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서울, 물길 복원 선두 도시의 다음 행보

입력 2023. 11. 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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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한양 도성길의 백악산 구간을 처음 탐방했다. 날씨 좋은 가을날이었다. 청운대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표찰을 받은 뒤 계단이 많은 길을 힘들게 올라갔다. 백악산 꼭대기에 올라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서울의 지형은 흥미진진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 가운데 산이 많은 걸 서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편리한 대중교통, 안전한 치안, 빠른 인터넷 속도 등을 꼽기도 하지만 산이 많아 좋다는 이들이 가장 많다. 이런 의견은 1980년대 초부터 꾸준했다.

하지만 서울에는 산만 있는 게 아니다.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서울 시민들도 잘 모르는, 하지만 산만큼이나 빼어난 게 있다. 바로 물길이다. 바로 한강을 떠올리겠지만 생각해보면 한강은 다리를 건널 때 넓은 경치를 순간적으로 즐겨 볼 수는 있지만, 주변에 도로가 많아 친근감이 덜하다. 그렇다면 또 어떤 물길이 있을까.

접근하기 좋고 인기 있는 물길이라면 역시 2005년에 복원된 청계천이다. 1960년대부터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했던 서울시는 도로를 넓히고 지하도와 육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청계천 고가도로는 그 시절 중요한 건설 프로젝트였다. 이미 1955년부터 단계적으로 복개되어 도로로 변했던 청계천의 남은 부분을 모두 복개하면서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서울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교통이 혼잡한 원도심에 꼭 필요한 도로로 여겨졌다.

서초구 양재동 영동1교 부근 양재천.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200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는 선진국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새로 얻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무렵 전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던 데다 도시 속 삭막한 공간을 녹지로 바꾸는 사업이 해외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생활과 교육 수준이 향상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면서 시민들 사이에 도시 공간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점점 퍼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졌다. 복원의 과정이야 논란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고층 건물만 가득 찬 도심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변신한 청계천은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여러 파급 효과도 낳았다.

물길의 변화는 이어졌다. 1990년대 말 논의를 시작한 성북천, 안양천, 양재천의 복원과 공원화는 2000년대 초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콘크리트로 덮인 성북천을 살리고 공원으로 조성했다.

안양천은 2005년부터 공사에 착수, 안양천 옆으로 한강에서 안양 시내까지 연결하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만들었다. 같은 해 양재천 옆으로는 과천까지 가는 산책로가 생겼다. 도로로 덮여 있던 성북천이나 급성장기 오염되었던 안양천과 양재천의 생태를 복원하는 것 역시 사업목적 중 하나였다. 이 세 곳 주변으로 이어진 50㎞ 넘는 산책로와 공원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을 위한 커다란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서울은 물길을 살리는 데 선두에 서 있다. 19세기부터 도시의 미학적 기준에 크게 영향을 미친 파리의 센강 공원 조성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8년 강변의 큰 도로를 철거한 뒤 공원 조성 사업을 시작, 도로가 없는 부분은 떠 있는 산책길과 정원으로 연결했다. 산책하며 파리의 역사적 경관을 즐길 수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00년 만에 열릴 예정인 2024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위해, 100년 만에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수질을 깨끗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서울에 비하면 한참 늦은 셈이다.

물길을 살리고 공원화하는 데 선두를 달리는 서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서울의 산은 아름답고 비교적 커다란 물길은 대체로 잘 복원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서울 곳곳의 주택가에는 자연과의 접점이 여전히 부족하다. 아파트단지는 건축 규칙에 맞게 조경을 하고는 있지만, 그곳은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것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벽이 높다. 그 밖에 저층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에서 자연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서울은 자연과의 접점에서도 양극화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방법은 여럿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면, 최근 20년 사이에 많은 물길을 복원한 것처럼 다른 곳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여전히 서울 곳곳에는 골목마다 복개된 물길들이 많다. 대부분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도로를 철거한 뒤 물길을 복원하고 그 주변을 자연과 소통하는 산책로로 조성하는 것이다. 예산과 교통 상황이 문제라면, 가능한 곳만 부분적으로 복원해도 괜찮다.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 북문에서 망원정을 거쳐 한강까지 흐르던 세교천을 전부가 아니라도 녹지가 부족한 이 지역 주택가를 중심으로 일부만이라도 복원하면 어떨까. 부분적으로 복원한 도봉구 방학천은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

사라진 물길이 많으니 굳이 복원에 연연하기보다 조경 공사와 함께 그 자리에 옛 물길을 상징하는 실개천을 인공으로 새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대대적인 공사를 하지 않더라도 한결 손쉽게 밀집된 도시 공간에 자연을 들여놓을 수 있다. 광화문 교보빌딩 뒤 중학천이나 대학로의 흥덕동천을 상징하는 물흐름과 조경 공사를 해둔 곳 또한 참조할 수 있다. 실개천을 중심으로 산책할 수 있는 공간과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 이전과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서울에는 사라진 작은 물길이 많으니 이런 식으로 조성을 한다면 삭막한 주택가에 시민을 위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물길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면서 도시의 미관을 아름답게 할 뿐만 아니라 바람길 역할도 한다. 무더운 여름 도시의 실제 온도와 체감 온도를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 기후 변화 시대 삶의 질에 영향을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왕 물길을 만드는 선두에 서게 되었으니 서울의 다음 행보는 곳곳의 작은 물길을 더 살리는 쪽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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