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급에 가 있어"... 이 말이 '배려' 맞나요? [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류승연 입력 2023. 11. 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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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제 11화. 학교생활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류승연 기자]

 아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참관수업에도, 장기자랑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 unsplash
 
가장 안전할 것 같은 '학교'라는 공적 울타리 안에선 생각보다 많은 인권 침해 사례가 일어납니다. 특히 특수교육대상자 경우엔 비장애 학생에 비해 더 자주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하지만 꼭 학생만 인권 침해 대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침해 대상은 학생과 교사를 가리지 않아요.

대다수 사례는 몰라서 그럴 거예요. 이것이 인권 침해 영역인지 아닌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의 인권을 침해하고 말겠어"라는 의도가 담긴 사례는 없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통합교육 배제, 전학 권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던 날이었어요. 저는 그날 학교에 오지 말고 아들도 참관수업이 있는 시간에 특수학급으로 보낼 것을 제안받았어요. 아들을 위해서였어요.

"교실 안에서 아무개의 모습을 다른 학부모들에게 보이면 괜히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것 같아요".

그 말이 고맙게 들렸습니다. 안 그래도 장애아의 부모로 살면서 늘 기가 죽어 있었는데 제 아들 생각해 주는 건 교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것이 시작이었어요. 아들은 이후로 원반(1학년 1반 등 소속된 원래 반)에서 어떤 일이 있을 때면 '장애의 어려움'을 이유로 "참여 안 해도 됩니다" 하는 상황에 놓이더라고요.

가장 아쉬웠던 건 연말에 있었던 반별 장기자랑 때였어요. 아들이 속한 반은 악기 연주를 한다길래 기대하고 있었죠.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없지만 북이라도 두드리며 친구들과 함께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때도 아들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위해서였대요. 아들이 힘들어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참여를 시키지 않았대요.

이때만 해도 이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요. 날이 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들을 위한 일이라니까 그러려니 했던 거죠.

벌써 8년 전 일인데요. 8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학부모 참관수업, 생존 수영, 현장 학습, 학교 행사 등에서 '장애'를 이유로 배제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겁니다.

이듬해 아들은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권고받았어요. 3번에 걸친 권고를 받고 저는 아들을 특수학교로 전학시켰죠. 알고 보니 이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항이었지만 그때는 저도 이 사실을 몰랐고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수교육지원센터 인권지원단
 
 교실
ⓒ 픽사베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학습 활동에서 배제되면 특수교육법(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위반입니다. 정당한 사유가 '장애'라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고요.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활동에서 장애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면 손쉬운 배제가 아닌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또한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또렷하게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법으로만 해결되진 않죠. 그리고 매사에 법부터 들이밀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이 중요합니다. 깊이 있는 대화가 정말로 중요해요.

지원 인력이 더 필요하면 교육청 등에서 특수실무사나 사회복무요원을 따로 파견할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당사자 행동 문제로 도움이 필요하면 긍정적 행동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거나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다시 꾸리고, 학교장의 의지가 문제면 교사 대신 학부모가 어떻게 나서면 될지 함께 궁리해 봐야 합니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만으로 해결 안 되는 일도 있을 거예요. 학폭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더 그렇죠. 그럴 땐 각 지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연락하면 됩니다.

모든 특수교육지원센터엔 인권지원단이 있어요. 이곳에 사안을 접수하면 관련 지원(학생 대상 중재 및 상담, 관계 회복 프로그램 실시, 학교장을 통한 교직원 대상 연수 실시 등) 내용을 안내받을 수 있고 해당 지역 특수교육업무 장학사와의 연결도 이뤄질 겁니다.

각 지역 장애인 인권 단체에 상담 요청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떻게 사안을 처리하면 될지 안내해 줄 거예요. 만약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라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연락해 보세요. 연계된 변호사를 소개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학부모에 의한 교사 인권 침해

특수교육대상자의 인권은,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더 자주 침해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하지만 특수교육대상자가 늘 피해자 위치에 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특수교육대상자 학부모에 의해 교사가 인권 침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특히 특수교육대상자 경우엔 당사자가 말을 못 하거나(무발화), 말을 할 줄 알아도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사는 학부모에게 개인번호를 공개하고 소통도 잦은데요. 이 과정에서 학부모에 의한 교사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올해 서이초 사건 이후로 학부모 문제에 대해선 너무 많은 얘기가 나와서 따로 말을 더 보탤 필요는 없겠지요. 그래도 혹 모르니 이것만은 확실히 하고 갔으면 합니다. 교사가 정한 소통 시간(업무 시간) 외에는 연락하면 안 됩니다.

물론 한밤중이거나 주말에도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해야죠. 아이가 실종됐다거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놓이게 됐을 때는 연락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궁금한 것 물어본다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 이빨에 고춧가루가 껴 있던데 낮에 양치 안 시켰냐고 늦은 밤에 연락하는 사례도 봤습니다.

교사 인권을 존중해야 우리 아이 인권도 존중해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에 '당당함'을 실을 수 있습니다.

덧붙여 하나 더 당부하고 싶은 건, 특수교사를 심리상담가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특수교육대상자를 키우는 입장에선 이런저런 차별과 배제를 받는 상황에 자주 놓이다 보니 그나마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는 특수교사에게 심적으로 기대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했던 얘기 또 하면서 울분을 푸는데 이런 감정 노동에 교사들이 많이 지친다고 합니다.

미국의 적극적 차별 개선 정책
 
 28일 오전 광주 서구 무각사 앞 도로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광주지부 관계자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없는 통합 교육 보장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권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 그래요. 특히 서로의 인권(특수교육대상자, 비장애 학생, 교사, 학부모)이 충돌한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으면 상황은 더 골치아파집니다.

게다가 "장애인으로 인해 비장애인의 인권이 침해받는다"는 논리를 들고나오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론적 무장을 하고 있어도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미국법에는 '적극적 차별 개선 정책'이라는 것이 있대요. 그동안 사회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킨 상태에서 발전해 왔기에 그에 대한 반성으로, 적극적인 평등 사회를 위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더 적극적인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래요.

그동안 대한민국 교육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특수교육대상자의 학습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0년 남짓이랍니다. 그나마도 십몇 년 전에 장애 운동의 한 축으로 '학습권 투쟁'이 일어나서 지금의 특수교육 체계가 잡혔다고 해요.

그만큼 장애인의 학습권은,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은, 모두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특수교육대상자와 함께하는 교육 활동, 학교 생활에서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그건 지금이 한창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기 때문일 거예요.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아직 자리를 잡기도 전에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모여서 공부해" "발달장애인은 집에서 홈스쿨링해"라고 해버리면 지금의 과도기가 길어지는 결과만 초래하게 될 거예요.

배려를 가장한 배제 말고 '지원'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소통'으로, 그 방법을 찾아 나가는 길에 모두가 뜻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과도기 말고 안정기, 그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요.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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