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혁신이 필요한 ‘정치혁신’
참신한 정치인 충원하고 미래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게 중요
여야 대화와 타협 가능하고 인물 아닌
가치와 정책이 정치의 쟁점이 되게 해야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혁신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혁신의 결과가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때 그 의미가 있다. 성공한 혁신을 위해서는 우선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목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면서 실천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와 정당이 정치 혁신안을 만들고 시행했으나 그 성과는 시원찮았다. 지난 6월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애초 계획한 활동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좌초했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는 한 달 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진행 과정이 순탄치 않다. 양 정당의 혁신위원회가 성과를 얻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혁신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정당 모두 혁신의 목표로 통합과 미래를 내세웠다. 양당 모두 혁신안에 인물과 세대교체를 담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3선 연임 초과 제한 방안을 제시했고, 국민의힘은 영남권 국회의원, 당 지도부, 대통령과 친한 의원들의 불출마 혹은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청년세대를 위해 민주당은 가산점을 부가해 세대 균형 공천을 실현하고자 했고, 국민의힘 역시 비례대표 당선 가능 순번에 청년 50% 할당 의무화를 제안했다.
양당 모두 혁신을 통해 구태를 버리고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하지만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통합과 미래라는 혁신의 목표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혁신의 목표는 우리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파괴적 정쟁과 임계점에 달한 정치 불신이다. 여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이제는 악마화의 정치가 우리 정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당연히 정치 불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국민이 정당과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통합을 통해 정쟁과 정치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인물 혁신과 세대교체를 통해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것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41.7%만이 21대 선거에서 당선됐다. 20대 국회의 물갈이율 49.3%보다 9.0% 포인트 늘어났다. 그 이전의 선거를 봐도 매번 절반 정도의 국회의원이 교체된다. 그렇지만 우리 정치는 나아지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에 힘입어 386세대 68명이 국회 진출에 성공했다. 대부분이 30, 40대 청년세대였다. 그렇지만 새 정치와 청년 정치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들은 점차 구태 정치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정치 퇴출의 대상이 됐다.
어떤 인물을 퇴출할 것인가보다 중요한 일은 누구로 대체할 것인가의 문제다. 양당이 모두 낡은 정치인들을 퇴출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유능한 새 정치인을 충원할 방안은 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참신한 정치인을 충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미래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악마화의 정치와 당내 독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정치 현실에서 신인 정치인이 정치 혁신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도 386 정치인의 비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신인 정치인들이 정치 혁신의 주역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고 당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보스 정치와 권력 집중 현상에 있다. 두 문제 모두 광복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악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정당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들의 보스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물이 아니라 가치와 정책이 정치의 쟁점이 돼야 한다. 혁신위원회가 말하는 미래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와 정책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내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상대 정당을 겨냥한 단일대오 형성이 통합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정치 혁신의 방향은 명확하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 국민이 힘들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보스와 강성 지지 세력이 아닌 국민의 마음으로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혁신위원회가 또 다른 구태정치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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