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에브리싱' 벽 높았다…1차투표서 끝난 '부산엑스포 꿈'
부산이 ‘오일 머니’를 넘어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부산은 28일(현지시각)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1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가 참여한 1차 투표에서 리야드는 119표, 부산은 29표, 로마는 17표를 받았다. 리야드의 압도적 승리였다.
정부는 당초 1차 투표에서 3분의 2이상 다득표 국가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럴 경우 진행될 결선 투표에서 역전극을 노렸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오일 머니’에 힘입은 리야드의 벽은 높았다. 당초 한국의 승리를 예측한 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유치전 초반부터 ‘리야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에서야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든 후발 주자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투표 결과가 공개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원해온 재계, 정치권, 국민 성원에 감사를 표한 후 “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간 (엑스포 유치를 위해) 182개국을 다니면서 쌓은 (외교) 자산 등을 계속 발전시켜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엑스포 유치엔 실패했지만 나름의 의미도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 총리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이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는 등 지난 1년 6개월간 민관이 협력해 펼친 글로벌 유치전을 통해 대한민국의 네트워크가 전례 없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정부와 재계 인사들이 182개 BIE회원국 인사들을 접촉하려 이동한 거리는 1989만km로 지구 495바퀴에 맞먹는다
정부는 투표 당일인 28일까지도 역전 가능성을 노리며 막판 총력전을 벌였다. 접촉 국가명과 그 숫자, 최종 경쟁 프레젠테이션의 연사까지도 극비리에 부치며 물밑 외교전을 펼쳤다. 특히 현장에서 진행된 결선(5차) 프리젠테이션(PT)에 승부수를 걸었다. 지난 6월 파리에서 열린 4차 PT는 가수 싸이가 포문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영어 연설로 마무리했다면, 이번 결선 PT에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마무리 연사로 등장했다.
여기에 한 총리와 최태원 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가 발표를 맡았다. 반 전 사무총장은 “한국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선진국과 최빈국 간의 격차를 메울 것”이라며 “부산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여정의 강력한 출발점”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한 총리는 기후변화 극복과 국제보건 및 식량문제 등 인류가 당면한 공동의 과제를 연대해 해결하는 ‘부산 이니셔티브’를 언급하며 “급박한 위기에 처한 나라들에 한국은 맞춤형 지원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PT영상엔 한국이 전 세계에서 받은 도움을 보답하겠다는 뜻을 전하려 한국전 영국 참전 용사 콜린 태커리씨가 등장했다. 소프라노 조수미, 배우 이정재 등 부산엑스포 홍보대사와 K팝 스타 싸이와 김준수씨 등의 응원 영상도 공개됐다.
지난 23~25일 프랑스에 머물며 엑스포 유치전을 펼친 뒤 26일 귀국한 윤 대통령도 국내에서 BIE 회원국 정상을 대상으로 투표 직전까지 전화 통화를 하며 설득을 시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투표 직전까지도 회원국 정상들에게 정중하고 간곡히 지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저는 이번 (영국·프랑스) 순방 기간에도 시간 날 때마다 각국 정상들과 계속 통화하면서 2030 엑스포에 대한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산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확보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정부와 기업의 경제 외교 자산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민관이 원팀이 돼서 부산 엑스포를 향해 뛰었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친구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 자신도 150개국 이상의 국가 정상과 양자회담을 했다. 우리 국무위원과 많은 기업인이 BIE 회원국을 빠짐없이 접촉하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우리 정부가 표방하는 그야말로 글로벌 중추 외교의 기조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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