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연말에 일하기 싫어서

강주화 입력 2023. 11.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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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인가 보다.

주변에서 일하기 싫다는 얘기를 부쩍 많이 듣는다.

그런데 행사 일정이 변경됐던 모양이다.

"하나님, 오늘 제게 설교 안 하는 은혜를 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사람은 자기 일을 성실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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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화 산업2부장


연말인가 보다. 주변에서 일하기 싫다는 얘기를 부쩍 많이 듣는다. 검찰을 취재하던 때다. 그때도 연말이었다. 검사가 책상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었다. 웬 기록이냐고 물었다. “마무리할 사건 기록을 다 꺼냈다.” 연초 인사 전에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검사가 공소장만 안 쓰면 정말 좋은 직업인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하다. 범죄자를 재판에 세우는 건 검사만 가진 권리이기 때문이다. 형법상 기소독점주의. 그래도 객쩍은 맞장구를 친 걸로 기억한다. “기자도 기사만 안 쓰면 정말 좋은 직업이다.” 쓰는 것만 힘든 건가.

개신교 주요 교단 목회자들과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나이 지긋한 교단장이 내 바로 앞 좌석 목사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하는 곳에서 김 목사가 설교를 좀 해주게.” 그 목사는 “예”라고 했지만 흔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행사 일정이 변경됐던 모양이다. 잠시 후 교단장이 다시 그에게로 와 설교를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 순간 김 목사는 이렇게 나직이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 제게 설교 안 하는 은혜를 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사람은 자기 일을 성실히 한다. 하지만 어떤 땐 그 일을 피하고 싶다. 일이란 게 대개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다.

그런데 그 일을 제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나 무언가에 피해가 간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이 불가능하다. 공소가 늦어지면 그만큼 사회 정의가 지연된다. 기자가 기사를 안 쓰면? 기자라고 할 수 없다. 목회자가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성도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본분을 다하기 어렵다. 때론 지겨운 밥벌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 일은 나와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다. 다른 사람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타러 가다 커다란 상자 2개를 등에 지고 내려가는 분을 봤다. 16개들이 점보롤 화장지였다. 수십m 아래까지 수백개 계단을 하나씩 밟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그 화장지는 아마도 매일 수만명이 오가는 지하철 공중화장실에 비치될 것이다. 만약 화장지를 만들고, 배달하고, 거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당장 오늘 지하철 화장실에서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은 제때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사회 전체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연말 국회 예산안 처리가 대표적이다. 헌법 54조는 한 해 나라살림 규모를 계획하고 확정하는 절차를 규정한다. 1월 1일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른 예산안 처리 시한은 12월 2일. 하지만 2014년 이후 국회가 시한을 준수한 적은 두 번뿐이다. 지난해 국회는 올해 예산안 처리 시한을 21일이나 넘겼다. 올해도 여야 입장차가 커 법정 기한 준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각 정부부처가 정책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시점도 밀려난다. 부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산업 분야 예산이 늦게 결정되면 기업이 힘들어진다. 관련 사업 공고를 목 빠지게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업인이나 소상공인들은 매일 애가 탄다. 올해 많은 공공기관은 예산이 제때 내려오지 않는 통에 기업으로부터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 돈이 이달 중에 입금되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고.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이 당장 어떤 기업의 존폐를 가르기 때문이다. 국회는 제때 제대로 된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별생각 없이 얼렁뚱땅하거나 늦장 부렸다가 내년 선거 때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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