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진료실 밖 의사’의 길도 있다

민태원 입력 2023. 11. 3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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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지역의료 위기의 해법으로 의대 증원 논란이 뜨겁다. 모든 논의의 초점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릴 ‘진료실 안 의사’, 즉 임상의사 수가 이대로 괜찮은가 아니면 부족한가에 맞춰져 있다. 병원 밖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주변에서 기자나 변호사 공무원 스타트업대표 등 본업인 진료 대신 딴짓(?)하는 의사들을 종종 본다. 각자 뜻한 바가 있겠지만 그들은 왜 쉽고 보장된 길을 놔두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의아할 때가 많다. 특히 국가 성장동력인 바이오·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서 험난한 길을 개척하는 의사들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얼마 전 한 심포지엄에서 진료실 밖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의사 3명을 만났다. 한 명은 국내 최고 국립의대를 나와 신경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중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이후 경영컨설팅 기업, 글로벌 제약사를 거쳐 2015년 의대 동기와 의기투합해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치료제·면역 항암제 개발 회사를 차렸다. 그는 ‘대한민국 의사: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스스로 의사라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 언젠가 (의사로)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업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 여운을 남겼다.

또 한 사람은 유명 사립의대를 졸업하고 정부와 산하기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로 자리를 옮겨 디지털헬스케어 제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 2016년 당시 개념조차 생소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는 ‘의사가 디지털헬스 기업에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의료의 영역을 과학으로 넓힐 수 있는 의과학자가 많아져야 바이오헬스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여성 소아과 전문의로 항암신약 개발 제약사의 임상시험 책임자였다. 그 역시 “가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바이오헬스 기업의 의사도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 공감을 샀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의사가 진료실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산업에서도 임상의사들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그걸 통해 국민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역, 진료과 간 의료 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고 진료가 의사 역할의 전부라는 인식이 강해 대부분 의사가 임상 진료에만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시각 또한 그렇다 보니 최근의 전국 의대 증원 수요 조사에 미래 성장동력인 바이오헬스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의사 수요까지 반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내 바이오헬스산업은 지속 성장하고 있지만 필요한 전문인력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2025년 신약·의료기기 개발, 의료 서비스, 뇌 연구 등에 7만명의 의사 등 전문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문제는 임상의사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산업계와 의사를 연계하는 전문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학 교육의 변화가 시급하다. 의대 교육에 임상 진료뿐 아니라 의과학자나 바이오헬스산업 진출 등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제공돼야 한다.

“이제는 질병에 대해서만 가르치지 말고 인문학, 인공지능(AI), 디지털 치료제 등 어떻게 의학이 다른 분야와 융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한 원로 의대 교수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정부가 ‘예과 2년+본과 4년’의 의대 교육을 2026년부터 통합 6년 과정으로 전환을 추진 중인데, 시대가 요구하는 의사 양성 방향으로 혁신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의대 진학 광풍’ 속에서 돈 잘 벌고 편한 진료과 의사만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미래 의사의 새로운 역할이 있음을 조기 교육하는 기회가 많이 제공되면 좋겠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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