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②전략미스③취약한 외교력...부산 엑스포 패인 세가지

구채은 2023. 11.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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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 못가고 90표차 완패
엑스포 참패 후폭풍 예상
총리 불참 伊와 12표차 불과
대통령실 짧은 메시지만
韓총리 책임론 불가피
182개 BIE 회원국 투표를 진행한 결과 165국이 참석해 유효표를 던졌고 사우디(리야드)는 72.1%인 119표를 얻으며 1차 투표에서 2030 엑스포 유치를 확정했다. 한국(부산)은 29표(17.6%)로 2위, 이탈리아(로마)는 17표(10.3%)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사우디 119·한국 29·이탈리아 17표’

막판 뒤집기도, 역전 드라마도 없었다. 정부가 17개월 동안 총력전에 나섰던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90표 차 참패로 끝났다. 부처·기업·지자체 ‘3각 편대’로 나서 1년 넘게 광폭 행보를 벌였지만, 결선에도 이르지 못하고 완패했다. 특히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불참해 사실상 ‘엑스포 중도 포기’로 읽혔던 이탈리아(로마)와 표차가 12표에 불과했던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패인 1 오일머니

부산 엑스포 패인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쟁국이었던 사우디의 ‘초호화 물량공세’가 꼽힌다. 오일머니를 상쇄시킬만한 한국의 특장점을 윤석열 정부가 BIE 회원국들 에게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사우디는 국제박람회(BIE)총회가 열리는 파리에 상주하면서 전면적인 교섭에 나섰다.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위치한 호텔 드 크리용(Hotel de Crillon, 사우디 왕족 소유)에 상주하면서 24시간 표밭갈이에 나서왔다. 이 곳에 숙식하는 사우디 측 인사들은 엑스포 개최가 좌절되면 모두 ‘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 현지에선 ‘(교섭용) 명품 시계가 품절됐다’, 메카가 위치한 사우디가 ‘성지순례 제한카드까지 내놨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유치전이 치열했다.

투표를 하는 BIE회원국 입장에서도 원유 수출 1위인 사우디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의 세계 원유 매장량은 17.2%에 달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통치하는 전제군주국이어서 장기집권이 가능한 권력구조도 여기에 한몫한다. 2017년 집권한 빈 살만 왕세자는 2030 엑스포 유치에 명운을 걸어 왔다. 돌발 변수로 꼽혔던 월드컵 개최에 따른 ‘독식견제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은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패인 2 전략 미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형준 부산시장, 한 총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 ‘3분의 2 이상 저지’, 2차 투표에서 ‘이탈리아표 흡수’로 전략을 세우고 교섭에 나서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탈리아 총리의 BIE 총회 불참 복병에도 로마와 표차가 크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유치위 발족 이해 지구 495바퀴를 돌며 이어온 17개월간 물밑교섭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우디의 오일머니 전략에 맞대응할만한 부산의 소프트파워나 매력을 전파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1차 투표만 넘기면 사우디와의 2파전 판세를 팽팽한 ‘51대 49’의 초박빙 접전 구도로 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차 투표에서 사우디를 지지하는 부동표를 유동표로 만들지 못했다. 부산의 득표수는 리야드의 4분의 1에 그쳤다. 국제행사의 유치교섭과 관련해 전략상의 한계를 노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밀투표’라는 특징도 살리지 못했다. 엑스포는 182개 BIE 회원국 대표들이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기 때문에 예측을 할 수 없다. 각국은 투표 전 자국 대표에게 어느 도시에 투표할지 지침을 내리지만, 주프랑스대사나 대사관 소속 참사관 등이 재량으로 개최국을 찍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틈새 외교전’을 펼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패인 3 취약한 외교력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BIE 회원국의 균등한 표 배분에 따라 투표 비중이 높았던 아프리카(49표·26.9%), 유럽(49표·26.9%) 대륙의 표심을 읽지 못한 것도 패인으로 꼽힌다. 유치전에 나섰던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엑스포와 관련해 ‘벼락치기로 하다보니 한계가 있다’, ‘그동안 공적개발원조(ODA)를 전략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진단을 하기도 했다. 잼버리 파행으로 인한 취약한 국제행사 대응 능력과 맞물려 소프트파워를 통한 한국의 외교력 확산이 한계를 분명히 노출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부산 엑스포 유치를 내년 4월 총선 동력으로 삼으려 했던 대통령실과 여당으로서는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공동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한 총리 역시 개각 국면에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500여일간 윤 대통령·한덕수 국무총리·김진표 국회의장, 14개 기업 총수 등 민관이 이동한 거리를 합산하면 1989만1579㎞로, 지구 495바퀴에 달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만난 각국 인사는 96개국 462명, 한 총리가 만난 인사는 112개국 203명이다.

한편 한덕수 총리는 유치 투표 결과 발표 후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을 얻었다”면서 “저희가 (이를) 더 발전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서면 브리핑에서 “민관이 원팀으로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맞이했다”며 부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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