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 일본인 주장, 명예훼손 아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일본인을 모델로 제작됐다는 주장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예술에 대한 비평을 섣불리 명예훼손이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0일 조각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씨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변호사)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은 확정했다.
부부 조각가인 두 사람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의뢰를 받고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해 2016년 8월부터 3년간 일본 교토, 서울, 대전 등에 설치했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2019년 8월 소셜미디어(SNS)와 보도자료를 통해 “노동자상 모델은 1926년 일본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풀려난 일본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우연 연구위원 역시 2019년 3월 자신의 SNS에 “노동자상 모델은 1925년 일본 홋카이도 토목공사장에서 강제 사역하다 풀려난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씨 부부는 이 같은 발언이 허위 사실을 적시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인을 모델로 한 적이 없고 각종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는 취지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김 변호사 사건에서 1심은 부부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은 김 변호사가 위자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이 위원 사건에서는 1심이 김씨 부부에게 5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이 이를 뒤집었다.
두 사건을 함께 심리한 대법원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한 의혹의 제기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피고의 주장은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다.
판례에 따라 어떤 발언이 민법상 불법행위인 명예훼손으로 인정되려면 단순한 의견이 아닌 구체적 사실을 묵시적으로라도 적시해야 한다. 사실과 의견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진위 판별이 가능한지다.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떤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인다”고 봤다.
그러면서 “비평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섣불리 이를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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