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유통 현장을 가다…열성 고객과 단톡방 소통 ‘사적 트래픽’ 대세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3. 11. 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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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17일 중국 베이징 궈마오에 있는 하이디라오 AI 스마트 매장. 중국의 소울푸드인 훠궈를 먹다 보면 여기저기서 팡파르 음악이 들려온다. 1시간 남짓 동안 생일을 맞은 고객을 위한 즉석 축하 공연만 세 번이나 진행됐다. 변검 연극, 스마트 주방 투어 등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도 펼쳐진다.

여기에 최근 새로운 ‘마케팅 무기’가 하나 더 추가됐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을 단톡방에 초대해 소통하는 ‘사적 트래픽’이다. 단톡방에서는 수시로 하이디라오의 할인 쿠폰이 뿌려진다. 중요한 건, 이 쿠폰이 일반 대중에게 제공되는 ‘공적 마케팅’과 다른 것은 물론, 100명 안팎 규모로 만들어진 다른 단톡방의 쿠폰과도 다르다는 것. 하이디라오는 여러 단톡방에서 각기 다른 메시지와 쿠폰을 제공하며 고객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AB 테스트’를 해서 좋고, 고객은 차별화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이런 마케팅에 힘입어 하이디라오는 올 상반기 기준 1382개 매장을 운영하며 매출 3조4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의 준수한 실적을 기록 중이다.

중국 비즈니스 학습 여행 전문기업 ‘만나통신사’의 윤승진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중국 유통업계에서는 ‘사적 트래픽’이 대세로 떠올랐다. 중국의 카카오톡인 ‘위챗’ 단톡방을 이용하니 비용이 들지 않고, 브랜드나 쿠폰 마케팅에 적극적인 고객과 소통할 수 있어 수많은 브랜드가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신유통 혁명이 고조되고 있다. 노숙자도 QR코드로 적선을 받는 것은 이제 화제도 아니다. 세계 500대 기업 지역본부가 가장 많은 도시 베이징에 가서 코로나 이후 중국의 디지털 전환 현황을 살펴봤다.

‘중국의 스타필드’에 해당하는 ‘흐셩회’의 한 직원 머리띠에 QR코드가 크게 그려져 있다(좌). 베이징 명소로 꼽히는 ‘세무천계’의 한 쇼핑몰 입구에 루이싱커피가 입점해 있다. 사진은 매장 내 모습(우). (노승욱 객원기자, 만나통신사 제공)
‘마오타이’로 부활한 루이싱커피

상장폐지 딛고 스타벅스 매출 추월

중국의 신유통 혁명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는 ‘루이싱커피’다. 코로나 사태 전에 온라인 온리(online only) 주문, 커피 배달 서비스, 4+4 마케팅(4잔 주문 시 4잔 공짜) 등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스타벅스 대항마로 떠올랐다. 창업 18개월 만에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분식회계가 적발되며 상장폐지 됐다. 이후 4년. 루이싱커피가 환골탈태했다.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와 중국 바이주 대표 브랜드인 ‘마오타이’와 제휴, 마오타이향 커피 신메뉴를 선보여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2분기 8억5500만달러(약 1조1050억원) 매출을 거둬, 8억2200만달러(약 1조624억원)에 그친 스타벅스를 앞질렀다.

실제 베이징에서 명소로 꼽히는 ‘세무천계’의 한 쇼핑몰 입구에도 당당히 루이싱커피가 입점해 있다. 3평 남짓 작은 매장에선 직원 3명이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며 배달과 포장으로만 영업하고 있었다.

스타벅스도 대응에 나섰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만 배달 전문 매장 ‘스타벅스 나우(now)’를 출점한 것. 베이징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싼리툰을 비롯해 주요 거점 상권마다 매장을 냈다. 10평이 채 안 되는 스타벅스 나우 매장에는 공간의 절반이 커피를 만드는 주방이고, 나머지는 라이더가 포장된 커피를 픽업할 수 있는 보관함과 서서 기다리는 대기 공간뿐이다.

키덜트족을 위한 아트토이 편집숍 ‘팝마트’의 매장 사진(좌). 베이징 싼리툰에 있는 창고형 뷰티 편집숍 ‘하메이’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우). (노승욱 객원기자)
아트토이부터 창고형 뷰티까지

편집숍의 진화 ‘팝마트’ ‘하메이’

키덜트족을 위한 아트토이 편집숍 ‘팝마트’는 블라인드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힌다. 아이언맨, 건담, 아톰, 귀멸의칼날, 짱구 등 수십여의 인기 영화, 애니메이션의 IP(지식재산권)를 사들여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판다. 단, 제품을 사서 열어보기 전에는 안에 어떤 캐릭터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소비자가 갖고 싶은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추가 구매를 하도록 유도한 것. 추가 구매가 내키지 않는 고객을 위해서는 팝마트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소비자는 여기서 자신이 소장한 아트토이를 자랑하고, 자신에게 없는 제품을 가진 다른 고객과 서로 사고팔며 ‘리셀’도 할 수 있다. 제품을 구매하면서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브랜드와 밀착된 경험을 하게 되는 구조다.

팝마트는 한때 10조원 넘는 시가총액을 달성하며 급성장했다. 올 상반기 순이익은 1000억원에 육박한다.

팝마트가 아트토이 편집숍이라면, 하메이는 ‘창고형 뷰티 편집숍’이다. 싼리툰에 있는 매장은 평일 오후에도 20대 여성 고객으로 붐빈다. 하메이는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의 샘플 제품을 코스트코처럼, 노출 콘크리트와 창고 형태의 공간에서 투박하게 진열해놨다. 특징은 상품 가짓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 어디서나 구매하기 쉬운 베스트셀러 상품이 아닌, 희소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써봐야 아는 화장품 특성을 감안해 5㎖ 단위 소용량 샘플 위주로 판매한다. 용량당 가격을 비교하면 저렴하지 않아도 샘플이라 용량 자체가 적으니 싸게 느껴진다. 주머니가 가볍고 다양한 제품을 체험하고 싶은 MZ세대 고객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배경이다.

