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인생엔 정답 없다…저마다의 답 찾아주는 게 문학"

서믿음 2023. 11. 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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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한다면' 저자 이선재
80만 공시생의 선택 '국어 일타강사'
"정답 찾기 급급하지만 타인 삶 통해 날 위로하는 게 문학"
"문학 즐기지 못하는 건 압박 속에서 살기 때문"
문학의 가치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위로

효율이 중시되는 시대다. 둘러 돌아가기보다 직진을 선호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보거나, 요약본을 찾아본다. 과정의 느낌보다 결과의 앎이 중시된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긴 호흡으로 쓰인 서사는 획일화된 정답으로 자주 납작해진다. 저마다의 해석으로 가치를 읽어내기보다 "그래서 결과가 뭔데" "반전이 뭐야" 등으로 뭉뚱그려진다. 시간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어른에게도, 시험 점수가 중요한 학생에게도 문학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일 때가 많다.

모두가 문학에서 인생 혹은 시험 문제 정답 찾기에 급급할 때,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다산초당)’의 저자 이선재 강사는 말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일깨워주는 게 문학’이라고, ‘문학은 우리를 정답이 아니라 저마다의 답으로 인도한다’고 말이다. 이른바 ‘일타강사’지만, 정답 찾는 기술만큼이나 문학의 참맛을 전하면서 80만 공시생의 선택을 받은 그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단단한 중심을 지닌 존재로 거듭났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만나고 위로받기까지 우리에게 문학이 한 일은 너무도 많다는 이선재 강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사진제공=다산초당]

-‘문학’을 주제로 책을 펴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나.

▲엄마가 제가 어릴 적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하시더라. 제 기억으로도 항상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즐겼던 것 같다. 궁금한 게 많았고, 호기심을 책으로 해소했다. 문학을 좋아했던 건 ‘사람’을 매개로 했기 때문인 듯하다. ‘착하게 살자’란 메시지를 그냥 전달하면 고루하고 지겨운 잔소리로 들리지만, 문학은 ‘흥부’와 ‘놀부’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주지 않나. 읽다가 멈춰서서 생각하고, 다시 읽는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개입하는 저만의 상상력이 재미를 더했던 것 같다.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이란 제목은 문학을 사랑했던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듯한 느낌인데.

▲문학을 즐기지 못하게 된 건 우리가 시간의 압박 속에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저 역시 학원 강사로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문학에서 멀어졌다. 대개 청소년기에는 입시를 위해 반강제적으로 문학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즐기며 읽는 법을 배우기보다, 시험 문제 지문으로서의 문학을 해석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아주 유명한 소설도 다 읽은 사람보다 학습서에서 부분을 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입시가 끝나고 선뜻 문학책에 손이 안 가는 이유다. 속도와 효율 면에서도 압축된 영화와 드라마를 제쳐놓고 두꺼운 책을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을 통해 공존, 열림,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이를 통해 ‘인간다움’을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감정이입’이란 말을 좋아한다. 문학은 모르는 대상과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감을 끌어낸다. ‘만일 나라면’이란 가정으로 감정 이입하면서 경험치를 넓히고, 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 문학 속 인간의 삶은 아이러니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착한 사람이 선함으로 고통을 겪고, 악인이 칭송받기도 한다. 솔직함이 파국을 부르기도 하고, 진실과 선함이 항상 공존하지 않는다. 결국 문학은 옳고 그름을 떠나 삶 자체의 다층성을 보여주며, 인간을 이념적으로, 이분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한다. 이런 다양성과 다층적인 시선은 결국 타인과 사회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이어진다. 문학이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에 반기를 들고, 옳고 그름에 대한 시대 규정에 물음표를 다는 이유다.

-문학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경험이 궁금하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낙관적 세계관이 주변 상황으로 흔들릴 때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을 때, 대학원 시절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때, 초보 강사 때 주 40시간씩 강의했을 때…. 특히 1930년대 식민지 시대 청년 작가들의 작품에서 큰 힘을 얻었다. 개인이 발버둥쳐도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인물이 느끼는 슬픔, 분노, 혼란, 무력감, 자괴감에 공감하면서 ‘그래 이들도 힘든 세상을 견디며 살았구나’란 묘한 위로를 받았다. 옳다, 그르다, 이렇게 해라 등의 메시지 없이 탈출구 없는 세계에 가로막혔을 때 주인공이 견디는 고민과 자의식 분열 등이 큰 힘이 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네 탓이 아니다’ 등의 깨달음을 얻었다.

-여러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이 위로가 되기엔 삶이 팍팍하지 않나.

▲문학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시간의 위로’다. 사실 공감의 경험은 꼭 문학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로 해도 된다. 다만 문학은 상상력을 개입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경험케 한다.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고,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를 활자로부터 상상력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문학은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끊고, 구체적으로 상상이 안 되면 다시 앞 내용을 보는 과정에서 지연되고 느리게 흐르면서 바쁜 일상과 완전히 다른 ‘너그러운 시간’을 허용한다. 문학을 읽는 이유는 이런 특별한 시간의 경험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다는 문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공시생을 향한 삐딱한 시선도 존재한다.

▲공시생을 안정적인 삶을 위해 도전을 포기한 소극적인 청년들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책에서도 말했듯, 안정적인 삶도 도전적인 삶 못지않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안정적인 삶을 경험하지 못하고 항상 가난과 결핍에 시달린 청년들에게 안정감은 평생의 희망일 수 있다. 그런 이해 없이 상황을 단순화해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는 합격을 목표로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준비했을 때의 삶의 태도는 몸과 마음에 각인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수험 기간의 치열함이 남아 있을 거다. 이 치열함이 지금의 힘듦을 밀어내고 앞날을 새롭게 만드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내려갈 것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강사도 그런 두려움이 클 것 같은데.

▲‘일타강사’란 말만 봐도 평가 기준이 ‘순위’라는 걸 알 수 있다. 강사는 경쟁과 성과, 효율성으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요즘 일부 일타강사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제가 일하는 모습을 며칠만 봐도 생각이 달라질 거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노동 강도 자체가 매우 세다. 가진 지식으로 수험생의 앞날을 열어준다는 보람도 크지만, 끊임없이 평가받고 경쟁하는 직업에 가끔 극도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땅끝은 땅의 끝이지만 바다의 시작’이란 나희덕 시인의 시구를 되새긴다. ‘강사의 끝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일 거야’라고 낙관적 태도를 늘 유지하려 한다. 책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문학의 위로를 전한다면.

▲문학이 우리를 위로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헤매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한 인생이 그가 이룬 성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생이란 항해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없다. 인생은 흔들리기도 하고, 방향도 잃으면서,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며 형성되는 감정의 총합이다. 그러니 성과를 독촉하는 사회에서 부대낄 때는 문학 속에서 자괴감과 슬픔, 불안감 속에서 헤매는 인물들을 만나 보길 권한다. 속도 압박에서 벗어나 내게만 허락된 느린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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