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 SVB 사태 경고… 금리 인상시 좀비기업 속출 우려
지방은행, 미실현 손실 급증 전망
예금 고객 이탈로 뱅크런 가능성도
은행, 대출 조여 좀비기업 파산할 듯
일본은행(BOJ)이 지방은행과 신용금고를 대상으로 금리 리스크를 관리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그랬듯, 일본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설경우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각에서는 저금리에 기대 수명을 잇던 좀비기업까지 줄줄이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면서 기업과 금융시장 전반에 큰 변화가 일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리 인상에 채권 가격 하락… 미실현 손실 급증 우려
2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BOJ는 최근 금융 안정성 보고서를 통해 일본 신용금고들의 중앙은행 격인 신금중앙금고와 지방은행들이 보유한 장기 대출과 유가증권이 금리 리스크에 노출돼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리스크란 금리 변동 시 금융회사 자산과 부채가 변하면서 생기는 자본 변동성을 말한다.
은행들은 금리가 인상될 경우 예대마진 확대로 이자수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채권 가격 하락 여파로 채권평가손실이 커지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반대로 내려가기에 중앙은행이 급격한 금리 안상에 나설 경우 채권투자에 나선 금융사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BOJ는 지방은행들의 경우 대형은행에 비해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기에 금리가 오를 경우 막대한 미실현 손실을 떠안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실현 손실이란 금융사가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이 액면가보다 하락했으나 아직 매도하지 않아 손실이 실현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올해 초 SVB 사태도 미국의 고강도 긴축으로 국채 등 보유자산 가격이 하락으로 촉발된 바 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최근 한 외신이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일본의 금융사들이 BOJ가 금융정책 정상화에 나서도 일정 수준 이를 견딜 여력은 있다면서도 "(금융사마다)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의 지방은행은 지난 7월 BOJ가 장기금리 변동 폭 상한을 기존 ±0.5%에서 사실상 1%로 끌어올리면서 채권손실이 급격히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일본의 97개의 지방은행이 채권 투자에서 입은 미실현 손실은 2조8000억엔(24조5400억원)으로, 지난 6월 말에 비해 7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반해 일본의 3대 메가뱅크(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은행)는 수익 구조가 다각화돼있어 상대적으로 금리 리스크에 적게 노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SIB증권의 사메시마 도요키 애널리스트는 "최악의 경우 은행들은 이 같은 미실현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며 "더욱이 금리 오르는 환경에서는 고수익 채권을 매입하기 위한 신규 투자를 감행하기 어려워지므로 지방은행들이 침체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금융청, 뱅크런 예의주시…대출 조이면 좀비기업 파산 늘듯일본 금융청은 소규모 지방은행들의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은행들은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SVB와 달리 개인 고객들을 중심으로 예금을 예치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뱅크런 위험이 낮다고 판단되지만, 금리가 본격 인상 사이클을 탈 경우 더 높은 이자를 노린 예금주들의 이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주요 외신에 "과거와 달리 일본인들의 온라인 뱅킹 사용률이 높아졌기에 이전의 금리 인상기와는 상황이 매우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찾아올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금리 리스크에 노출될 경우 대출을 조여 초저금리를 기반으로 생존해온 이른바 좀비기업들의 연쇄 파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인다. 일본의 제국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한 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지난 3월 기준 18만8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메시마 애널리스트는 "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재무 상태가 엉망인 기업에 대출을 내주는 데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며 "생존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만 지원하려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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