틱톡 라이브커머스의 힘

3시간에 800만원 매출 ‘쑥’

‘중국의 스타필드’에 해당하는 ‘흐셩회’에선 한 크리에이터가 한 매장에서 틱톡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하고 있었다. 소형 조명 장치를 부착한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매장을 오가며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여주고 홍보한다.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얘기하며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틱톡은 피드가 순식간에 넘어갈 수 있어, 매장을 홍보하는 피드가 떴을 때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온라인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크리에이터는 3시간 동안 틱톡 방송으로만 무려 800만원어치의 판매량을 올렸다.

눈에 띄는 건 직원들이 목걸이나 머리띠에 QR코드를 크게 그려 놓고 고객에게 찍어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이다. 직원마다 QR코드가 다르니, 어느 직원을 통해 구매가 이뤄졌고 매출이 올랐는지 성과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 대응(CRM)뿐 아니라 직원 관리(HRM)도 더욱 효율화된 것이다.

이 밖에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전통 산업도 DX 대열에 동참했다. 1669년에 설립된 중의학 브랜드 ‘동인당’은 우황청심환을 처음 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글로벌 IT 회사 ‘동인당국제’를 설립, IT 기술을 활용한 건강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혀 사진을 촬영한 후, 혀의 빛깔로 건강 상태를 진단, 맞춤형 건강차를 추천하고, 태극권 연마를 위한 스마트 거울도 비치했다.

‘해마체 사진관’은 국내에서 유행하는 즉석사진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온라인에서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하고 예약하면 메이크업부터 코스프레 의상까지 제공해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령 자신이 백설공주로 꾸민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그에 맞는 의상과 헤어 디자인, 화장에 사진 촬영, 보정까지 다 해준다. 2014년 오픈해 50개성에서 2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 디지털 경제 비중 40%

체험 소비 인기…신유통 확산 지속

전문가들은 중국의 신유통 혁명이 중국 정부가 제시하는 ‘디지털 차이나’에 부합한다고 진단한다. 다양한 분야의 유통이 4차 산업 기술들과 접목되면서 ‘중간 단계’가 생략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은 “5G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중국 인구가 4억명을 넘어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되는 것”이라며 “중국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어서는 등 중국 신유통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 MZ세대와 같이 중국 MZ세대도 소비에 있어 체험적인 면을 추구한다는 점도 신유통이 확산하는 이유다. 다만 중국 체제의 획일성·경직성은 디지털 기술 발전의 저해 요소로 보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는 “중국 젊은 층이 소비 과정에서의 체험과 만족을 추구하면서 유통 부분도 경험을 제공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중국의 시진핑 체제 특유의 경직성에 따라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전병서 와이즈에프엔 중국 경제금융연구소장은 “전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체험한 나라 중 하나가 중국이다”라며 “앞으로는 중국 유통이 전체적으로 온라인화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윤승진 만나통신사 대표
30분 내 물건 배달…네일아트 등 ‘서비스 배달’도
윤승진 만나통신사 대표 (만나통신사 제공)
윤승진 만나통신사 대표는 차이나 디지털 트렌드·마케팅 컨설팅을 맡는 중국 비즈니스 전문가다. 중국 비즈니스 학습 여행 전문기업인 만나통신사는 중국의 변화를 알리고 중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자 재능 기부로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고 확장되면서 설립된 법인이다. 그는 “중국 비즈니스를 한국에 적용하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Q. 왜 중국 비즈니스 학습 여행인가.

A. 중국이 디지털 혁신 영역에서 앞서가는 부분이 있다. 일상에서의 많은 부분에서 디지털 활용이 대중화돼 있다. IT 강국인 한국도 기능적으로 구현돼 있지만 활용하고 대중화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본 걸 한국에 돌아와 적용하고 도입하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5년 전 만나통신사와 중국에서 ‘배달 커피’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경험한 고객이 현재 한국에서 그 시장의 선도 브랜드를 만든 바 있다.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가 한국에는 없다. 그래서 중국에 가서 현지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여정을 설계하는 비즈니스 학습 여행을 만들었다. 아울러 한중 다문화 가정을 이룬 가장으로서 한국과 중국의 비즈니스를 연결한다는 사명감도 있다.

Q. 코로나 팬데믹 전후 중국의 변화를 꼽자면.

A. 중국은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생활 편의성이 증대됐다. 예를 들면 호텔에서 30분 안에 모든 물건을 배달 서비스를 통해 수령받을 수 있다. 또한 서비스 배달도 활성화돼서 네일아트나 메이크업 출장 서비스도 쉽게 받을 수 있다. 편리한 서비스의 개발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졌고 혁신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또한 코로나로 고객과 디지털 연결을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또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하고 마케팅 방법을 만들었다. 지역 기반의 고객을 여러 개의 단체 채팅방을 통해 관리하는 사적 트래픽 마케팅, 숏폼 콘텐츠 소비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도하는 숏폼 커머스 등 브랜드가 어떻게 디지털 연결을 활용해 고객을 관리하고 소통하는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Q. 앞으로 경영 계획은.

A. 만나통신사는 옛날 서로의 문화와 신문물을 교류하던 통신사를 모티브로 탄생한 비즈니스다. 단순히 보고 오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게 목표다. 또 한중 관계가 어려운 지금,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 기업가에게 다양한 연결과 교류를 제공하고 싶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6호 (2023.11.29~2023.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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