했던 곳으로 청와대를 꼽았다. 수석·비서관이 청탁하면 거의 100%라고 말한다. 매년 경찰서장급인 총경만 100명, 간부인 경위는 3000명 이상 승진하니 청와대 부탁이 안 먹힐 리 없다고 말한다. 청와대부터 승진을 청탁했으니 악습이 사라질까. 거기에 비리가 끼어든다.
한 전직 경찰 간부는 “청와대 민원의 효과가 크지만, 더 확실한 사람은 ‘청장의 스폰서’”라고 말한다. 경찰 고위 간부 중 오랜 스폰서를 둔 사람이 꽤 있고 이들을 찾아내 로비하면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번 브로커 사건은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승진에 안테나를 바짝 세운 경찰관은 어떻게든 귀신같이 스폰서를 찾아낸다고 한다.
간부가 줄줄이 구속되지만, 곧 지나가리란 예상이 많다. 범인의 행방보다 스폰서나 청와대에 촉각을 세워야 승진을 했던 역사가 쉽게 바뀔 리 없다는 자조가 나온다. 범죄자 검거는 우선순위가 밀린다. 알바 사기처럼 서민들이 당하는 범죄는 더하다.
지난 1년간 드러난 사실은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범인들은 미국·싱가포르 등지의 국외 도메인을 사용하고 중국발 VPN을 통해 접속하는 국제 조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주부로 가장해 닷새간 25명을 속여 한 명 계좌로만 약 3억원을 가로챘다.
피해자들이 찾아낸 범행 계좌에선 성균관대·동국대·한국외대·국민대·명지대·중앙대·서강대로 자금 이체가 이뤄진 의혹이 드러났다.
주범은 전부 ‘추적 불가’다. 몇 개 조직인지도 모른다. 경찰은 “전국 관서에 접수된 사건을 분석해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집중 수사 중”이라며 “사이버 수사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년 넘게 지켜본 피해자들은 더는 못 참겠다는 분위기다.
2차대전 전사 통지서에서 공통으로 발견한 이름은 라이언 일병을 목숨 걸고 찾아내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계기가 됐다. 분노한 범죄 피해자들이 수사결과 통지서에서 찾아낸 J 경감은 무관심의 증거로 지목됐다. 대다수가 경력 단절 여성인 피해자들이 그를 찾아 나서야 할까. 악질 범죄자를 붙잡는 것만큼 추락한 경찰의 명예를 효과적으로 회복하는 방법은 없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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