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뭐길래…英∙그리스 정상회담 돌연 불발

김선미 2023. 11.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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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5) 그리스 총리가 영국의 일방적인 정상회담 취소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 자신의 입장이 옳고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은 반대쪽 주장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
28일(현지시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5) 그리스 총리가 X(옛 트위터)에 이같이 썼다. 리시 수낵(43) 영국 총리가 이날 예정됐던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돌연 취소한 것을 비판하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 반환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 때문에 정상 간 만남이 불발됐다"고 전했다.

FT 등에 따르면, 영국 총리실은 회담을 하루 앞둔 27일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그리스 측에 통보했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영국 방문에 맞춰 두 정상은 런던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가자지구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이민자 문제 등 국제 사회의 주요 과제를 논의할 기회를 잃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리시 수낵 총리는 그리스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한 이유를 따로 밝히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외신들은 회담이 불발된 배경엔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엘긴 마블'로 불리는 이 대리석은, 2500년 전 파르테논 신전 외벽 상단에 장식됐던 163m 부조 조각의 절반에 해당한다. 19세기 초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던 시절, 영국 외교관 엘긴이 이를 영국으로 옮겨왔다. 그리스는 1832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여러 차례 환수를 추진했지만, 영국은 거부했다. 이 때문에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은 런던 대영박물관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두 곳에 나눠서 보관돼 있다.

이번 갈등이 본격 시작된 건, 26일 미초타키스 총리가 BBC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였다. 그는 대리석 반환에 대한 논의가 진전이 없다며 "만약 작품 '모나리자'를 절반으로 나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박물관에 둔다면 관객들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겠냐"고 했다. 이후 영국 총리실은 수낵총리 대신 올리버 다우든 부총리와의 만남을 그리스 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스 총리실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영국과 갈등의 씨앗이 된 대리석은 외벽 상단에 장식됐던 부조 조각의 절반이다. 연합뉴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2019년 임기를 시작한 이래로 수차례 대리석 반환을 요구해왔다. 지난해엔 이탈리아가 아프로디테 또는 아르테미스의 발 아랫부분으로 추정되는 일부 조각을 사실상 영구 반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엘긴이 적법하게 대리석을 산 것이고, 영국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대여도 해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63년 영국은 대영박물관이 조각품을 타국에 영구적으로 반환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수낵 총리는 그동안 대리석 반환에 대해 "그리스 정부가 대영박물관과 논의할 사항"이라면서도 법을 개정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제1야당인 노동당의 당수 키어 스타머(왼쪽)와 미초타키스 총리(오른쪽)가 27일(현지시간) 만난 모습. AFP=연합뉴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다소 입장차를 보인다. FT는 "노동당은 융통성을 발휘할 준비가 돼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당수인 키어 스타머는 미초타키스 총리와 만난 뒤 "영국과 중요한 경제 협력을 하는 유럽 우방의 총리를 만나지 않은 것은, 영국이 요구하는 경제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수낵 총리를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리스와의 외교적 갈등은 경제 침체와 이민 정책, 보수당 내 분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낵 총리에게 또 다른 방해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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