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넘지 못한 ‘오일머니’ 장벽…불발 그친 부산엑스포, 성과는 남았다
'문화 경쟁력'을 앞세운 부산은 끝내 '오일 머니'의 벽을 넘지 못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2030년 세계박람회(EXPO·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182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투표 결과 한국 부산은 29표, 사우디 리야드는 119표를 얻었다. 이탈리아 로마는 17표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2 이상 표를 획득하면서 2차 투표에서 이탈리아의 표를 흡수해 승부를 뒤집겠다는 정부의 전략은 제대로 가동되지도 못했다. 사우디가 왕정 체제를 총동원해 로비 활동을 벌이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BIE 회원국을 포섭한 결과로 평가된다.
이날 BIE 총회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그동안 지원해 주신 성원에 충분히 보답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2030 엑스포 개최지 경쟁엔 한국(부산)·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이탈리아(로마)가 뛰어들었는데, 유치 경쟁이 중반에 접어든 올해 초부터 사실상 한국과 사우디의 2파전 구도가 이어졌다. 다만 지난해 7월에야 민관 합동으로 엑스포유치위원회를 꾸리고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한국과 달리 사우디는 무함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21년부터 사활을 걸고 엑스포 유치에 나섰다. 올해 중순까지 국내외에서 사우디의 압도적 승리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던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막판 대역전극을 목표로 대통령·총리는 물론 각 부처 장관이 합심하고 기업들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며 사우디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선 정부에서 자체 집계한 예측표 계산 결과 한국과 사우디의 표차가 10표 안팎으로 줄어든 시나리오가 도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 2를 넘는 119표를 획득하며 2차 투표에 이르지 못했다. 익명 투표란 점에서 애초에 표의 향방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같은 결과는 정부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이었다. 1차 투표에서는 리야드를 찍더라도 2차 투표에서는 부산에 표를 달라는 게 회원국을 움직이는 정부의 선거 전략이었는데, 막강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아예 1차 투표에서 막대한 표차로 승부를 확정지으려 한 사우디의 접근법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다만 엑스포 유치 여부와 별개로 지난 17개월간의 홍보 활동은 한국의 국가브랜드와 부산의 도시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행사로 불리는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한 활동 자체가 국가 자산으로 남았단 의미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분단국가 이미지가 고착화된 한국은 엑스포 유치전을 계기로 경제·문화적 발전상을 폭넓게 알렸다. 엑스포 유치 경쟁에 뛰어든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와 '그린 스마트시티'를 목표로 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준하는 변신에 나선 것 의미있는 성과로 꼽힌다.
또 뒤늦게 엑스포 유치 경쟁에 뛰어든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각 BIE 회원국을 상대로 전방위적 소통에 나섰단 점은 오히려 한국의 외교네트워크 강화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특히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꾸린 엑스포유치위원회는 500여일간 지구 495바퀴(1985만km)를 돌며 각국 정상을 포함해 3470여명을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 당시 40여명의 정상과 연쇄 회담을 갖는 등 엑스포 유치를 위한 최전선에서 부산 홍보 활동을 이어왔다.
부산 지지를 호소하며 태평양도서국·아프리카·중남미 등 상대적으로 그간 외교 자산을 많이 투입하지 못했던 지역 국가들과의 소통·협력 의제를 발굴해고 관계를 강화한 건 정부의 목표인 ‘글로벌중추국가’ 구상과도 맞닿아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강화는 내년 5월 한국에서 열리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최에도 윤활유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한덕수 총리는 BIE 총회 뒤 "결과에 대해서는 저희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동안 182개국을 다니면서 우리가 얻은 외교적 자산은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앞서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는 "(이번에)구축된 엑스포 네트워크는 당장의 부산 엑스포 유치뿐만 아니라, 유동적인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우방을 넓힌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 과정에선 경쟁을 벌였지만 이를 계기로 한-사우디 양국 간 이해도와 소통 채널이 강화된 것 역시 성과로 꼽힌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경쟁이 치열한 중에도 지난달 사우디를 국빈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21조원 규모에 달하는 51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 각각 사우디 국방부·국가방위부 장관을 만나 양국 국방·방산 협력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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