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난 지도자가 세계 현대사였다
고도의 외교 전략과 기술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 정치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한 학자이자 외교 전략가였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그가 퇴임 후 세운 국제 지정학 컨설팅 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는 이날 “존경받는 미국 학자이자 정치가인 헨리 키신저가 코네티컷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100세.
고인은 존 F 케네디부터 조 바이든까지 전·현직 미국 대통령 12명에게 외교정책을 조언했다. 케네디 백악관의 실무자를 거쳐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됐고,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 국무장관으로 연속 재임하면서 1970년대 미국 외교정책의 틀을 짰으며, 그 결과 세계 역사를 빚어냈다.
미국 국익과 세력 균형을 최우선시하는 ‘극단적 현실주의자’로 “외교정책에서 도덕적 완벽을 요구하는 나라는 완벽도, 안보도 이룰 수 없다”며 도덕보다는 힘의 우위에 기반한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인권 등 미국의 가치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지난 세기 후반부 가장 논란 많은 미국의 외교정책가”(가디언)라는 평가도 있다. 초기 저서 『백악관 시절(White House Years)』에서 고인은 미국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오직 국익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마오쩌둥 초대 중국 국가주석부터 시진핑 현 주석까지 중국 최고지도자 모두를 상대한 유인한 미국인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키신저는 적대 관계였던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역사를 새로 썼다. 냉전 시기에 지속된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1972년 2월 역사적인 미·중 수교를 끌어냈다. 7개월 전 파키스탄을 방문해 ‘몸이 아파 휴식한다’며 기자들을 따돌리고 극비리에 베이징으로 날아가 저우언라이 총리와 만나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 간 정상회담을 조율했다. 앞서 미국 탁구대표팀이 중국에 초청받아 친선경기를 벌인 이른바 ‘핑퐁 외교’로 양국 간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텄다.
키신저 수차례 방한, 한국에 안보조언
냉전 시대 외교정책으로 ‘힘의 균형’을 주장하면서 소련·베트남 등 공산주의 진영을 상대로 ‘데탕트’(긴장 완화)를 추구했다. 소련과는 핵 군축의 기초가 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미사일방어(MD)를 제한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Treaty)’ 협상을 이끌었다. “한 나라가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나라의 절대 불안을 의미한다”면서다.
고인은 1973년 북베트남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해 미국을 베트남전 장기화라는 수렁에서 건져냈다. 지연전술을 펼치는 북베트남과 패전 책임을 뒤집어쓰기 싫은 닉슨 대통령, 미국 내 반전 여론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의 출구전략을 마련했다. 전쟁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북베트남 협상대표인 레득토와 함께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초반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아랍권을 오가며 중재에 나서 ‘셔틀외교’라는 말이 탄생한 계기가 됐다.
그늘도 있다. 1970년 사회주의자인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 당선되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부추긴 일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무책임함 때문에 한 국가가 공산화되는 것을 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느냐”며 “칠레 유권자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두기엔 이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고 합리화했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 소탕을 내세워 캄보디아의 비밀 폭격을 승인해 민간인 5만 명이 숨진 배후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을 승인해 주민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논란도 있다.
스스로 꼽은 장수비결은 ‘호기심·자신감’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과 포드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 국무장관 자격으로 배석했다. 은퇴 후에도 방한해 노태우부터 박근혜까지 전직 대통령을 예방해 한반도 외교 현안을 조언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도 만나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공유했다. 당시 고인은 대통령 참모들에게 99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 세 가지는 호기심과 자기 확신, 타고난 체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은 “AI가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며 호기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책을 쓰거나 언론 인터뷰에 나서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영감을 얻을 것이란 생각에 “자신감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력으로 얻기는 힘든 비결”이라며 “부모님을 잘 만나야 한다(You’ve got to have good parents)”고 말했다.
1923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퓌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15세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3년 미군에 입대해 통역병으로 독일에 파병돼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를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해 ‘동성훈장’을 받았다. 종전 후 하버드대에 입학해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년 가까이 모교에서 강의했다. 유족으로는 50년간 함께한 낸시 매긴스 키신저와 첫 결혼에서 낳은 두 자녀 데이비드·엘리자베스가 있다.
박현영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박태인·이영근 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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